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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Oct 14. 2020

“도시갬성”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2020.09.16. -  2020.12.31.
석파정 서울미술관


   

  아마 글을 읽는 누구든 나의 살던 ‘고향’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산골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고향은 꽃피는 산골과 가깝나요?


     소위 말하는 '요즘 것들'에게 고향이나 향수는 자연보다는 ‘도시’와 더 긴밀합니다.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에는 대자연과 드넓은 벌판이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들이 되었겠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 살고 있는 저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도시야 말로로 익숙하고, 편안한 향수의 공간이기 때문이겠죠. 물론 도시의 고독과 치열함에 지독히 외로울 때도 있지만요.



흔히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롭고 고요한 자연 속의 고향.  Ⓒ Meks 2020.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전시⟪나의 밤이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이 지점을 명확하게 포착합니다. 이번 전시는 '도시를 살아가는 '도시 세대'의 '도시적 감수성'을 다룹니다. 따라서 전시장 곳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고향 삼는 작가들의 손을 거친 도시의 감성과 아름다움이 하나의 작품 형태로 걸려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미술관에서는 주로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다루거나, 정치와 역사 같은 거대한 주제들을 다룰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합니다. 전시장 안에는 개개의 작가들이 도시를 살아내며 마주하는 소소한 도시만의 아름다움이 섬세하게 포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번 전시장에서 만난 이 소소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전시실에 설치된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전시 포스터.


도시의 일상이 예술이 될 때,
정재은 작가의 <Ugliness>


    전시장에 들어서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도시의 풍경과, 도시 속 일상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정재은 작가는 일상 속 소소한 장면을 그려, 도시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작가는 유리나 거울, 물 등에 반사된 모습을 흐리거나 모호하게 표현하여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실된 자아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하여 매일 반복되는 동일한 행위와 정체성의 연관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선 머리를 감고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을 다룬 작품에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머리를 감는 행위가 예술이 되거나,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감는 행위는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행동이자, 도시의 삶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행위이나, 자주 사소하고 하찮은 행위로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소소한 행동에 주목하여, 이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예술의 언어로 재현합니다.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매일 겪는 사소한 일상을 예술과 같이 오롯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자연스레 가지게 됩니다.


정재은, <Ugliness>, 2017.


도시에서 마주하는 찰나의 미학,
박윤지의 <붉은 바람> 시리즈와 <4:17 pm>


    박윤지 작가의 작품은 도시를 비추는 빛과 그림자, 그 색과 모양, 바람, 살갗에 닿는 온도의 사소함이 주는 완벽한 순간들을 재현합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일에 집중할 때, 잠시 잠깐 창과 커튼을 통하여 쏟아지는 빛을 보고 감탄한 적 있나요? 도시의 모든 삶이 다 아름답고 감탄할만하진 않지만, 아마 이 소소한 아름다움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박윤지 작가는 틈새를 통하여 부서지는 빛과 그 순간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찰나의 빛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박제합니다.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사진으로는 차마 다 담기지 않던, 그 아름다움이 박윤지 작가의 작업 속에서는 보다 더 아련하고, 또 몽환적으로 반짝입니다.



좌) 박윤지, <붉은 바람 2>, 2018 &  <4:17pm>, 2020.   우) 박윤지, <붉은바람 1>, 2018.


도시적 풍경이 주는 따사로운 위로,
홍성우의 <APT-HV> 시리즈


    홍성우 작가의 <APT-HV> 시리즈는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작품입니다. 저는 직업 특성상 아파트 단지를 전전하며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날이 좋은 날 수업이 다 끝난 후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파트에 반사되는 빛들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습니다. 물론 이 풍경에서는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끼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위로 내리 앉은 빛들이 유독 선명하게 반짝이는 날이면 특히나 도시적 아름다움이란 곧 이 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전시장에서 제가 느낀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포착한 작업을 만나니, 그 반가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도시 곳곳을 거닐면서 느꼈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작가들 역시 놓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릅니다. 작가들이 포착한 도시의 아름다움은 제가 도시를 살아가며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과 멀지 않았습니다. 아마 도시에 사는 저와 작가들은 아무래도 나무나 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보다는 거대하게 솟은 아파트를 비추는 빛들에 더 자주 감탄했기 때문이겠죠.


홍성우 작가의 <APT-HV-2> 2019. ⓒSungwoo Hong, 2019.


SNS와 현대적 의미의 식사예절,
이채원의 <마음은 급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다음으로는 이채원 작가의 <마음은 급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를 살펴볼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함께하는 식사는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 '소통',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식사가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채원 작가는 현대에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마음은 급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는 고전 명화 속 식사 시간과 사뭇 다른 우리의 일상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현대사회에서 먹은 음식을 인증하는 일은 함께하는 시간이나 식사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요즘 시대에는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인싸 라는 사실'과 '잘 먹고 산다는 사실'에 대한 과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채원 작가는 이 순간을 명쾌하게 포착하고,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이채원, <마음은 급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장지에 나무 & 석채, 2019.


