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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Oct 26. 2020

열등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이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겠죠



    며칠  아는 동생과 옷을 사러 갔습니다. 자신을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스스로를  가꾸는 친구였습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였지만  자주  친구가 세련되고 예쁘다는 생각을 하곤했죠. 동생과 매장에 들어가니 동생은 자신의 옷을 고르다가도, 제게 이것 저것 골라주며 입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워낙 세련되고 눈썰미가 좋은 친구여서 그런지, 자기 옷을 고르다가도 저에게 어울릴법한 보이면 제게 옷을 건네주며 입어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친구가 입어보라며 주는 옷들은 제가 시도해보지 않은 다양한 스타일이었습니다. 제가 옷을 입는 동안 동생은 피팅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전반적으로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이것 저것 다르게 매치해서 입어보라고 새로운 옷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이건  별로네', '이건  사면 좋겠네' 라는 조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쁘단 말도 빠뜨리지 않았죠. 평소에 입지 않던 스타일이라 많이 어색했지만, 제가 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 박시한 맨투맨이나 청바지를 입는 걸 좋아합니다.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아서 그 스타일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골라준 옷들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어색스럽지만 제 스스로도 예쁘다고 느껴지더군요. 평소에 입어본 적 없었던 예쁜 옷들을 구매하고 나서야 저는 '늘 이런 옷들을 입어보고 싶었는데, 왜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입어본 적 없었던 옷들을 구매하고 나서야 저는 '늘 이런 옷들을 입어보고 싶었는데, 왜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풀리지 않던 의문을 가지고 잠에 들려던 차에, 며칠 전 책에서 읽었던 한 가지 실험이 떠올랐습니다. 심리학자 브렌다 메이저와 제니퍼 크로커는 1993년 연구에서 실험대상자들의 얼굴에 크고 흉측한 상처가 난 것처럼 분장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했죠. 그러나 참가자들이 사람들을 만나기 직전, 연구자들에 의하여 고용된 사람들은 "화장한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보습 로션을 덧발라주는 척 하면서, 대상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상처를 전부 지웁니다. 그러나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상처가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죠.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러 갑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얼굴에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러 가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실험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확실하게 차별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보고했습니다. 사실상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상처'가 완전히 지워져 눈에 띄는 결함이 전혀 없었음에도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참가자들은 대화 상대자가 자신에게 굴욕감을 주고자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재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참가자들을 그저 평범한 사람을 대하듯 대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에 상처가 있다고 느낀 참가자들은 자신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죠. 얼굴에 있는 상처 때문에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실험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 때문에 자신을 확실하게 차별한다고 느꼈습니다.


    이 실험은 실제로 어떤 결함 때문이 아니라, 단지 차별을 당할 수 있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만으로도 사람은 '차별을 당한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살아갈 뿐입니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세계를 마주할 뿐이죠. 심리학자 스카펫의 말마따나 많은 이들은 그저 어린 시절 형성된 지도가 세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사람은 실제 그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와 상관이 없이, 자신이 들은 부정적인 말에 의하여 형성된 지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세계를 볼 뿐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 않죠. 그만하면 아름답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부정적인 말들, 자신의 지도에 부합하는 말들은 마음 깊이 새겨둡니다. 마치 자신의 얼굴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다른 이들이 상처 때문에 자신을 차별했다고 느끼듯 말입니다.


이 실험은 실제로 어떤 결함 때문이 아니라, 단지 차별을 당할 수 있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만으로도 사람은 '차별을 당한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만약 어린 시절 상처받고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랐다면, 자신은 상처 받을만 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사랑의 손길을 사랑의 손길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것들을 불편스럽게 여기겠지요. 이들은 이미 받고 있는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지도 못한 채 불행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외모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충분히 아름답고, 있는 그대로 부족함 없어 보이는 사람이 정작 자신은 너무 뚱뚱하다거나,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곡된 자아상이 교정되지 않아 스스로의 매력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죠.


    사실 저 역시 그랬던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지 않고, 한정되고 평범한 스타일 속에서만 편안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그저 무난하고 튀지 않는 스타일의 옷들을 입어야만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유난히 부정적인 말에 취약했던 저는 실제로 제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저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저라고 믿었었죠. 이번에 동생과 쇼핑을 하면서 제가 저의 신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실상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간단합니다. 자신에게 큰 문제가 없다고 믿는 것이죠.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아름다운 백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열등한 자아상에서 쉽게 회복되지 못한 채 평생을 사는 이유는 자신이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은 상처가 없는 깨끗한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간단합니다. 자신에게 큰 문제가 없다고 믿는 것이죠.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아름다운 백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각자에게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운과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두는 각자의 유능함이 있고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시도해본다면, 열등한 마음과 왜곡된 자아상에서 벗어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은 잘 받아들이지만, 긍정적인 측면을 보는데 익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를 향해 좋은 거울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도 있죠. 그러나 그런 것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습니다. 나는 열등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게 부정적인 말을 던진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하루에 한 가지라도 우리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좋은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지만 오늘부터는 하루에 한 가지라도 우리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좋은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누가 해주지 않더라고, 내가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내가 나를 칭찬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앞서 말했듯, 부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용기와 노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분명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얼굴에 상처가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내가 나를 믿어주고, 이만하면 됐다. 괜찮다. 실수하고 잘못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가치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늘 중요합니다. 어떤 세계를 살아갈지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믿으며 사느냐에 달려있으니까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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