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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Jun 02. 2021

걱정을 말하는 건 도움이 될까.

마리안느 머스그로브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 서평.


1.


    육아서적의 스테디셀러인 '감정코칭'에서는 아이의 원초적 두려움을 이해하고, 인간의 일곱 가지 보편적 감정 (기쁨, 슬픔, 공포, 경멸, 혐오, 흥미, 분노)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흔히 부모들은 아이를 기르며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로 표현하는 아이가 되도록 기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터놓지 않는다.


   초등 3-4학년 아이들의 교회학교 교사를 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아이들의 특성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을 두렵고 부끄러운 일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아이들!) 흔히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상황 앞에서(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거나, 혹은 가정 안에서 폭력을 겪고 있다거나.)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마음을 출력할 수 있는 아이들은 소수에 그친다. 아직 인생을 10년밖에 살지 않은 이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스스로 읽어내지 못한 채 억압하기 급급한 것이다. 때로 이 마음의 어려움은 이유를 모르는 폭력성이나 과격함으로, 혹은 다른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나 무기력함으로 그 모습을 바꿔가며 나타난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을 두렵고 부끄러운 일로 느낀다.



2.


    아이들 수업 교재로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두려움을 명확하게 언어화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아이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  |  마리안느 머스그로브 글 / 김호정 역 | 책 속 물고기 | 2019년 12월 25일


    책의 주인공 줄리엣은 걱정이 많은 열 살짜리 여자 아이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줄리엣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매일 언니를 못살게 구는 동생 오필리아, 일에 빠져있는 엄마, 발명품을 만드는 건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빠, 그리고 줄리엣을 두고 싸우는 린지와 젬마까지. 줄리엣의 마음은 좀처럼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나 우연이 걱정 나무를 만나게 되면서, 줄리엣은 매일 밤 잠이 들기 전이면 걱정 나무에 자신의 걱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걱정 나무 위에 있는 동물들이 줄리엣의 걱정을 대신 맡아줄 수 있도록 말이다. 줄리엣은 잠들기 전,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근심 거리를 두고 동물들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걱정을 명확하게 말할수록 보다 섬세하고 정확하게 걱정을 맡아줄 수 있으니, 줄리엣은 동물들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슬픔과 분노를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3.



    "걱정을 말해봤자 무슨 소용일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걱정을 말해봤자 상황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의 거장, 프로이트 조차 "무의식의 의식화"가 시작될 때, 사람은 건강한 정신에 한 뼘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언어와 하기 시작할 때, 상황 자체는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문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는 넓어지고, 그 깊이 역시 더하여진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언어와 하기 시작할 때,  문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는 넓어지고, 그 깊이가 더하여진다. Ⓒfamilyfelicity

  


      우리는 문제가 없는 곳에서 살 수 없다. 따라서 당장의 문제 해결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제 상황을 헤쳐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갖는 것일 테다. 그리고 단단한 마음을 갖기 위해 아이들이 (그리고 나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자. 마음에 힘이 있고 여유가 있을 때면, 평소에 크게 느껴졌던 문제도 만만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길 테니 말이다.







ps.


표면적 염려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푸념'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되는 지점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언어화하는 과정은 우리는 우리도 잘 몰랐던 우리 마음을 출력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되어준다. 걱정과 두려움을 억압할 경우 우리는 우리 마음을 돌보는 법에 무뎌진다. 그러나 감정을 말하는 연습을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볼 수 있을뿐더러 다른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








* 책 정보


-2007년 호주 국립 평화 어린이 문학상

-2008년 호주 가족상담협회 어린이 문학상

-2008년 호주 퀸스랜드 문학상 어린이 문학 부문 최종 후보

-2008년 호주 아델라이드 페스티벌 어린이 문학상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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