    아마 여러분이 미술관에서 자주 접한 식사 장면은 아마 르누아르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제임스 티소의 <휴일> 같은 작품들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사람들, 아름다운 햇살, 그리고 한가운데 놓인 점심상의 모습까지. 우리가 생각한 우아한 식사, 즉 미술관에서 볼법한 식사의 모습이죠.  그러나 이채원 작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식사의 순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고상한 미술관에서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모습을 만나니, 참으로 반가운 동시에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음식 사진에 열중하는 우리의 모습은 미술관에 걸릴 정도로 고귀한 순간은 아닌 것 같은 느낌 때문이겠죠. 그러나 이보다 더 요즘을 살아가는 우릴 잘 묘사한 순간은 없겠죠.



(좌) 제임스 티소, <휴일>, 1876. (우)르누와르의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1881.


SNS 이후, 조작된 도시적 삶의 단면,
Kerith Lemond의  <A Social Life>


    도시의 삶을 묘사하는 전시였기 때문에, SNS를 다룬 작가들이 꽤 많았습니다. Kerith Lemon 역시 <A Social Life>를 통하여 SNS 이후 우리의 삶을 영상으로 묘사합니다. SNS가 우리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신의 만족이 아닌 타인의 만족과 부러움을 위하여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이 졌다는 것이겠죠.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한, 혹은 남들이 보기에 이상적이라고 평가할만한 일을 합니다. 정말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보다, 피드에 올릴만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래서일까요. SNS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인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영상 속 그녀 역시 운동화 사진을 올리며 아침 조깅을 인증하는 듯 하지만, 다시금 침대로 기어들어갑니다.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암시하는 와인 사진을 업로드하지만 정작 그녀는 외로움에 몸서리 치다가 정신없이 잠이 든 것 같아 보입니다. 연기를 하는 것인지,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우리 삶의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나' 한 조각을 만들어가는 우리, 그리고 그 단면으로 타인의 평가를 받고자 하는 우리,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Kerith Lemon, <A Social Life>. 2016. 싱글채널 비디오. 8'6".



도시인들의 거대한 정서적 기반, "반려동물"
정우재, <Dear Blue-see you always>



    마지막으로 정우재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정우재 작가는 도시인들에게 “반려견”이 가지는 의미를 판타지적인 그림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합니다. 작가의 그림 속에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10대 소녀와, 그녀의 주변에 서성이는 거대한 반려견이 등장합니다. 아마 작가는 도시를 살아가는 연약하고 고독한 존재를 어린 소녀로, 그리고 외로운 이에게 정서적인 지지기반이 되어주는 존재를 거대한 반려견으로 묘사한 듯합니다.


    코로나 이후 도시인들은 더욱이 외로운 삶에 익숙해지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나마 있던 최소한의 신체 접촉도 사라져 가고, 낯선 이들은 피해 걸어야 함하며, 대화는 최소화됩니다. 새로운 몸의 예절은 도시인들을 더욱이 고립되고 외로운 존재가 되어가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접촉을 필요로 하고, 정서적인 연결을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도시인들에게 반려견은 단순히 동물 그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을 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반려동물은 차가운 도시 속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여 유대와 지지를 제공하는 존재입니다. 작가는 도시 속에서 반려견이 각 개인에게 차지하는 위치를 ‘거대해진 반려견’의 모습으로 표현하여, 작고 귀여운 이 동물들이 도시인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정우재, <Dear Blue-see you always>, 2018, 캔버스 위에 유채.
정우재,  <Gleaming-Take your time>, 2015. 캔버스 위에 유채.




전시를 마무리하며.


    초기 근대화 단계만 하더라도 도시란 근대화와 부유함의 상징이자, 이전 세대를 상징하던 자연적이고 전통적 가치와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 가치에 익숙하던 개인들에게 도시란 물질적 풍요의 공간인 동시에 개인주의나 소외, 내면의 피로와 불안을 의미하는 부정성의 공간이기도 하였죠. 그러나 차차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만을 경험하며 자란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다가 갑작스럽게 도시를 만났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피로감보다도, 도시가 오히려 편안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도시가 곧 향수가 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갑니다.




    이번 전시는 이렇듯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도시'를 젊은 감각으로 재현한 작품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도시를 단순히 자연의 편안함이나 웅장한 아름다움이 거세된 인공적인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잘 포착한 작품들이 많아 전시를 보는 내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도시적 감수성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를 추천합니다. 가끔은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이 도시가, 우리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일상의 장소였다는 것을 한번 더 기억하게 해 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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