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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Aug 02. 2021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나 자신이 되는 첫 걸음

책 <유원>와 '정서적 협박'에 관하여.


책 유원, 그리고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법.


    최근 한 연예인의 '가스라이팅'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연예인의 인성 문제 논란에 그치지 않고, '가스라이팅'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은근한 정서적 학대'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갖는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당하고 사는지'  모른다. 때론 '당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른다. 대만의 심리학자 저우무쯔에 따르면  '정서적 협박'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이 가스라이팅은 아주 교묘하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감정과 생각을 부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들 수업을 준비하다가 정서적 학대, 혹은 '가스라이팅'에 관하여 생각해볼만한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가끔 아이들 수업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들을 읽다가 생각지 못한 통찰들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유원> 역시 그런 통찰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책 <유원>







     윗 층에서 무심코 던진 담배 꽁초는 아파트 세 층을 전소하는 대형 화재가 되었다. 여섯 살이던 주인공 유원은 언니의 기지로 물에 적신 이불에 쌓여 베란다로 던져졌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화재를 구경하던 한 아저씨는 떨어지는 유원을 받아내다가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유원의 언니는 가스를 많이 마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유원은 여러 사람의 생을 갉아먹고 살아남은 존재였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큰 기적과 기쁨을 주는 존재여야 마땅했으나, 정작 유원 본인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유원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드는 삶이었다.


     유원은 자신을 살리고 목숨을 잃은 언니가 싫었다. 언니를 아는 모두 사람들은 언니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대단한 언니를 대신하는 삶이란 어린 유원에게 너무나 버거웠다. 유원을 받아낸 아저씨는 사고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목숨값’을 은근히 요구하며 돈을 받으러 왔다. 유원의 부모님은 ‘아저씨’에게 쩔쩔맸다. 아저씨가 돌아간 뒤로는 아저씨가 요구하는 금액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곤 했다. 모두가 유원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원은 숨을 쉬는 순간 조차도 평범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모두가 유원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원은 숨을 쉬는 순간 조차도 평범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 thegreenfaeriequeene





    소설 <유원>은 주인공 '유원'이 자신 안에 있던 상처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한 언어로 서술한다. 그리고 '치유'가 무엇인지 정교하게 보여준다. 치유가 극적인 엑스터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책 <유원>이 과연 치유를 다루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치유란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더 명확하게 분리하는 것, 그러니까 보다 냉철해지고 보다 매몰찬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건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주 명확한 경계를 갖는 일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 과정을 정확히 짚어냈다.


    유원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서 일종의 '정서적인 강요'를 받는 존재였다.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자신을 살려준 은인과 언론까지, 유원에게는 모두 자신을 압박하는 존재였다. 유원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었다. 언니가 자신을 살리고 죽었다는 사실과 자신을 받아낸 아저씨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누가 오롯이 스스로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유원은 '영웅 같은' 언니를 혐오하는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사고 10년이 지난 이후에도 무리한 금전적 요구를 하는 '의로운' 아저씨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정서적 협박' 연구로 잘 알려진 대만의 심리학자 저우무쯔는  '타인과의 불분명한 정서적 경계선'이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고, 이 죄책감이 정서적 어려움과 질병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 적 있다.


    심리상담을 시작한 뒤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 내담자들이 나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감정적인 어려움의 뿌리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바로 ‘타인과의 불분명한 정서적 경계선’이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정서적 협박’을 당하고 있지만 어떻게 개선하고 벗어나야 하는지 알지 못해 괴로워한다. (저우무쯔, 정서적 협박에서 벗어나라, 8)



    정서적 협박은 부모, 자신, 직장, 부부, 친구 등 우리 삶의 다양한 관계에서 흔히 나타난다. 협박자는 부탁이나 위협, 압박이나 침묵 등의 직간접적 협박 수단을 사용해 상대방이 좌절감이나 죄책감,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정서적 협박자을 받는 사람은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마치 유원이 그러했듯, 자신이 타인의 감정과 생을 전부 책임져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정서적 협박은 우리 삶에 만연하다. ‘엄마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에게 이럴 수 있니’ ,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고작 이런 부탁 하나도 들어줄 수 없다니’라는 식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모든 과정이 일종의 ‘정서적 협박’에 포함될 수 있다. 협박자는 은근한 비난, 그리고 평가 절하, 불안감 조성 등의 방식을 동원하여 상대의 마음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한다. 그리고 협박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가 나쁜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견디지 못한 채 협박자의 요구에 순응한다.


. 협박자는 은근한 비난, 그리고 평가 절하, 불안감 조성 등의 방식을 동원하여 상대의 마음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정서적 협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는,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해결책은 간단하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의 과제는 상대의 과제로. 그리고 자신의 과제는 자신의 과제로 분리하라는 것이다. 이 과제의 분리는 아들러 심리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다.


    <유원>을 보면, 주인공 유원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타인과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하며, 그녀를 둘러싼 정서적 협박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유원은 불필요하게 언니와 아저씨의 과제를 떠안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자유를 맛보기 시작한다. 유원은 더이상 자신에게 언니를 투영하는 ‘신애 언니’에게 친절히 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언니의 대리물일 수 없음을 용기내어 말한다. 더불어 아저씨에게 더이상 착한 소녀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다. 아저씨가 부담되니, 더이상 삶에 관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아저씨의 어려움은 아저씨의 과제일 뿐, 그것을 자신이 책임져줄 수 없음을 분명히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는 치유가 주는 자유와 평안함에 성큼 성큼 다가간다.





    과거 유원은 착한 아이여야 했다. 유원은 자신을 살려준 두 인생에게 늘 ‘고마움’을 느껴야 했으며, 죽은 언니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아야 했다. 그 시절 유원은 불행했다. 모두가 '행운아'라고 부르는데, 유원은 스스로를 불운아로 칭했다. 그러나 유원이 성장하기 시작하며, 그녀는 결코 언니가 될 수 없으며, 아저씨의 삶을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원은 누구도 자신에게 협박을 가할 수 없도록 단단한 내면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유원>은 주인공 유원의 패러글라이딩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불길을 피해 11층에서 던져지던 그 순간, 유원은 언니와 아저씨의 삶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소녀여야 했다. 그러나 스스로 산 위로 올라가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은 유원은 타인을 만족시키는 삶을 벗어나 오롯이 '유원'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다.


스스로 산 위로 올라가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은 유원은 타인을 만족시키는 삶을 벗어나 오롯이 '유원'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다.


    만일 유원이 '착한 아이'로 남아있으려 했다면, 유원은 결코 성장할 수도, 자유로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고, 타인의 위협에 굴복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타인과 자신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설정하며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은 자주 '나 자신을 넘는 일'이 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욕을 먹고, 비난을 받으며, 타인이 원하는 내가 될 수 없음을, 그리고 타인의 요구보다 나의 원함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에야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게 된다.



* 참고

사진 PARAGLIDING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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