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 서평.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
미국 메릴랜드주 퍼스트레이디 유미 호건 자전 에세이
유미 호건 저 | 봄이아트북스 | 2021년 09월 30일
요즈음 영미권에서는 "눈송이"라는 단어를 빗대어 젊은 세대를 비판한다고 합니다. 눈송이 세대(snowflake generation)’는 남의 비판을 잘 견디지도 못하고, 인내력과 정신력이 약한 젊은 세대를 영미권에서 꼬집어 부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눈송이 세대'란 젊은 세대의 나약함을 '만지면 바로 녹고, 원형을 알 수 없게 부서지는 눈송이의 특성'에 우회적으로 빗댄 표현이라고 할 수 있죠.
눈송이 세대에 속하는 영국의 젊은 작가 올리비아 어틀리(Olivia Utely) 역시 이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눈송이 세대'는 소셜미디어라는 '자기만족'의 벽에 둘러싸인 안전한 공간에 모여서 서로 '지속적인 불평'을 늘어놓는 걸 격려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녀가 소위 말하는 '눈송이 세대'에 속함에도 자신이 속한 세대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뤘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의 발언은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젊은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즉 '나약한 젊은이들'이라는 트렌드가 아주 달갑게 다가오지만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 나름의 최선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자꾸 '나약한 이들'로 치부되는 것일까 궁금했었죠. 그리고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나약하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출판사로부터 서평 의뢰를 받았습니다. 미국 역사상 첫 아시아계 퍼스트레이디인 유미 호건의 자전 에세이였습니다. 그녀는 이민자로서,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일을 하며 세 딸을 길러내고, 교육하고 그리고 예술 대학의 교수이자 한 메릴랜드 주지사의 아내 역할까지 수행한 철의 여인입니다. 그래서 잠시 고심하게 되었죠. 저는 그녀가 '일 밖에 모르는, 그러니까 성취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성공신화'를 이야기하는 책을 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어 제안을 수락하기까지 망설임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일 밖에 모르는, 그러니까 성취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성공신화'를 이야기하는 책을 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어, 제안을 수락하기까지 잠시 망설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안을 수락하고 며칠 뒤 책이 도착했고, 저는 삼일 동안 자는 시간을 조금씩 아껴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죠.
그녀가 살아온 삶은 주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처음 그녀는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지만, 미국의 삶은 싱글맘으로서 세 딸을 길러야 하는 투쟁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주변 친구들이 골프를 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주지사 아내의 삶을 시작하며 메릴랜드를 위하여 8년을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메릴랜드의 무수히 많은 마이너리티들의 삶의 질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냈고, 전염병으로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조금 더 안심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죠.
모든 이들이 그녀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삶이 더욱이 빛나는 이유는 그녀가 걸어온 길이 결코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책을 읽으며 '눈송이'와 같다고 비판받는 젊은이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젊은 세대의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나약함에 있기보다 그들의 삶에 타인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젊은이'들의 문제라기보다 현대인들의 문제일 수도 있죠.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노출되었던 세대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4-5세 아이를 둔 어머님들도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과도하게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아직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개인 영어 선생님과 수업을 받고 있죠. 수학은 2-3년 선행이 기본처럼 여겨집니다.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왔지만, 그 어떤 아이도 자기 학년 수준의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타인을 이겨야만 생존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이들은 자신의 삶에 타인의 자리를 내어주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린 시절부터 이토록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인 구조이다 보니, 자기 하나 개발하고 건사하기에도 젊은이들은 늘 시간과 돈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것조차 것도 버겁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우리 삶에 타인을 위한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은 어리석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글을 읽으며 타인을 위한 삶의 고귀함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반짝인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스캇펙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자신의 삶 하나 영위하는 게 쉽지 않은 요즘, 그녀의 책이 많은 이들에게 도전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저 역시 타인에게 내 삶을 확장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시간과 재화, 에너지를 나에게만 쓰기에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의 결핍은 더 깊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죠.
이러한 시대에 그녀의 자전 에세이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자리를 기꺼이 내주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여줍니다. 그녀가 반짝이는 이유는 최초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명예로운 이름 때문이라기보다, 타인을 향한 자리가 과감하게 내주었던 그녀의 넓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