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프리랜서 생활 9개월 차에 느끼는 소회

지나간 시간의 결을 가만히 만져보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작년 6월 말 논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7월부터 시작된 '반 백수 그리고 반 프리랜서'의 생활도 벌써 9개월 차에 접어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을바람이 막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그때부터 논문 동기들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부 시절부터 용돈벌이로 해왔던 과외의 학생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취업을 미뤘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다면 당장에라도 열심히 이력서를 작성하여 회사에 들어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이 일시적인 불안감을 없애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마음속을 휘젓는 몇 가지 질문들을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 상태에서 직업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점차 쌀쌀해지던 계절은 두툼한 패딩을 입지 않고는 외출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는 푸른 잎사귀를 피우지 못할 것 같은 나뭇가지들에서 하얀 꽃들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리의 색이 바뀌기 시작할 무렵 다시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따뜻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계절이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여러 번 아주 깊은 우울의 골짜기에서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자주 도움의 손길을 뻗는 따스한 사람들의 품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학교나 직장이 주는 안정감 없이 9개월을 보내보니, 제가 누구인지 보다 분명히 알 것도 같습니다.

    처음 프리랜서로 덩그러니 남겨져있을 때는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불안해서 욕심을 부리는 것인 줄도 모르고, 하루를 꽉 채워서 닥치는 대로 '성취'를 이룰 만한 것들을 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전 6시에 기상했고, 새벽 영어 회화 학원에 다녔고, 끝나면 바로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점심시간에는 학원 숙제를 하고, 과외 이력서를 작성했습니다. 매주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요가도 다니고, 원어민 선생님께 영어 과외도 받았습니다. 늘 바쁘고 분주했습니다. 누군가는 제 삶이 부지런하다며 박수를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니, 제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인정해줄 것 같아서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제가 욕심부리던 일들을 그만두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좋아하는 영어 강의를 듣고, 태권도를 갑니다. 다양한 직업, 나이, 신체조건을 가진 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끝마친 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합니다. 샤워를 마친 후 수업하는 동네에 가기 위하여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걷습니다.  걷는 동안 바람의 온도와 감촉과, 잎사귀와 꽃들의 푸르름을 구경합니다. 한참을 걷다가 커피를 한잔 마시러 근처 카페를 갑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수업을 준비합니다. 저녁 늦게 수업이 끝나면 좋아하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거나, 기도를 하러 갑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직장인도 아닌데, 꽤 늦은 시간 귀가하게 됩니다.

요즘은 유독 길이 아름답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죠. :)

    지금의 저는 가장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지금 제 삶은 바삐 공부와 일을 병행하던 때 꿈꾸었던 그런 삶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 삶을 살아가는 저는 보이지 않는 미래와 캄캄함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일들을 알아보느라 이 좋은 때를 그냥 흘려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매 순간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불안이 좋은 미래를 가져다주는 건 아니고, 지금을 감사한다고 앞길이 열리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요.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카페들이 모여있는 조그만 거리가 나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집 입니다. 커피가 일품입니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고, 좋은 차를 사거나 명품 가방을 들지 못한다고 남들과 비교할 때, 감사는 사라져 버립니다. 뭐 언제까지 이 정도 벌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수준으로 살아갈 것도 아니니, 일단 새로운 일이 열리기까지는 매 순간을 감사하고, 즐기며 살아가렵니다. 더 좋은 일들이 오겠죠. 더 바빠질 수도 있겠죠. 그때가 되면 지금이 무척이나 그리울 테니, 지금 제게 주어진 이 순간을 더 좋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