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만큼 상대를 존중하는 어휘가 있을까.
오전부터 주차 문제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을 나가려고 집에서 점심을 먹고 주차장을 향하니, 내 차 앞을 떡하니 막고 있는 차가 한 대 있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공간 중에서도 굳이 내 차 앞을 막아둔 것도 기가 차는데, 심지어 번호도 호수도 적어두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기가 막혔다. 관리자분께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물으니, 각 집 벨을 누르며 차주를 찾아야 한다고 하셨다. 반지하부터 5층까지, 각 층에 네 가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족히 스무 번은 벨을 눌러야 할 터였다. 결국 엄마는 반지하부터, 나는 꼭대기에서부터 집집마다 벨을 누르며 차주 찾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누르지 얼마 되지 않아 차주 찾기에 성공했다. 벨을 누르고 죄송하지만 혹시 아반떼 xxxx 차주가 계시냐 물으니, 아무 대답이 없이 나오더니 왜 찾냐고 묻더라.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무 미안하다는 말 없이 잠시 후 내려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이 더운 날 주차장에서 차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상황을 알게 되신 한 이웃 분께서는 뭐 이런 경우가 있냐며 직접 주차장에 나와 함께 기다려주시기도 했다. 차주가 내려오자 엄마는 '번호도, 심지어 호수를 적어두는 란에 호수도 적어두지 않으면 어쩌냐'라고 따지듯 물었다. 차주는 '번호는 떨어져서 곧 붙이려 했을 뿐'이라며 퉁명스러운 대답을 남긴 채 차를 빼기 시작했다.
미안한 일을 하고도 미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는 그분의 얼굴을 보니, 오랜만에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더라. 엄마에게 '저분은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신다'라고 말하니, '미안하다고 말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만들지 않았겠지' 하며 넘기셨다. 내려온 이웃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상황을 잘 풀어가려고 하셨으나 차주의 냉랭함에 곧 웃음기를 거두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사람은 온전히 옳고 그름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다. 감정이 상하면 옳은 일도 큰 가치를 갖지 못할 때가 있다. 가끔은 잘못된 일일 지라도 감정이 잘 다스려진다면 부드럽게 지나가기도 한다.
만약 아반떼 차주가 '미안하다, 번호를 써두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라고 사과했다면, 사람이 그럴 때도 있다며 부드럽게 넘어갔을 것이다. 제 때 출발하지 못해 마음이 상한 것은 사실이나, 차주가 빌라 안에 있었고, 너무 늦지 않게 차주를 찾았다는 사실도 감사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삶은 부정적인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실수할 수 있도, 또 잘못할 수 있지만 그 실수와 잘못 속에서 따뜻함을 배우기에 더욱 아름답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아끼는 것은 용서받을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자, 상대가 나를 품어주고 용납해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더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지만, 자신은 끝까지 옳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기도 하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아끼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있을까.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하지 않으려는 고집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이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기꺼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상대의 용납을 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너무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이 빛나는 말들을 아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 보석 같은 말들을 아끼고 아끼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아까우니 말이다.
사진 출처
http://wesmd.com/getting-up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