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별로 특별하지 않은 수백일의 수요일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직장을 구하거나, 가족과 재회했을 때처럼 중대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긍정적인 경험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피험자의 26퍼센트가 사별한 후에도 예전과 같은 빈도로 즐거움을 찾았다. 그들에게 두드러진 점은 일상적인 활동과 상호작용을 재개했다는 사실이다.
저자인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는 "하루를 지내는 방식이 바로 삶을 보내는 방식이다"라고 썼다. 작은 일을 하며 행복을 느끼게 되길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행복을 안겨줄 작은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중략) 블로거 팀 어번Tim Urban이 썼듯, 행복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 쉽게 잊히는 수백 일의 수요일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옵션B, 셰릴 샌드버그, p. 138-139)
나는 일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어머니 한 분이 '일만큼 중요한 것은 취미니, 취미 생활을 쉬지 마세요'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어머님은 나의 이십 대가 더 반짝이기를 응원한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셨다. 돌아보면 어머님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시고, 나를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을 던지셨던 것 같기도 하다.
일을 하는 동안에 나는 늘 여행이 가고 싶었다.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 일상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그래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던 이십 대 초반도 그랬고, 학업을 마치고 일을 열심히 하던 때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도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었다. 주변에서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 개인에게는 무엇이 됐든 잘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사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루는 시간을 내어 친구와 바다를 보러 갔었다. 일에 지쳐 백신 휴가를 내고 수업을 하루 쉬기로 결정하고 떠난 일정이었다. 바닷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문득 아름다운 바다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나의 행복을 이 바다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이 얻고 싶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말 떠나고 싶은 것일까. 떠남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일상에서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는 없는 게 아닐까. 혹은 일상은 더 행복해지고 여행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말이다.
사실 당일치기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을 행복은 나의 일상 곳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 내내 날씨는 흐렸지만 바닷가 앞에 앉아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1년 전에 왔던 맛집을 한 번 더 방문하기로 결정하며 설레는 마음도 좋았다. 변하지 않은 맛에 감탄하며 식사를 하는 순간도 좋았다. 밝고 고요한 카페 공간도 참 좋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매일을 후 매일 작은 요소들을 여행처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좋아하는 것을 미루지 않기도 결심했다. 매일 스스로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밌게 사는 걸 추구하는 성향이지만, 정작 그렇게 살아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데 익숙하신 분들이었기 때문에 매일 재밌는 일을 한다는 생각은 낯설고, 조금은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을 늘렸다. 몸이 피곤하거나 눈이 아플 땐 늦잠을 자거나 일을 마친 후 잠깐의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꾸준히 오전 시간에 기상하고자 했고, 기상한 후로는 침대 위에 누우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자기 시작하니, 늦잠을 잔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오히려 하루 중 더 오랜 시간을 편안한 컨디션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되며 만나는 사람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빈도가 늘었다.
좋아하는 쿠키가 먹고 싶은 날이면 주저 없이 차를 끌고 나갔다. 조금 멀어도 '좋다는 카페들'을 다녀보고, 수업 전 친구를 찾아가 점심시간 잠깐 얼굴을 보고 가기도 했다. (생각보다 나를 만족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았는데, 나도 잘 모르는 내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시는 '그 분'이 매일 내 안에서 알려주셨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생각 외로 단순하고, 아주 저렴한 가격과 에너지만 사용하고도 깊은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더라.)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지내보니, 문득 내가 떠나고 싶다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람은 일상에 만족이 있다면 이 일상을 보다 깊이 사랑하게 되고, 일상에 지쳐 이것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나기를 갈망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도피성 쉼'이 아닌, 그냥 온전히 쉬러 여행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니 딜라드의 말처럼, 우리가 하루를 지내는 방식과 태도가 곧 우리 인생을 보내는 방식과 태도가 된다. 그러니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기를 주저하지 말자. 행복을 선택한다고 해서 당장에 내 가치가 떨어지거나 뒤쳐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 행복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 쉽게 잊히는 수백 일의 하루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매일의 행복을 깊이있게 누리는 사람에게는 투덜거리거나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을 뜻하지 않은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