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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경변호사 Jun 18. 2019

여행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

김영하 - 여행의이유

조건없는 환대라는 경험

김영하작가는 어느 덧 우리가 믿고볼 수 있는 작가가 되었는데,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김영하가 작가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이 

그의 글에 어느 방면으로든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요즘 제목과 작가명을 숨기고 읽더라도

이 책의 제목이 유추가능하고

그리고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유능한 작가이고 좋은 책이라는

저만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이유'라는 이 책은 그 기준에 충분히 부합합니다. 


제목과 작가명을 숨기고 읽더라도, 

김영하 작가가 쓴 글이라는 것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결국은 여행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여행에 관해서 하고 싶던 이야기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구절에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노바디가 되기



저도 이 글을 쓰기 전에 여행을 주제로한 매거진 글을 썼던 적이 있고, 

여러편의 글을 쓰면서 결국은 내가 여행에 관하여 하고싶은 말이 많은 줄 알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여행에 관한 나의 미묘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생각에 이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제가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은

여행지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 였는데,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경비를 마련하는 능력과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이유는 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비용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여유가 늘어나는 만큼

여행을 가지 못할 이유와 책임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가지 못할 이유와 책임이 늘어날 수록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지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유와 책임을 포기하고서라도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는

한국에서 내가 속한 지위와 책임 그리고 이유를 알지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어느 곳에 가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자'는 '아무곳에서나'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실패가 장려되는 곳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실패를 겪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실패로 인한 비난

그리고 실패에 대한 위로를 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타인들이 그것을 실패라고 정의하면

우리는 '나의 실패'에 대해 타인에게 미안해합니다. 


그러나 여행에 있어서의 실패는 

사람들에게 장려되기도 합니다. 

길을 잃은 일로 우연히 더 좋은 광경 또는 사람을 만났다거나 하는 일들을 꿈꾸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여행지에서는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현실에서의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 더 실패하는 자신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이럴수도 있지 저럴수도 있지의 마음은

어느새 나의 마음과 그리고 신체마져도 가벼운 느낌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마음가짐도 일상 생활속에서는 쉽게 허용되지 않기에

이 가벼운 마음을 위해 여행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환대


우리는 막 태어난 신생아 시절 이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도 누군가로부터 환대를 받는

경험을 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났을 때에는 울음 소리 한번에 그리고 웃음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애정을 표현해주며

나의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그러나 성장해가면서는 타인으로부터 환대를 받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해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과 몫을 해낼 때에만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그러나 여행을 가서는 '여행자'라는 새로운 지위로 

타국에서 충분히 환대받을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그곳에서 어떤것을 모르고 잘 못하더라도 

질책받지 않고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외형적인 다름으로 인하여

내가 걸어가고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환대를 받기도 합니다. 


 조건없는 환대의 경험을 하는 것이 일상에서 어렵기 때문에

이 순간을 여행에서나마 느끼고 싶은 것일 수도 있죠.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한 여행자는

일상에 돌아와서 또 다른 여행자를 보았을 때

자신이 조건없이 받은 환대를 그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호캉스의 즐거움


요즘은 새로운 장소에서의 마주치게 되는 낯선 상황에 번거로움을 느낀 사람들이

도시에 있는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고, 

호텔 + 바캉스를 합해 호캉스를 즐긴다고 표현합니다. 


저도 가끔은 호캉스를 즐기고 호캉스를 좋아하면서도

근처에 있는 집을 두고 호텔에 가야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나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하였는데 

작가의 이 말을 듣고 이유를 찾았습니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처음 들어설 때도 그렇고, 다음날 외출하고 돌아올 때도 그렇다.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운다. ... 그래서 일상사가 번다하고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것만 같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호텔은 늘 삶이 리셋되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캐릭터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 캐릭터를 만들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나 실제의 일상에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지 못하죠. 


그래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호텔에 가서라도

내 삶이 리셋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호텔에 가서 리셋한 나의 삶,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익명성 속에 숨긴채 

휴가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여행에 관한 작가의 글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일상에서 우리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일인 걸까요.


이 책은 여행가서도 읽을만한 얇은 책이니

여행갈 때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을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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