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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Jul 01. 2024

오장육부 다독이는 빨간 맛

그녀들을 모두 같이 만난 건 고등학교 때이다. 

신설 여자고등학교 동아리 동기로 만나서 하늘 같은(정말 군대같이 군기를 잡았던) 선배들 밑에서 우리는 더 강한 동지애를 느끼며 우리 기수끼리 더 잘해보겠다는 경쟁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선배랍시고, 그들은 작품 심사를 거쳐서 우리 기수 7명을 선출하였다. 

우리의 운명 같은 인연은 그리 시작되었다. 


물론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니 멤버 중에는 국민학교 동창도, 중학교 동창도 있었다. 

우리는 짧게는 37년 길게는 46년의 인연을 시작했다. 


우리는 시화전이다. 문학의 밤이다. 현재 시대라면 수행평가라는 명분으로 과외를 받았을 법한 귀한 학교 행사의 기획과 협업, 작품, 시 낭송, 독서토론 등을 직접 해보면서 사회에 나와서도 낯섦 없이 큰 행사를 치러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기적으로, 틈틈이 모여 하나가 된 듯하다가도, 예민한 여고생들의 숨길 수 없는 까칠함에 거리를 유지하곤 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공통 분모가 있었기에 늘 동지애를 갖고 있었나 보다. 


우리 집에 옹기종기 모여 프라이팬에 고추장을 풀었다. 

어묵을 더 넣어줘!

삶은 달걀도 두 개씩 먹으면 안 되냐!


삶의 큰 획을 그을 때마다 우린 서로 잔잔하게 옆에 있어 주었다.

언제 어디서 같이 있었는지, 무엇을 같이 먹었는지 기록하면서.


너무 매워! 

매워 그럼 달걀흰자를 어서 먹어.

아니야. 찬 물을 마시고 다시 시작해.

맵다고 하면서 떡볶이는 왜 맛있을까?


떡에 묻은 국물부터 빨아 먹는 아이.

대파를 찾아서 먹는 아이.

어묵부터 먹는 아이.


잊을 만하면 빨간 맛이 떠오른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

삼각형 어묵에 배인 고추장 맛은 중독이다.




졸업 이후 동아리 창설 20주년 기념.

동기들과 후배들이 준비한다고 우리 집에 왔었다. 

그날도 해 먹었던 떡볶이.

이십 년 전 그날도 먹었었는데 같이 빨간 맛을 또 느끼고 있었다. 


세월이 또 흘러서 이제는 풍경이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따금 비싼 음식을 서로 사주면서도 우리는 그 빨간 맛을 함께 했음을 잊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왜 그런대!  우리 친구 00가 최고지!

외롭고 황망한 고비가 올 때마다 오장육부에 살짝 마음을 가다듬을 정도만 자극을 주는 그 빨간 맛.

그래서 검은 비닐봉지에 싸 오는 그 빨간 맛이 좋은가!


3월 친구들과 만나면 우리 집에서 또 해 먹어야겠다.

고마운 인연의 음식.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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