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믿어주며, 존중하며, 버티는 시간은 반드시 결신한다.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
2020.11.25-2021.03.28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브레이브 걸스가 4년 전 발표한 ‘롤린’이 주요 스트리밍 사이트 음원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연일 고공행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부터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한 브레이브 걸스 2기는 벌써 5년 차 입니다. 현재는 공중파 방송까지 섭렵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나, 올 해 초까만 해도 가수로서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연스레 팀을 정리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지냈다고 합니다. 멤버들은 뒤늦게 취업을 위한 한국사 공부를 시작하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며 삶을 유지하고자 했다고 하죠.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대입니다. 아마 이 말이 ‘존버’ 하지 않고는 생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로 유동적이고 불안한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겠죠. SNS를 둘러보다 보면, 젊은 사람들이 종종 '내일에 대한 기대나 설렘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라는 말을 꺼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더 많은 이들이 삶이 어렵다고 느낍니다.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비통함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나, 살아야 하니 다들 버티고 있는 것이겠죠. 남들처럼 사는 것은 그으-나마 버틸만하지만, (물론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길 위에서 존버 하는 일은 훨씬 더 불안하고 어렵습니다.
바쁜 일정 속,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승택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다음 주말까지 이어지는 전시니, 전시의 막차를 탔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재야의 예술가로서 수십년 홀로 작업을 해온 작가의 존재는 '존버'하고 있는 일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필자 역시 갑갑한 일상에서 숨 쉴 구멍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주저하지 않고 작가의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승택 작가는 1932년 생입니다. 아흔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힘 있는 작가입니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비조각’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작품을 선보여왔습니다. 비조각 개념은 간단합니다. 작가는 서양 미술 사조를 무조건적으로 추앙하고 따르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독창적인 작업을 하고자 기존의 미술을 무조건 거부하고, 미술이 아닌 미술을 하고자 했습니다. 즉 비(非)미술을 하고자 한 것이죠. ‘비 조각’ 개념 역시 조각이 아닌 조각, 즉, 조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작업을 ‘조각’을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기존 조각의 고정된 한계를 넓히고, 조각으로 수용되지 않던 범주를 '조각'의 범위로 포섭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작가를 대면한 이들은 하나같이 이승택이라는 인간에게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를 경험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작가의 형형한 눈빛이나 구부러지지 않은 꼿꼿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비록 필자는 작가를 직접 만나진 못했으나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사람들이 말한 아우라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회고전인 만큼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실 두 관을 빽빽하게 가득 메우고 있었으나, 각 작품이 지닌 생명력은 전시를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었죠.
작품들은 당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이상적인’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힘 있게 해체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요즈음 작품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들이 30-40여 년 전,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도 급급했던 시기에 빚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양 예술 사조를 수입하고 추앙하기 바쁘던 시기에 작가가 개척한 독자적인 노선은 작품 속에서 생동감 있게 구현되고 있었습니다.
전시실의 한편에는 노끈으로 묶은 신체와 돌, 그리고 도자기 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습니다. 노끈으로 묶인 돌이나 항아리에는 노끈으로 묶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조각”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주로 매끈하고 흐트러짐 없는 비너스나 다비드 상을 생각합니다. 동양의 조각을 떠올린다면, 굴곡진 도자기를 떠올리겠죠. 그러나 그는 노끈을 이용하여 '정석의 조각들'을 과감히 묶어버립니다. 그리고 패인 자국이 남아 있는 작업물을 하나의 완결된 예술품으로 만듭니다. 이승택에게 노끈이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이상적인 기준에 물음을 제기하고, 틀어박힌 관념을 묶어버리기 위한 유용한 도구입니다.
전시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천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각의 천들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이승택은 쉴새 없이 펄럭이는 천을 '조각하며', 조각 개념에 '움직임'을 더하였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정지된 형태를 의미하던 ‘조각’의 의미를 움직이는 ‘상태’까지 확장합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펄럭이는 바람 뿐 아니라, 물이 흘러내린 자리, 불이 지나간 흔적, 이끼가 자라난 모습들 역시 예술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택은 조각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적인 물질상태로서의 조각을 만들기보다 ‘조각이라는 행위'를 창조하는 작가에 가깝기 때문이죠.
예술가로서 그는 언제나 ‘거꾸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남들이 옳다고 하면 일단 아니라고 하며, 당연한 것들을 뒤집어보고, 부정하는 태도로 살고자 했습니다. 받아들임 보다는 '의심과 거부'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였다고 말할 정도였죠. 어쩌면 작가는 모두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을 따라가기보다, 정해진 길을 의심하고, 자신만의 결을 찾고자 탈주를 시도했기 때문에 생동감 있고 싱싱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존버의 시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문득 이승택의 작품이 생각납니다. 이승택은 홍대 조소과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주류 예술계의 일원으로 일평생 살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재야의 삶을 선택하여 재야의 예술가로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선구적인 설치 미술가였음에도 지난 50년간 국내 주류 미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2009년 백남준 아트센터 국제 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국내에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국제 예술상을 수상하던 때 그의 나이는 77세였습니다. 수십 년 재야 예술가로서 ‘존버한’ 끝에,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 것이죠.
필자는 이승택 전시를 보며, 작가가 가진 고유한 힘과 독특함에 경이감을 느꼈습니다. 작가가 이런 작품을 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작품이 촌스러워지거나 녹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늘 궁금했죠.
어쩌면 그가 ‘존버’했던 그 세월이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그가 사람들의 박수와 환대를 받는 예술가로 살았다면 지금 그의 작품들이 이토록 생동감 넘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인생이 매번 고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버의 시간이 산출한 단단함과 반짝임은 꽃길이 줄 수 없는 고유의 힘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실 속에서 피어난 화초와 존버의 터널을 지나온 생존한 잡초의 생명력이 다르듯 말입니다.
이승택은 평생을 잡초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급 온실에서 앞다투어 모셔가고자 하는 고급 잡초 대우를 받고 있죠. 질긴 뿌리와 생명력을 지닌 그의 삶과 작품들이 국현 서울관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개인전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 은 3월 28일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