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미술학원.
일주일에 한 번 등원해서 두 시간.
그리고 만들기를 하며 유치원생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마음껏 미술 활동을 하는 곳이다.
토요일 2교시 마치자마자 울리는 전화 한 통.
"네, 동우 어머님 안녕하세요."
"실장님, 동우, 시우 등원 시간대를 변경하려고요. 아무래도 큰누나 학원 시간과 겹쳐서 아이들 하원 픽업이 늦어져서요. 앞에 9시 타임 가능할까요? 대기해야 할까요?"
한 반의 정원은 4명이다. 2주 전부터 6명으로 늘었고 보조강사가 배치되고 난 후 걸려 온 전화다.
동우와 시우는 여섯 살 일란성 쌍둥이다. 아홉 살 누나가 있다.
동우, 시우의 엄마는 외국 계열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워킹맘으로 바쁜 시간에도 교육에 힘쓰는 열혈 학부모이다. 동우, 시우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것을 알고 소개로 열댓 명의 원생이 입학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학원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학부모 마케터로 학원 측은 인지하고 더 조심스럽게 대한다.
동우엄마는 학원 입장에서 2000년대 한창 대치동에서 일명 '돼지엄마'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부모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내가 누구를 소개해서 학원에 도움이 되었지요?' 또는 '아들 친구들이 내 도움으로 학원을 알게 되어서 다니게 되었다'고 으스대거나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자식에게만 집중하는 성향이다. 그러나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개인주의적 성향이고 이성적 계획형이다.
토요일 점심시간. 임시 교무회의.
원생들의 학교 방학을 앞두고 여름 어학 캠프를 가거나 방학 기간 오후 국어,영어,수학 학원 시간표에 따라 미술학원의 시간표에도 정규수업 외 임시 재원생의 시간표를 기획해야 한다.
시간표의 효율적인 유연성으로 학부모의 선택지를 많이 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동우어머님의 요청 사항이 들어왔다는 안건으로 상담실장이 제안한 임시 회의이다. 담당 강사 K는 학원 내에서 장기 재원하는 원생이 가장 많다. 원생이 등원하면 "00야! 왔어!" 한 아이마다 이름부터 부르며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아이에게 칭찬과 자기 확신을 주는 명강사다. K는 보조강사가 있지만 6명은 역시 힘들다는 반응이고, 여섯 살이지만 뛰어나기에 1교시 아홉 살 반으로 이동시키자는 제안을 한다.
상담실장 J는 아홉 살 반으로 이동시켰을 때 수업이 잘 진행되던 그 반이 무산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학부모 성향으로 설명한다. 초등 저학년인데도 교습비 수납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수업 내용에 대해서 한두 달에 한 번만 직접 와서 볼 뿐 다른 컴플레인이 없는 학부모는 두려운 존재다. 학원을 신뢰하고, 믿는 척 조용한 학부모는 항상성을 벗어난 일에 대해서 소란한 학부모보다 더 크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 경력 20년이 넘는 실장의 의견을 흘리지 않는다.
강사 K는 차선책으로 보조강사를 계속 배정해 주고, 마침 1교시가 3명이므로 5명을 수업하겠다고 약속한다. 상담실장 J는 안도하는 눈치다. 미술 수업은 뜨거운 글루건과 커터칼, 열선 등 조형 수업에 안전사고가 연결된 부분이 많기에 5명 수업을 하는 강사의 애로사항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학원 운영적인 부분을 감안하면 최적의 토요일 오전 시간 원생을 늘려야 하는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흔쾌히 수용한 K가 원장도 실장도 고마울 뿐이다.
K 강사는 수첩을 접으며 "그럼, 바로 다음 주부터 이동시켜서 수업하겠습니다."
실장 J는 "네, 다만 학부모님께 연락은 오늘 아니고 3일 뒤에 하겠습니다." 일어서려는 순간
B 원장은 "실장님, 선생님이 결정해 준 사항이니 오늘 연락하면 될 것 같은데요. 굳이 3일 뒤에 하자는 건지?"
실장은 자세를 다시 고쳐 앉고 진지하게 말한다.
"동우, 시우어머님은 학원에 불편한 내용을 지적하거나, 비난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 이동 관련하여 이번이 두 번째 일입니다. 쌍둥이 각각 분반을 요청하였다가 신입선생님임을 알고 시우를 현재 선생님께 변경 요청하였던 날, 바로 진행해 드렸습니다. 운이 좋았었어요. 또 오늘 바로 해결해 드리면 차후 안 되는 때도 있을 텐데 습관이 될 것 같고, 어머님이 계획하시는 데로 따라가는 학원으로 생각하실 듯 해서요."
J 실장이 생각하는 동우, 시우 엄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저 엄마가 선택한 학원이라면 믿을 수 있어'라는 믿음을 주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직접 핸들링할 수 있는 학원이 아니라 줏대와 의지가 있는 자존심이 있는 학원이길 바라는 성향의 엄마이기 때문에 유쾌한 권위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개인주의 이성적 계획형의 학부모는 학원의 운영 방침이 명확하고 아이에 대한 학습의 효과와 진행 과정을 수시로 소통하나 감성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나 전달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서적 교감은 적을지라도 학원에 보내는 교육적인 효능감은 더 크게 가질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순서를 잘 지키면서도 자유롭게 동우와 시우가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 만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자율적인 효능감을 현실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