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경변호사 Dec 18. 2018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뉴스

뉴스의시대 - 알랭드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뉴스를 듣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긍정적인 내용의 뉴스가 없다는 점이다.


뉴스가 긴급하다고 전하는 속보는

부정적인 내용인 경우가 많다.

미담이나 긍정적인 내용의 뉴스는

아주 가끔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런 궁금증이 생겼을 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작가는,

선진 경제에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뉴스 타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교회의 시간 규범을 따른다.


그런데 뉴스는 세상사를 그저 보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뉴스는 지극히 뚜렷한 우선순위에 의거한 새로운 세상을

우리 마음속에 공들여 짓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간다.


그래서 작가는,

만약 당신이 한 나라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미술관, 교육부, 또는 유명 소설가들의 집으로 향하지 말고

대신, 정치체의 신경 중추인 뉴스 본부로 곧장 탱크를 몰고 가라고 한다.


즉, 뉴스가 마치 종교와 같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뉴스가 우리에게 각기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이 더 큰 관심사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도록 용인함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뉴스가 자극적인 문제들을 내보이면서,

"나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뉴스가 주는 안도감은  우리가 실제 느낄 필요도 없었던 안도감일 뿐이다.

 





비판적으로 뉴스를 보기


1. 언론은 이야기의 극히 일부만 뽑아내서 우리에게 전달한다는 사실을 숨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뉴스를 접하면서

어떤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문제를 알면서도 그 해결가능성을 논할 수 없다.

우리는 뉴스로 이야기의 일부만을 전달받기에

오히려 개선 불가능하고 근본적으로 혼란스런 우주 속에 던져진 듯한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뉴스 기사는 다른 식으로 깊이 상상하려는 우리의 의지뿐 아니라

그 능력까지 축소하는 방식으로 사안들을 특정한 틀에 가두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서체와 가장 권위적이며 믿음직한 헤드라인 아래 숨어 있을지 모를,

잠재적으로 심각한 바보짓에 대해 항상 회의적인 태도로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2. 뉴스는 민주정치의 적이다.


작가는 민주정치의 진정한 적은 다름아닌 뉴스에 대한 적극적인 검열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뉴스는 검열 대신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고 한다.


특히 정치 뉴스가 따분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뉴스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할 때,

사회는 자신의 딜레마를 붙들고 고심하는 일에 위험할 정도로 무능해지고,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대중적 의지도 결집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뉴스는 국가가 겪는 문제의 뿌리가

상류층의 범죄행위에 근본적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상상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3. 뉴스와 오래 시간을 보낼수록 몹시 익숙해지게 될 두 가지 감정은 두려움과 분노다.


작가는 뉴스가 부정적인 문제만을 다루고

무의식적으로 "우리도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뉴스를 보면 볼수록

두려움 또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어떻게 뉴스를 봐야 할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마치 뉴스가 절대적인 진리와 사실을 전달하는 것 처럼 느끼기 쉽지만,

실제로 뉴스는 특별히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하지 않으며,


오히려 뉴스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기 위해

이야기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소개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중요하게 소개하는 등

편파적으로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뉴스를 맹신하지말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뉴스를 수용하자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판사님의 고민을 우리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