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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Jan 20. 2021

임신과 출산, 그 지난함의 기록.

조영주 작가의 <세 개의 숨>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시화 하기.


«제20회 송은미술대상전»

신이피 오종 전현선 조영주

송은 아트스페이스

2020. 12. 11. – 2021. 2. 6.


조영주의 <세 개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시화하기.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전시가 지구 곳곳에서 열리고 닫힌다. 오늘도 각양각색의 예술인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관람객들이 세계 각지의 전시장을 향한다. 작가 각자의 호기심이 정박하는 지점은 전시의 수만큼 다양하다. 관람객들 역시 켜켜이 쌓여온 삶의 흔적, 그리고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사유를 따라, 좋아하는 작품과 전시가 각기 다르다.


    나는 유독 언어화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포착한 작업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들으면 막막하기 일쑤였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예술이라는 섬세한 언어로 들리지 않던 어려운 목소리들를 담아낸 작업 앞에 멈춰 설 때 좀처럼 발걸음을 떼질 못하는 듯하다. 그런 작품을 만날 때, 오랫동안 시선이 머무른다. 예술이라는 언어가 이토록 특별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제20회 송은 미술 대전을 구경 가던 날, 조영주 작가의 작업 앞에 한참을 멈춰서 있었다.


기이했다. 작가의 작업은 사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세 개의 숨 In Three Breaths, 영상/사운드 설치, 함석 배기관, 12:37, 2020. Ⓒ 대안공간 루프.


     작가의 최근 작업은 출산과 육아라는 개인적인 사건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출산과 육아는 개인적이나 동시에 지극히 보편적인 사건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목소리는 여과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이 시대가 어느 때인데. 드라마나 광고를 볼 때면 미디어는 여전히 헌신적이고 기뻐하는 엄마, 고상하고 아름다운 육아를 재현하기 급급하다.


세 개의 숨 In Three Breaths, 영상/사운드 설치, 함석 배기관, 12:37, 2020. Ⓒ 대안공간 루프.

    

    

    실상 출산이란 한 평생을 ‘자신’으로, ‘자신’을 위하여 살던 존재에게서 ‘자신’을 박탈하는 경험이다. 출산은 타인을 위하여 모든 시간과 에너지와 노동력을 투입하기를 요구하는 충격적이고, 낯선 경험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이 낯섦에 아주 무디다. 출산이란 당연한 일, 그래서 당연히 잘 해낼 수 있는 일로 치부된다. 그러니 평생을 자신으로 살던 이들이 ‘헌신적 엄마’라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정체성을 부여받을 때 혼란을 느끼는 것 당연하다. 작가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단지 둘 중 하나의 정체성을 택하기 위하여 고군분투 하기보다, 기꺼이 이 정체성의 마찰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다. 우리 사회에선 들리지 않는 이 불편한 목소리에 예술이라는 언어를 입히고, 예술의 목소리로 발화하기를 시도한다.




세 개의 숨 In Three Breaths, 영상/사운드 설치, 함석 배기관, 12:37, 2020. Ⓒ 대안공간 루프.



    <세 개의 숨>(2020)은  튜바, 색소폰, 클라리넷의 불협화음과 배기구 끝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의 집합이다. 작가는 2016년 처음으로 아이를 낳은 뒤, 30개월간 육아일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 육아일지는 <세 개의 숨>의 토대다. (물론 대개 육아가 그렇듯 핏덩이를 쉴 새 없이 돌보아야 하는 현실은 여유롭게 일기 쓰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일지에는 아이의 배변과 수면, 그리고 수유 등이 기호로 간략히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은지 작곡가는 총 3악장으로 구성된 곡을 지어, 아이의 숨결, 아이의 생을 유지시켜야 하는 엄마의 분투와 눈물, 땀, 그리고 안도를 하나의 소리로 만들었다. 이 모든 소리는 관악기와 배기관을 통하여 관람자들의 귀에 도달한다.



    육아의 노고와 지난함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 아이의 숨이 절대적으로 양육자에게 달려있다는 무거운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낳는 막중한 책임감. 육아와 관련된 많은 것들은 좀처럼 언어화되기 어렵다. 우리 사회 역시 이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작가는 ‘숨’과 ‘공기’를 통하여 소리를 내는 관악기와 배기구를 통하여 육아의 지난함을 전달한다. 악기의 불협과, 소음 같은 배기구 소리들의 집합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양육의 경이와 고통을 발설한다. 엄마로서의 좌절과 환희,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절박함과 자부심.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은 관악기의 울림과 배기관의 한숨이 되어 관람객에게 말을 건넨다.



세 개의 숨 In Three Breaths, 영상/사운드 설치, 함석 배기관, 12:37, 2020. Ⓒ 대안공간 루프.


 

    

    최근 아이를 낳은 지인은, "출산의 과정이 이렇게 지난한지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왜 어디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자랐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을 배우는 학교에서 조차 이 모든 과정을 배운 적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임신과 출산이 이렇게 당연하고 보편적인 일이라면, 이 과정이 주는 고통과 슬픔과 상실에 대한 이해와 합의 역시 보편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임신한 여성은 행복하고 고결한 여성으로, 아이를 기르는 엄마는 하얀 침대 위 아이와 평안히 잠이 드는 모습으로 재현되기 십상이다.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발화하고자 하는 이 작가가 사랑스러웠다. 좀처럼 작품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작가의 작업들을 아카이빙한 책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약속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그제야 자리를 떴다. 어떤 목소리를 담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우리 사회가 다 담아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여러 가지 물음에 끝끝내 대답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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