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각을 재정의하는 작가, 빌 비올라.
기술은 이토록 발전해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었는데, 왜 우리는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릴까요.
오늘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돌아보게 하는 작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근대의 시작은 시계의 발명과 그 궤적을 함께 한다고 합니다. 근대 이전의 삶의 방식은 주로 자연의 흐름에 따라 매 순간을 흐르듯 사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뜨고 닭이 울면 움직이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 잠에 들었죠. 자연의 순환이 곧 신체의 순환이었습니다. 자연 시계는 사람을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계의 발명과 함께 시간은 절대적 수치로 환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양화 된 시간에 따라 삶을 영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계와 함께 도래한 근대적 삶은 ‘합리와 효율’이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며, 사람들의 삶을 ‘분’, 혹은 ‘초’ 단위로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감과 동시에 시간에 대한 규율을 습득해야 했고, 그 규율을 철저히 잘 지키는 사람이 칭찬받을만한 사람이 되었죠. 그리고 연이어 일어난 다양한 기술의 발전은 시간에 따라가는 우리 삶을 가속화하였습니다.
다들 바삐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 시간의 규율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규정하고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학교를 가거나 출근을 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남는 시간 틈틈이 스펙을 쌓고, 사람들을 만나고, 혹은 비어있는 시간을 채우기 위한 원데이 클래스나 취미 활동들을 찾아다니셨을 것입니다. 하루는 시간을 잘 사용하기 위한 고군분투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월 말 국내를 강타한 코로나 19 사태는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바꿔 놓은 듯합니다. 때 맞춰 가야 하는 학교를 가지 않게 되자 학생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삶의 패턴을 유지하게 되었죠. 직장인들은 집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하니, 눈을 뜨면 PC를 켜고 출석체크(?)를 한 뒤 다시 침대 위에 눕게 되었죠. 주말 내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느릿한 시간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날들도 늘었습니다. 잠시 멈추거나 느릿하게 사는 삶이 허락되지 않는 이 시대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잠시 멈춰서 시간의 결을, 생의 향기를, 그리고 일상의 경이를 느껴보기를 촉구하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미디어 아트 작가 빌 비올라(Bill Viola)의 작업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비올라는 관객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과 양적으로 분할된 시간을 다르게 지각하기를 장려합니다.
비올라는 ‘기술을 통하여 서정시를 쓰는 작가’로도 불립니다. 서정시 한 편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지각이 빨라지고 파편화된 시대에, 그는 기술을 이용하여 한 편의 서정시와 같은 작업을 선보입니다. 서정시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매체인 영상을 통해 다시금 멈춰서 사유하기를 시작하도록 말입니다. 빌 비올라의 미디어 아트는 사람들이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지각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비올라는 주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에 변형을 가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이를 위하여 비올라는 '슬로우 모션(Slow motion)'기법을 사용한 비디오 작업을 제작하죠. 슬로우 모션은 순간적인 움직임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웃음을 유발하거나, 빠르게 지나간 동작을 찬찬히 판정하기 위하여 자주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빌 비올라는 슬로우 모션 기법을 사용하여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넘실거리는 이때에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변형된 영상들을 보여줍니다. <놀라는 5중주> 만해도 다섯 명의 배우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정상 속도보다 12배 느리게 보여줍니다. 관객들은 평소 감각하던 빠른 시간과 화면 속 "느려 터진" 시간의 불일치 속에서 기이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감정들이 느리게 표현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화면 속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게 됩니다,
<침묵의 산>도 비슷합니다.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영상 표면을 통하여 찬찬히 흘러오는 슬픔과 공명하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그 안에서 고통을 표현하는 배우들, 컴컴한 암실과 거대한 침묵은 일상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공감하게 합니다. 즉 작품을 보는 행위는 곧, 정서를 '함께 느끼는' 행위로까지 확장됩니다. 때문에 전시장에서는 비올라의 작품을 바라보던 관객들이 함께 고통을 느끼거나 울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죠.
비올라의 작업은 관객들이 그의 작업을 관람할 때 단순히 그의 영상을 ‘보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놓치고 있던 일상의 순간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들 삶의 순간들이 불러일으키는 무수한 감정들을 곱씹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감각하던 시간의 결을 무한히 느리게 확장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비올라는 비디오를 이용하여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고, 관객들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합니다. 가속화되는 감각과 정신의 속도를 ‘감속화’ 하여 삶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감정과, 개념들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는 것이죠.
움직임의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관람자의 내적인 시계는 요동합니다. 평소 지각과 다르게 느리게 펼쳐지는 풍경 앞에서 감각들은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불편한 상태에 이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지각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비올라의 작업은 아무도 서정시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이 시대에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통하여 현대적 서정시를 읽히고자 하는 재미난 시도이자, 서정시를 읽을 수 없는 우리의 감각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촉매제입니다. 작업들은 유튜브로도 쉽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시장에서 보는 영상 특유의 아우라는 느낄 수 없겠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접해볼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우리의 시간은, 생은 느리게 흘러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릅니다.
돌아오는 주말은 비올라의 작업을 감상하며, 보다 느긋하게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