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 별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오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불편한 날 밤을 새웠다. 밴쿠버에 도착하니 다시 이른 오후.. 비몽사몽으로 공항 출구를 나오니 맨 앞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크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일 년 만에 만나는 듯한 격한 반가움에 아내와 포옹하며 재회했다. 낯익은 아내의 샴푸 향기에 정신이 맑아진 듯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자주 들리던 동네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웠다. 집에 도착하니 잠이 파도처럼 밀어 제켰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내 기억의 여진은 아직도 고향의 언저리에서 길게 누워있다.
그리웠고 사랑하는 이들과 밤을 패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행복하고 즐겁고 슬프고 아팠던 이야기까지 모두... 결코 길지 않았던 짧은 만남의 시간에도 친구들과 서슴없이 쏟아내던 욕설마저 정겨울 수가 없이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차라리 그리움으로 남아 내 기억의 한편에 놓여 있을 때는 작별이 이렇게 아프고 슬프지 않았었는데... 내게도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는 것 같아 나 스스로 밉고 고맙고 감사하였다.
눈이 벌거도록 눈물을 쏟아내시는 어머니가 현관 밖으로 나오시는 걸 집안으로 등을 밀었다,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아들의 등판을 창문 밖으로 내다보시며 얼마나 우셨을까.. 아마 어머니는 당신 살아생전에 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여동생이 배웅하며 자동차 문을 닫아 주다가 결국 눈물을 쏟아내며 내 가슴으로 쓰러졌다. 허리가 반으로 꺾어져 제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들어하는 친구의 차를 타고 터미널로 가는 내내 서럽도록 눈물이 쏟아졌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굳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친구의 가슴이 하얗게 젖어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버스 좌석에 얼굴을 깊게 처박고 소리를 눌러가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본 옆 좌석의 낯 모르는 중년이 슬며시 손수건을 내밀었다.
내가 예뻐했던 막내 처제가 애인처럼 손을 잡고 손 등에 눈물방울을 떨구고 몇 해 전에 혼자되어 외롭고 섧다는 큰동서가 올해만 살고 떠나고 싶다 한다. 그동안 무던히도 잘 견디고 버텨왔던 켜켜이 쌓인 외로움이 단번에 무너지는 작별의 아픔은 잔인한 고통으로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나는 하늘만 빼꼼히 보이고 집 앞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에서 홀랑 벗고 헤엄치던 시골에서 자란 촌놈이다. 그런 내가 지구의 반대편에서 문화도 언어도 다른 피부색 하얀 애들하고 어울려(?) 산지 올 해가 18년이다. 아직도 방황하는 이방인처럼 낯선 나라의 언어는 방언으로 귓전을 스쳐간다. 불행하게도 빗나간 운명의 화살에 맞은 상처를 쥐어뜯으며 절반의 삶은 지독한 형벌을 버티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친구야..
이젠 외로움도 그리움도 가슴 안에 단단한 더깽이가 져서 견딜만하단다. 그래도 가끔 버티지 못할 만큼 아플 때는 내가 늘 즐겨 기억하는 한마디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래. 이번 주는 핑계 김에 좀 더 쉬고 담 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거금을 들여 새로 장만한 카메라를 메고 내가 스스로 그린 자아의 세계를 배회하련다. 그러다 고단하면 소리통 내 친구와 깊은 나락으로 끝도 없이 빠져 보련다. 작별은........ 다시 만남을 위한 예행연습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