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노래

코스모스 사랑

by 여목 임재광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핸드폰 전화가 계속 울렸다.

“재준아, 전화가 계속 울린다.”

당구대에서 눈이 빠지도록 공을 노려보고 있는 재준이게 친구가 말했다.

“알아. 마누라야.”

재준이는 아까부터 울리는 전화벨이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 들어올 거냐, 들어올 때 소화제 좀 사 와라, 거의 매일 똑같이 반복되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구가 끝나고 친구와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겨 앉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왜 또.. 소화제 사 오라고? 알았어 갈 때 사 가지고 갈게.”

아내의 말도 듣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보, 언제 들어올 거야?”.

“거래처 손님들하고 저녁 식사하는 거야.”

재준이는 늘 하던대로 거래처 손님들과 함께 있다고 능청스럽게 둘러댔다.


티브이는 혼자서 떠들고 아내는 거실 소파에서 다리를 쪼그리고 잠이 들었다.

“여보, 방에 들어가서 자지 왜 여기서 자.”

재준이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아내가 미동도 없이 팔이 소파 밑으로 툭 떨어졌다.”

“여보.. 여보..”

재준이가 아내의 손을 잡으니 손이 데일 정도로 뜨겁게 끓고 있었다.

“여보, 여보, 정신 차려..”

놀란 재준이는 축 늘어진 아내를 둘러업고 아파트 계단을 날아가듯이 뛰어내려 가 택시를 타고 청주 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간호사가 달려들어 아내를 침대에 눕힌 채 밀고 들어갔다.

“심한 탈수 증상으로 쓰러진 것 같습니다. 요즘 식사를 잘못하지 않으셨나요? 링거 맞고 나면 회복될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내는 소화가 안된다며 지난해부터 소화제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별 관심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링거를 맞고 있는 침대 옆에 앉아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의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 자국이 말라 붙어있었다. 아까 전화 왔을 때 받을 걸, 무슨 일이냐고 자상하게 물어볼 걸, 미안한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여보, 택시 타는 길까지 내가 업고 갈게.”

아내도 걸을 힘이 없었는지 사양도 하지 않고 바로 재준이 등에 업혔다.

“연애할 때 당신 등에 업혀보고 얼마만이야. 자주 아파야겠는데..”

아내가 소곤대듯 작은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 재준이 등에 찰싹 붙어서 얼굴을 묻고 두 팔로 목을 감았다. 낯익은 아내의 살 냄새가 따뜻하게 스며들어 재준이의 체온을 뎁혔다.

“당신이 안 먹어서 그렇대. 내일 갈비 먹으러 가자.”


재준이는 서울에 D 중견기업에의 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3학년이라 내 년에는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된다. 애들도 성장하고 내 년에는 승진될 거라는 믿음으로 융자를 받아 방 4개 있는 큰 아파트로 올봄에 이사를 했다.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실직을 했으니 당장 다음 달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고향 청주로 내려가 수소문 한 끝에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선배의 도움으로 영업직원으로 취직을 하었다. 직급이나 월급보다 당장 일할 수 있고 월급을 매달 받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서울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키고 재준이 부부만 청주로 내려왔다.


다음 날 남편이 출근한 뒤 재준이 아내는 종합병원을 찾아가서 피검사와 X Ray 검사를 하고 의사를 만났다.

“가족은 함께 오지 않습니까?”

“혼자 왔습니다. 제게 다 말해주세요.”

“어떻게 이만큼 진행될 때까지 모르셨습니까?. 이미 암세포가 골수까지 다 퍼졌습니다. 한 달을 보장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사가 X Ray와 재준이 아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나 하는 불안을 살짝 들고 왔지만 두려움보다 아들과 남편 얼굴이 먼저 달려들었다. 병원 앞마당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에 바람에 후두둑떨어져 이리 저리 날리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그림을 그렸다. 엊그제 응급실을 다녀온 뒤로 근무시간에는 절대 사적인 전화를 하지 않던 재준이가 틈틈이 괜찮냐고 전화를 했다. 출장이다 야근이다 하며 항상 늦게 퇴근하던 재준이는 퇴근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큰 양푼에 밥을 비벼 먹다 남긴 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재준이 아내는 청주로 내려와서 아파트 청소 알바를 하면서 화장도하지 않고 헐렁한 몸빼 바지만 입고 지냈다. 하지만 재준이는 콧대 높던 아내가 아파트 청소 일할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당신 옷이라도 깔끔하게 입고 밥도 식탁에 차려놓고 먹지.”

“나는 괜찮아. 그리고 나 오늘 병원서 검진했는데..”

“그래? 검진했는데 의사가 뭐래?”

재준이가 서서 아내를 내려다보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음…

아내가 대답에 뜸을 들이자 궁금한 재준이가 다그쳤다.

