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아이돌, 두 극단의 남성성에 대하여. <SEISMIC WAVE>
전시 <SEISMIC WAVE>
을지로 오브, 2020.05.27-2020.06.28.
(월, 화는 문을 열지 않아요!)
“힙”하다는 그 동네, 을지로에 다녀왔습니다. 햇살 따사롭고, 바람도 적당히 불던 5월 말, 젊은 예술가 청년들이 을지로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을지로 3가 경진빌딩 5층에 위치한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머물던 달방을 개조하여 ‘을지로 of’라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낡은 옥탑방들은 작가를 위한 공간이 되었고, 젊은 예술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을지로의 전시 공간이 되었습니다.
길을 못 찾고 한참을 헤매다가 도착했습니다. 오브는 골목을 두 번은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외진 곳에 위치한 건물이었으나, “을지로 오브”임을 말해주는 커다란 간판도 없었기 단번에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갤러리에 간판을 없는 이유는 ‘지나가다가 이곳이 특이해 보여서 온 사람보다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온 사람들이 진지하게 전시를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지금 오브에서는 재미있는 사운드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SEISMIC WAVE> 전시 5월 27일부터 6월 28일까지 진행이 됩니다. 오늘은 세 작가의 전시 중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노두용 작가의 작업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노두용 작가는 남성성의 두 “극단”으로 볼 수 있는 “군대”와 “남성 아이돌”을 두 방에 나란히 배열하여 남성성의 두 극단에 대하여 사유하게 합니다. 여성 작가에 의한 여성성을 다룬 작업은 학부 때부터 꾸준히 접할 수 있었으나, 남성 작가가 남성성에 대하여 발화하는 작업은 꽤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전시장 첫 번째 방에 들어가게 되면, 바짝 마른풀들로 뒤덮인 사람이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얼굴도, 몸도 자세히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분명한 점은 헤드셋을 끼고, 총을 겨누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소파 위에 널브러진 한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일하게 마른풀들로 뒤덮여있고, 그 형상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성의 맞은편에서는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재생됩니다. 삼엄하고, 건조한 방의 분위기는 단번에 이 곳이 ‘군대’ 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군대는 군대만의 특수한 집단성과 남성성이 지배적인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은 소외되기 십상이죠. 군사주의 자체가 집단을 위하여 강력한 가부장제에 근거하고 있고, 개개인의 희생과 획일성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소파에 널브러진 남성의 모습은 부조리가 일상이 되고, 억압적인 군대의 문화 속에서 힘 없이 스러져가는 개인 남성의 자아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군대의 분위기는 여전히 우리 ‘아버지 세대’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아버지와 남성’의 특권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방을 지나, 바로 옆 방에 들어가면, 마치 아이돌 그룹 “샤이니”를 연상시키는 남성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파스텔톤의 뮤직비디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훈훈한 남성들, 청아한 목소리 가득한 노래와 초록빛 자연을 담은 영상은 직전의 '군대'를 다루던 공간과 한눈에 대비됩니다. (필자는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두 번 감상했습니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더군요.) 뮤직비디오 속 남성들은 실제 아이돌 그룹인지, 혹은 영상을 위하여 조직된 가상의 아이돌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한참 영상을 바라보다, 영상 옆에 설치된 가상의 인간을 보고 또 다시 놀랐습니다. 얼굴이 없는 인간은 방 한 켠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을 끓어 안고 있습니다. 방금 전 군대에 대하여 고민을 거듭하던 남성은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앞에 앉아 무력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얼굴 없는 남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아이돌의 무대를 바라보기를 반복했습니다. 문득 해나 로진의 <남자의 종말>이 떠오르더군요. 로진은 물리적 힘이 지배하는 전쟁이나 노동의 시대가 가고, 정보와 지식이 지배하는 이른바 ‘4차 산업’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과 같은 “수컷스러운” 남성성은 보다는 자신을 가꾸고 돋보이게 함으로써 남성성을 증명하는 방식이 지배적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남성은 부엌에 출입조차 하면 안 된다는 규범이 지배적이었던 우리나라가 현재는 세계 남성 화장품 소비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예쁘고 가꿔진” 남성들이 대세가 되고 있는 점만 보아도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남성들은 여전히 기존의 “남자다운” 남성성이 추앙받는 ‘군대’에서 일정 기간을 복무해야 하며, 그곳에서 통용되는 남성다움을 교육받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남성 아이돌이 태양과 같이 떠오르지만, 여전히 한국 남성들은 ‘남자답고’, ‘강한’ 남성이 되기를 요구받는 문화 속에서 약 이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군대식 남성성에서 배제된 ‘남자답지 못한 남성’은 혐오스럽게 느껴질 것이고, 이는 남자답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될 수 있겠죠. 아마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남성의 모습은 군대가 요구하는 남성성과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두 분열적인 남성성 사이에 소외된 한 개인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오브를 찾아온 관람자들은 두 남성성 사이에서 소외를 경험하는 쓸쓸한 남성 옆에서, 빛나는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참, 이색적인 경험입니다.
결과적으로 노두용 작가는 두 극단의 남성성을 병치하여 제시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우리 사회의 남성성의 문제에 대하여 사유하게 합니다. 동시에 가부장제나 군대와 미디어가 제시하는 양 극단의 남성성 속에서 소외되는 남성의 모습을 예술의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패권적인 남성성 속에서 무수한 남성들이 “남자답기 위하여” 스스로를 억압해왔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이 되기를 포기해왔습니다. ‘남자가 울기나 하고’ 혹은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 속에서는 다양한 남성들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개발하며 살아가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 미디어에서 재생산하는 아이돌의 남성성 역시 개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는 의문입니다. 외모를 가꾸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추구하는 행위가 자기 자신이 되게 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대립하는 두 남성성의 모습 앞에서 ‘나 자신은 누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떤 젠더를 연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보다, '연기'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저 자기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면 더없이 좋은 전시가 되지 않을까요.
전시는 이번 주말까지 입니다. 전시 이야기를 생각보다 늦게 올리게 되어 아쉽네요. 노두용 작가 외에도 두 작가의 사운드, 영상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은 힙한 을지로에서 힙한 전시와 맛집, 그리고 맛있는 커피와 함께.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