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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Apr 19. 2022

디뮤지엄 ⟪어쨌든 사랑⟫:인생샷을 위한 미술관에 관하여

요점 뜨는 미술관: 서울숲 디뮤지엄, ⟪어쨌든, 사랑⟫ 전시 리뷰


⟪어쨌든, 사랑⟫

2022.03.16-2022.10.30. 

디뮤지엄 서울숲 개관 특별전. 






대중을 위한 미술관이란 어떤 곳일까. 


    최근 성수동 서울숲 근처로 새롭게 이전한 디뮤지엄의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힙플레이스'들은 다 모여있는 성수동에 새롭게 이전한 미술관의 모습은 어떨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뮤지엄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술관으로 유명세를 떨쳤기 때문에, MZ 세대의 놀이터가 되는 성수동에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업들을 보여줄지도 궁금했습니다. 


디뮤지엄 ⟪어쨌든, 사랑⟫ 포스터



    지난 몇 년 동안 대림이나 디뮤지엄은 우리 일상에서 사소하게 넘기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전시는 일상에 대한 신선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공간이 되어 주었고,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그러나 꼭 생각해야 하는 영역들을 곱씹어 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대중들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난해하거나 어려운 요소는 제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 되어주었던 점도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인이었습니다. 



Neon nights, 2019 © Henry O. Head




그래서 본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외출이 편치 않았던 코시국에도 대림이나 디뮤지엄의 전시는 꼭 방문하고자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2년간 열린 전시들을 고려할 때, 이번 서울숲 재개관전 ⟪어쨌든, 사랑⟫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습니다.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난 두 해 동안 열렸던 전시를 간략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2021년 열린 ⟪기묘한 통의 만물상⟫에서는 자연분해가 되지 않는 유리와 거울 소재, 혹은 버려진 플라스틱과 천 조각 & 의류 등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들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막대한 양의 일회용 쓰레기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은 시기적절하게 쓰레기가 단순히 '폐기'되는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전시의 끝 무렵 새로운 기술과 신소재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을 전시하며, 폐기물 문제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묘한 통의 만물상⟫ 포스터


    저는 전시가 적절한 시기 관람객의 마음을 열어주는 역할을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시각적 즐거움까지 보장되었기 때문에 어린 관람객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점도 참 좋았습니다. 아마 전시를 방문했던 관람객들은 보다 흥미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의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묘한 통의 만물상⟫ 이 열리기 한 해 전, 2020년에는 사운드를 중심으로 큐레이팅 된 기발한 전시가 열리기도 했니다. ⟪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은 그간 '시각적 행위'였던 예술을 '청각'으로 확대하며 시각예술에 익숙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관람객들은 소리, 빛 그리고 시각 효과가 함께 어우러진 공간을 거닐며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 공간 경험의 뒤편에는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관람객들은 한층 확장된 층위의 예술을 감상하는 동시에 작품 속 숨겨진 메시지들을 통해 작업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즐길 수 있었죠. 


⟪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 포스터


    두 전시 모두 일상이 예술이 된다는 비전을 잘 구현한 동시에 대중들이 편안하게 다양한 이슈에 대한 사유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습니다. 





    

    대림이나 디 뮤지엄 전시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적으로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 역시 한산한 시간에 편안하게 감상하고자 평일 늦은 낮 시간을 골랐습니다. 그러나 재개관 첫 전시여서 그런지 전시장 입구부터 사람들이 꽤 많았고, 간혹 북적이거나 줄을 서서 사진 찍는 이들을 기다려주어야 하는 스팟들도 있었습니다. 


Anna and Magda, Lubliniec, 2014 ⓒ Lukas Wierzbowski


    전시장에 들어서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이 시선을 끄는 작업들이 많았습니다. 전시 관람 후 미술관 굿즈를 많이 사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포스터나 엽서를 사들고 돌아오기도 했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기는 전시였습니다.  오늘은 개개의 작품보다는 전시에 대한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이 저에게 불러일으킨 생각들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미술관은 어떤 공간인가. 아니, 미술관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먼저는 전시장이 주는 인상은 '대형' '3층 규모의' 사진 찍는 공간 같았습니다. 전반적인 큐레이팅 방식이 '사진 찍는 관람객'들을 겨냥한 것처럼 보였죠.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을 나와 SNS에 검색을 해보니 화려하고 다채로운 스튜디오에서 찍은 듯한 전시 인증샷들이 북적였습니다. 


