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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Dec 16. 2020

노은님 회화에 대한 짧은 단상.

이 어둠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당신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날씨가 풀리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불편한 상황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는 중이다. 미술관은 문을 닫고 예술을 찾는 발걸음은 뜸해져 간다. SNS에 힙한 게시물을 올릴 요량으로 전시를 찾던 일상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간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선배와 동기들은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미술관과 갤러리들에 취업하기 바빴다. 무엇 하나 이상 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전염병이 세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온 세계가 한창 시끄러운 때에도 배운 것이 있으니 틈틈이 전시장을 찾고, 글을 쓰고자 했었다.  


노은님, <꽃구경>, 2015,  종이에 아크릴. 32 x 26 cm. Ⓒ현대화랑


     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한 겨울 입김처럼 자연스러운 숨결이 되었다. 갈 때마다 미소를 띠고 담소를 나누던 카페 사장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야심 차게 시작한 장사가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안겨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는 친한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비슷한 시기 점차 전시장을 찾지 않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팬더믹이 시작된 이후에도 "예술은 우리의 삶의 일부이며 사치가 될 수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예술은 나에게도 점차 사치스러워졌다. 사회가 함께 몸살을 앓으니, 손길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지인들이 가까이서 늘어가니, 삶과 예술의 간극은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노은님, <나무 동물들>, 2011, 종이에 아크릴. 133 x 168 cm. Ⓒ 현대화랑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하다보니, 그제야 예술로 시선이 향했다. 비록 스크린 앞에서의 감상이었지만, 작품에 녹여진 작가의 삶과 목소리를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뜨듯하게 데워졌다. 이 글은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 종합 미술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던 ‘노은님’ 작업에 대한 짧은 단상이다. 읽는 이들의 마음도 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글의 소임은 다한 것이겠다.

노은님, <긴 것>, 2001, 종이에 혼합기법. 78 x 143 cm. Ⓒ 현대화랑





    노은님은 1972년 독일로 떠났다. 경제 개발이 한창 시작되던 때, 국가는 실업 문제 해소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1만여 명의 간호사를 독일로 파견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일로 향할 때, 스물셋 그녀 역시 그 대열에 있었다. 시립병원에서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 그녀는 시간이 나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병원의 간호장이 병석에 누운 노은님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침대 아래 숨겨두었던 노은님의 그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그림들로 병원 회의실 전시를 열어주었다. 노은님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팔았다. 전시회 뉴스는 지역 신문 1면에 났고, 칸딘스키의 제자 한스 티먼은 노은님을 제자 삼았다. 불과 몇 년 사이 함부르크 국립 예술 대학 학생이 되어 백남준, 요셉 보이스와 같은 거장과 함께 작업을 하는 아시아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아시아 여성 최초로 유럽 미술대학 교수가 되기도 한 '최초'를 달고 사는 작가다.


작가 노은님. 가나아트센터 제공.


        노은님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가벼운 끄적임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슥-하고 쉬이 그은 듯 보이는 선들이 특유의 생명력을 내뿜는다. 이 남다름의 비결은 무엇일까 궁금하던 찰나, 작가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작가가 그 비결로 젊은 시절의 고생을 꼽았다. 타고난 천재성도, 혹은 노력의 결실도 아닌, '일찍이 한 고생들'이 그 비결이라고 했다. 인생의 젊은 날 켜켜이 쌓아 올렸던 어려움들이 내공이 되어, 사소한 터치 하나에도 울림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말이다.



    스물여섯, 간호사의 일을 정리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노은님은 자신의 그림이 다른 학생들의 그림에 비하여 하찮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다 집에 가고 나면 그림을 그리고, 다 그린 그림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왔단다. 작가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우울증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림은 그리고 싶지만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작가가 느꼈을 좌절과 어려움의 깊이는 감히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노은님, <생명의 시초>, 1984. 종이에 혼합매체, 258 x 203. Ⓒ 현대화랑


   그러나 그녀 삶에 드리웠던 모든 컴컴한 그림자들은 지금 그녀의 그림이 주는 감동의 깊이가 되었다. 그 어둠을 지난 그녀는 다른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그림을 그리는 돋보적인 '노은님'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노은님의 독특한 작업들 앞에 서면, '표현주의'나 '추상화'과 같은 어려운 단어들로는 좀처럼 담아내기 어려운 생명력과 힘이 느껴진다. 강렬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따뜻하고, 위안을 준다. 작품 앞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그리고 자연스레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시기가 결코 헛되지 않을 수도 있을거란 희망이 피어오른다.


노은님, <깊은 바다>, 2008, 캔버스에 혼합재료, 100 x 141 cm Ⓒ 현대화랑




    우리의 잘못으로 야기되지 않은 외부의 아픔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 때면, 도대체 삶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끝없이 되묻게 된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일지. 이 아픔들이 단순히 지독한 통증으로 끝나버리진 않을지, 혹은 더 깊은 상처와 흉터를 남기진 않을지 자문하며 말이다. 그러나 노은님에게 찾아온 고통과 통증은 그녀를 더 깊고 즐거운 곳으로 데려갔다. 노은님의 그림이 위안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노은님, <하늘의 다리>. 2004, 켄트지에 혼합 기법, 85 x 65 cm. Ⓒ 현대화랑



    그녀의 그림은 마치 고생 한 번 하지 않고 살았을 것 같은 천진함을 포함하고 있으나, 사실상 이 천진함은 혹한기 뒤에 틔운 새싹과 꽃일 뿐이다. 그러니 바라만 보아도 마음 한 결이 편안하고 시원해지는 노은님의 그림을 잠시 감상하며, 이 한파와 고통에 시선을 고정하기보다, 겨울의 끝과 돋아날 새싹을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 어찌 되었든 이 추위는 지나갈 것이고, 우리 삶은 싱그러운 싹을 틔우고 영롱한 꽃봉오리를 맺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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