"뭐.. 죽을병이라도 걸렸대..?

“여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나...나 말이야, 나 말기 암 이래. 길어야 한 달이라고 준비하라 하더라고...”

재준이가 양복을 벗다 말고 풀썩 주저앉으며 아내의 얼굴에 얼굴을 붙이고 다시 물었다.

“뭐? 당신 농담하는 거지..? 아니야, 그 의사 놈 돌파리야.”

재준이가 쓰러지듯이 아내를 껴안았다. 아내의 얼굴을 가슴에 힘주어 안고 "아니야 아니야" 소리치며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돌아온 재준이가 아내를 앉혀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나 휴직해야겠어. 내 친구가 그러는데 산에 살면서 자연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대. 자기 누나도 암 진단받고 이년 째 건강하게 살고 있대”.

“아니야. 절대 휴직은 안돼. 그리고 나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아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미 삶이 끝난 것으로 진단받았는데 가족을 모두 망가트릴 수는 없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가을이 언제 왔는지 아파트 화단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벌 나비들이 이 꽃 저 꽃으로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시간은 왜 이렇게 초음속으로 달리는지 두 주일이 쏜살같이 지났갔다.

“여보, 이번 주말에 서울 애들 보러 가고 싶은데.. 불쑥 가서 애들 놀라게 해 주고 싶어.”

아내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애들이 좋아하는 김밥과 밑반찬을 만들면서 신이 났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재준이 아내는 심장이 쿵쾅 거리 듯 뛰었다. 3개월 만에 만나는 아들인데 마치 연애하던 시절에 재준이를 만나는 것처럼..

“얘들아, 엄마 왔다.”

“엄마, 연락하고 오지 그랬어? 지금 알바 나갈 건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알바는 왜 해? 그런데 훈이는 어디 갔니?”

“몰라 어디 갔는지, 훈이는 요즘 사춘기라 말하기도 무서워.”

아내가 준비해온 반찬을 냉장고에 정리하는 사이에 큰 아들은 알바 간다고 나갔다. 잠시 후 둘째 아들 훈이가 밖에서 돌아왔다.

“엄마 왔어? 밥 줘. 점심 먹고 애들하고 게임방 가기로 했어..”

큰 아들은 도망치듯이 이미 나가고 둘째 아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반찬을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밥 잘 먹고 일찍 다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그리고 형 말도 잘 듣고..”

“아, 알았어 엄마는 맨날 그 잔소리야.”

투정하는 막내아들 훈이가 밥 먹는 것만 봐도 재준이 아내는 배가 불렀다. 재준은 밖에서 애꿎은 줄 담배만 여거푸 피면서 허공에 연기를 품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놈들아, 엄마가 말기 암이라 한 두 달도 못 산대”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애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목까지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재준이가 그냥 가자는 것을 아들 둘이 다 나간 뒤에 쌓인 빨래하고 방 청소 냉장고 청소 구석구석 다하고 부부는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여보, 무심천에 코스모스 많이 피었을 거야. 거기 가서 오랜만에 당신하고 데이트하고 갈까?”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데이트하러 자주 왔던 추억이 쌓인 무심천 뚝 길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해서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여보, 나 힘들어. 좀 업어줄래?”

재준이가 아내를 등에 업었는데 솜 인형을 업은 것처럼 가벼웠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서 앞이 안 보여 걸을 수가 없었지만 입에 힘을 주고 꾹 닫았다.

“여보 연애할 때 우리 무심천에 자주 왔었지? 그때도 가을이었을 거야. 우리 첫 키스도 코스모스 꽃 사이에 앉아서 했던 기억이 난다.”

아내를 등에 업은 재준이는 아무런 말이 없았다. 재준이 아내는 재준이 어깨가 흔들리며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보, 그리고 내가 부탁할 말이 꼭 있는데 내 말 들어줄 거지?”

“아 왜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그런 소리를 하냐?”

재준이 아내가 속삭이듯이 재준이 귀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여보, 침대 매트리스 밑에 들춰보면 통장이 있는 데는 그거 찾아서 애들 둘 대학을 졸업시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 죽으면 당신 혼자 청승맞게 살지 말고 건강한 여자 만나서 살아. 당신이 질 살아야 내가 하늘에서도 편할 거 아니야?”

“아이 그런 소리하지 마.. 죽긴 왜 죽어, 그 의사 돌파리라고 하더라고.. 내 친구 누나도 작년에 암 진단받았는데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대.”

재준이는 화가 나서 울부짖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았지만 재준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았다.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재준이 목을 감고 있던 아내의 팔이 스스르 떨어지며 아내 손에 쥐었던 코스모스 꽃 한 잎이 바람에 날려 하늘 높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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