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마음, 무력하다는 생각을 이겨내는 법
우리나라의 재판제도는 3심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사실관계 및 법리의 문제를 판단하고,
3심에서는 앞선 1, 2심의 판단이 적절히 이루어졌는지를 다시 살펴봅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소송은 대부분 1심과 2심에서 이루어지고 끝맺음 하게 됩니다.
1심 소송이 끝났을 때에는 패소하더라도 아직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2심에서 새로운 증거를 발견한다면 1심 판결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심 재판이 끝나고 패소의 결과를 받았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이제는 모두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결과에 대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소송을 진행했던 제 마음이 이렇듯 무겁다면
소송당사자의 마음은 몇 배는 더 무겁고 암담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민사소송이라면 생각하지 못했던 돈을 오히려 상대방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막막함
그리고 형사소송이라면 수 년간 형을 살아야 하고,
이 사실이 다시는 번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음이 주는 무거움이
이런 종류의 무거움입니다.
그런데 소송절차가 끝나면서 느끼는 패소에 대한 마음의 무거움보다도
평소 더욱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사건들을 만났을 때 입니다.
이럴 때 무력감을 느낍니다.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사건'이란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없어보이는 사건입니다.
소송당사자에게는 분명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일반인이 생각하는 법관념과 법의 구성요건이 충돌되어
결국은 당사자가 생각하는 수준의 법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 때 억울함을 느끼는 당사자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지만,
처벌을 피하는 것을 도와드릴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하기에
무력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직원이 회사의 돈을 빼돌렸고 횡령 또는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직원이 같은 액수 또는 더 많은 액수의 돈을 다시 회사로 돌려놓는다고 해서
이미 성립된 횡령, 배임의 범죄 행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돌려놓은 사정은 형을 정할 때 참작될 수 있지만
범죄의 성립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절도의 경우에도,
당사자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점은
"물건을 훔친 것은 사실이지만 훔쳤다가 돌려놓았는데 내가 왜 처벌받아야 하느냐?
나는 얻은 이익이 아무것도 없는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물건을 훔친 순간 절도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사자가 이익을 얻은 것도 없고,
절도행위를 한 일에 관해서 깊이 반성하면서 다시는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절도행위를 한 것 자체도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이런 당사자의 개별적인 사정이 법원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괜히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존재했던 범죄 행위를,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데도,
신이 아니어서 아쉽다라는 이런 이상한 종류의 무력함입니다.
"왜 무죄가 될 수 없느냐?"고 묻는 당사자앞에서
이런 법의 구조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
한숨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순간에 이르게 되면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가장 친절히
'억울한 점에 대해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법이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당사자에게 어떤 위로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엎지른 물을 다시 담는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면
피해자의 상처는 누가 위로해줄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적은 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저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력감을 이겨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상황에서 법적으로 가장 나은 해결책을
당사자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으로
남은 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당사자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무력감을 이겨내며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