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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Apr 02. 2020

코로나 19와 빅브라더, 그리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유발 하라리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와 백남준의 유토피아적 미래를 사유하며.



 3월 20일, '사피엔스'로 잘 알려진 지식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코로나 19에 관한 그의 견해를 게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고문은 공개와 동시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빠르게 변역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유발 하라리.


    기고문을 통하여 하라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빅브라더 출현'을 경고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국수주의적 고립' 속에서도 '글로벌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통해 전염병 확산을 빠르게 저지하고 있습니다. '감시'는 그 기술의 핵심입니다. 특히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근원지였던 중국의 경우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고자 모든 국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체온과 의료 상태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더불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감염자 수를 확인할 뿐 아니라, 감염자의 위치와 동선을 알리며 감염자와의 접촉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뭐, 국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 질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지난 3월 20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 게재된 유발 하라리의 기고문.

   

     

    그러나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이 새로운 것 없는 기술'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감시의 역사에서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단지 CCTV와 같은 이전 감시 방식에서 근접감시(over the skin)와 밀착감시(under the skin) 형태의 보다 치밀한 감시 방식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긴급상황" 혹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 하에 당신의 피부 온도와 피부 아래로 혈압까지 감시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판옵티콘.

    하라리는 기업과 정부가 이 정도로 치밀하게 생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더 잘 알 수 있고, 우리의 감정을 예측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감정을 조작하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각 국가의 방식을 다룬 기사들을 읽고 있노라면, 조지 오웰이 1949년 그의 저서 <1984>를 통해 경고한 '빅브라더'의 정치가 떠오릅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빅브라더는  사람들의 정보를 관리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시민들을 24시간 감시합니다. 빅브라더는 권력을 유지하는 주된 수단인 텔레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동시에 체제 선전을 지속 합니다. 언어는 제한되고 이에 따라 자연스레 사람들의 사고도 축소됩니다. 세뇌된 사람들은 이 세계가 살만하고 위대한 곳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그가 예측한 미래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CCTV뿐 아니라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하여 쉬이 감시되고, 일정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 메시지에 따라 생각이 조작됩니다. 조지 오웰이 우려했던 '아주 치밀한' 밀착 감시가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실화된 것이죠.


 물론 아직 조지 오웰이 예측한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는 몇 년 후, 그리고 멀리는 몇십 년 후 우리 아이들이 맞이하게 될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 올 캄캄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까요. 재미있게도 1984년이 되자, 한 예술가가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적 사고에 정면으로 반기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백남준'이 바로 그 예술가입니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 작업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하여 조지 오웰이 예견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통신 기술 발전이 가져올 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였습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미국 시간으로 1984년 1월 1일 공개되었습니다. 백남준을 포함한 100여 명의 현대 예술가들은 예술과 아방가르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 미술, 퍼포먼스, 패션쇼, 코미디를 선보였습니다. 그들의 쇼는 미국, 프랑스, 한국, 일본, 독일 등 다양한 국가에 생중계되었고, 2500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백남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습니다. 현실의 1984년은 조지 오웰이 예상했던 1984년보다 밝고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는 설령 인간이 권력에 의하여 억압되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유로운 영역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더불어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권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창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감시'를 가능케 하는 인공위성이나 통신 기술은 예술가 백남준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기치 못한 만남을 만들고, 새로운 접촉을 통하여 더욱이 새로운 만남을 여는 계기'였던 것입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조지, 당신은 오버했던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봐요, 당신은 좀 틀렸어요"





    유발 하라리의 글이 담고 있는 먹먹한 현실을 견디기 위하여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떠올려봅니다. 하라리가 지적하였듯, 코로나 19 이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는 늘 움직이고 있으나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듯,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때조차 출렁이고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19 이후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부디 백남준의 예측에 보다 가깝기를, 그리하여 유발 하라리에게도 "당신은 좀 틀렸다"는 훈수를 둘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진 출처*

백남준 아트센터 https://njp.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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