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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Sep 18. 2020

그럼에도 인간은 놀아야 한다.

니키 드 생팔, <나나> 시리즈와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니키 드 생팔, <나나> 시리즈와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니키 드 생팔, <Nana Noire Upside-down>,  1965–1966.


놀이하는 존재, 호모루덴스

   

     최근 한 독일 학자의 재미난 책을 읽었습니다. 인간은 본래 “놀이하는 존재”라는 테제를 흥미롭게 증명한 책이었습니다. 책이 흥미롭게 느껴진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놀이하는 존재"라는 책의 제목이 지금의 우리와 저만치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놀이하는 존재"가 주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하여, 매 순간을 생산적인 일에 우리를 던져 넣습니다. 매일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페르소나를 연기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자아로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해결되지 않는 먹먹한 마음이 있습니다. 분명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과연 삶은 이게 전부일까, 라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때문입니다.


    책의 서문에서는 현대인이 겪는 이런 마음의 질환이 어디서 기인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노르베르트 볼츠 저 | 문예출판사 | 2017년 | 원제 : Wer nicht spielt, ist krank


 

    근대화 이후의 인간은 “경제적인 인간” 혹은 “사회적인 인간”입니다. 경제적 인간이란 비용과 효과를 따져보면서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를 의미하고, 사회적 인간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에 부응하면서 일상생활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입니다. 경제적인 인간은 모든 일을 생산성과 효율성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무미건조함을 자주 느끼며, 사회적 인간은 한 평생 타인의 기대에 얽매여 살아갈 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경제적일 수도, 그리고 늘 사회적일 수도 없습니다. 만약 성인기 이후의 삶을 “경제적 인간”으로, 혹은 “사회적 인간”으로만 살아간다면 우울과 무미건조함, 고독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 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놀이할 때 비로소 삶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회는 “놀이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노동에 참여하는 인간”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는 쓸모없고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고, 놀이에 깊이 있게 몰입한 사람들은 마음 한 켠에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놀이에 푹 빠지고 싶은 우리의 갈망은 어떤 것으로도 치환되지도, 해소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바로 놀이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놀이할 때 삶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습니다.


    

놀이하는 신체, 그 역동성이 주는 깊은 해방감.


    니키 드 생팔의 <나나> 시리즈가 우리에게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생팔이 조각한 나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신체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자유롭고, 역동적이죠. 합리적이고 정량화된 움직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자기 통제력이 높은 가치를 갖는 문화에서, 이 즐거운 역동성은 해방감과 같습니다. 생팔의 조각 앞에 서면, 놀이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 고유의 본성이 일깨워지는 듯합니다. 놀이 자체에 대한 억압과 더불어 여성들의 즐거움은 이중적으로 억압되어 왔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즐거움을 성적인 타락과 동일시하는 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조각이 주는 시원함과 쾌감은 배가 되는 듯합니다.


프랑스 생트로페 항구 주변에 있는 <나나> 시리즈


    '나나'는 불어로 '보통의 여자아이'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팔은 '보통의 여자아이'라는 불어가 주는 어감과 전혀 다른 신체를 대중들에게 보여주어 우리 안에 있는 '보통의' 그리고 '여자'가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기쁨과 정열의 여신 같은 이 신체를 통하여 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자 합니다. 


    보통의 여자아이란 그저 즐거운 아이입니다. 조신하거나 정숙하지도 않고, 푸른 눈도 금발도 아니지만 그저 생의 기쁨을 마음껏 느끼는 존재입니다. 때론 음악에 맞추어 신이 나게 춤을 추거나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흥을 느끼는 자아입니다.  



프랑스 생트로페 항구에 있는 <나나> 시리즈.



    흥미롭게도 생팔은 부유한 가톨릭 집안 출신이자 푸른 눈, 가녀린 몸매에 흰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백인 미녀입니다. 10대 때는 라이프지나 보그지와 같은 유명 잡지의 모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점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생팔은 부모의 폭력과 정서적 학대 아래에서 자랐고, 학대받은 가정에서 탈출하고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경 쇠약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지는 등 그녀의 젊은 날은 가히 고통의 연속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Phalle), 1930.10. 29 - 2002.5.21.


    많은 이들이 그녀의 외모에 찬사를 보냈지만, 눈이 부신 외모 이면에는 그녀를 경직되게 만드는 불안과 불신이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과 전혀 다른 천진하고 당당한 '나나'들을 만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아마 그녀는 있는 그대로 힘껏 즐기는 모습의 '나나'들을 통하여 낮은 자존감과 불행한 환경으로 고통받았던 젊은 날들을 해방하고, 그녀와 같은 삶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해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지금도, 그녀가 빚어낸 나나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생의 활력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서 세계 곳곳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작품을 볼 때면 '나'라는 존재 그대로 있는 그대 힘껏 즐기며 살아보고 싶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좌) 뉴욕 거리에 있는 나나들. (우) 프랑스 생트로페의 나나. 1995–2003. © 2014 Niki Charitable Art Foundati

  



그럼에도, 인간은 놀아야 한다.


    ‘놀이’와 ‘즐거움’은 경제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사회가 두 팔을 벌려 환영하는 감정도, 행위도 아니지요. 그러나 생팔은 분명히 전합니다. 우리가 나나와 같을 때, 웃고 유희하고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때에, 비로소 인간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 세상은 더욱이 해방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좌) Niki de Saint-Phalle, <Nana Dawn> , 1993. (우) <뛰어오르는 나나>, 1970.


    

    다시 책 이야기도 돌아가 볼까요. 책의 저자 역시 말합니다. "당신은 놀아야 한다!" 고 말입니다.  매체는 매일 같이 놀이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도할 것이고, 사회는 즐겁고 유희하는 존재를 결코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놀이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놀이"라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을 학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놀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그는 "놀이를 하는 것은 유치하고 원시적이라고 믿게 하려는 자칭 고급문화의 대변인들은 마음껏 잊어도 좋다"는 말과 더불어 책을 마무리합니다. 고급문화는 놀이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들에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놀이를 "시시하게"만들 뿐이라고 말입니다. 





     푸코는 언젠가 서양 도덕의 근원은 “행복한 쾌락의 세계로부터의 비극적 분리”라고 하였습니다. 문화와 그 기반이 되는 도덕, 그리고 법의 초석은 '행복과 쾌'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산다는 일은 어쩌면 이 행복과 분리된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무미건조함과 고독, 불안과 우울증에 면역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분도 맥고니걸의 말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살아갈 때는 '즐거움'과 '놀이'가 참 중요합니다. 작가의 말을 빌려오자면, 그렇기에 "삶에는 즐거움만이 중요한 것"이죠. 그렇다면 생팔은 이를 정확하게 꿰뚫고 이 세계를 살아내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였던 용기와 선견지명을 가진 작가가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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