    새로운 디 뮤지엄은 소위 말하는 '요즘' 미술관처럼 고결하고 깨끗한  '화이트 큐브'와는 거리가 먼 듯 보였습니다. 물론 여전히 몇몇 미술관은 2022년인 지금까지도 아주 고상하고 신성한 예술 감상의 공간으로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긴 합니다. 이런 곳들은 사진이 대중화된 이후에도 작품들이 훼손되고,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최대한 늦게 사진 촬영을 허가하고자 하였죠. 


(* "촬영장"화 되어가고 있는 미술관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2014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런던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그리고 이탈리아의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동시다발적으로 미술관 내 사진 촬영을 허가하기 시작할 무렵 세계의 미술관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죠.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 전시장 내 촬영을 허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새로운 방식. Ⓒ The Gurdian


    미술관 촬영 허가 결정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미술관은 '인생샷 찍기 좋은 공간' 그리고  '고상한 문화생활'이라는 두 가지 메리트를 기반으로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관람 인증샷 (혹은 인생샷)을 남기는 이들은 미술관을 홍보해 주는 광고 전광판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들의 홍보물을 보고 또 다른 홍보물을 생산하기 위하여 미술관을 찾습니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사진 촬영만 허용해도 이렇게 파급력이 꽤 좋은 광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금지할 이유가 없죠. 요즘은 미술관에 가면 사진 전용 스팟을 곳곳에 만들어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예술 감상보다 더 중요한 목표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이들을 하나의 작업으로 만들었던 김홍식의 "Flâneur in Museum_Louvre ". 2016-7. Ⓒ 김홍식



    저는 사진 촬영이 '예술 감상을 위한' '고상한 문화적 행위'를 방해한다며 이를 금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 고상함을 고수하는 행위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고집이나 아집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미술관 역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이 올 수 있는 똑똑한 마케팅 수단들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죠.


Alea dream, Topanga, 2019 © Tristan Hollingsworth


    그러나 미술관이 사진 '만' 찍는 공간이 되어도 좋은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미술관은 '고귀하신' 작품과 멀찍이 떨어져서 조용히 작품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은 일상에서 놓쳤던 다양한 주제를 생각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사람들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리고 조금 거친 표현일 수 있지만, 요즘 미술관은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명품백 같은 수단으로만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 이에 대하여 "미술관이 그런 공간이 되면 안 되나요?"라고 질문을 하신다면, "안 된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술관이 우리 삶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적어도 일상에 치여 제쳐 두었던 생각과 사유를 촉발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다면,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두께는 얇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술관의 문턱을 낮춘다기보다는, 되려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협소하고 가볍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Sasha and Melissa (Kiss), 2016 ⓒ Chad Moore

    

    미술관은 우리의 일상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바쁘고 치열한 일상에서 켜켜이 쌓아두기만 했던 마음과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꺼내보고, 이것을 손에 꼭 쥐고 다른 이들과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미술관이 사람들을 충분히 고민하게 하고, 느끼게 하고, 또 이야기하게 하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이들이 그곳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미술관은 더 깊이 있고, 두터운 공간으로 세워져 가긴 어려울 것입니다. 




  

  예술의 영역이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예술이란 기존 개념을 재생산하기보다는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던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사유하도록 장려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의 미술관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고, 그래서 또 사소하게 넘기곤 했던 우리 사회의 면면을 낯설게 만들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사유해야 할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감각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감당해왔죠. 더불어 그간 예술에서 소외되어 왔던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관람객으로 포섭하여 보다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향유할 수 있도록 부단히 변화하고 확장해왔습니다. 



디 뮤지엄, ⟪어쨌든, 사랑⟫



    저는 이 흐름 속에서  '사진 찍기 좋은 미술관'이라는 변화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게 예술을 전달할 수 있는 긍정적인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다양한 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연락할 빌미가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비록 새롭게 재개관한 디뮤지엄의 첫 전시에 대하여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 떨쳐지지 않았지만, 이후의 디뮤지엄이 더 많은 대중과 함께 대중을 위한 미술관으로, 그리고 대중을 조금 더 강하게, 단단하게 만드는 미술관으로 성장하는 행보를 보여주기를, 그리하여 더 깊어지고 두터워지는 미술관이 되어보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 글의 중간에 삽입된 사진들은 ⟪어쨌든, 사랑⟫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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