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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경변호사 Feb 05. 2019

이런 기쁨들이 있어서 일할 수 있다

송무변호사로 일하면서 즐거운 점들

홍콩과 영국의 경우에는 법정에 출석하여 변론을 하는 변호사와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 맡는 변호사를 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변호사의 업무 구분이 없는데, 

법률상담을 하고 재판에 출석하며, 법률 서류를 작성하는 변호사는 '송무'를 하는 변호사라고 말하고 

기업에서 자문 등의 업무를 주로 맡아 일하는 변호사는 '사내변호사'로 통칭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저는 송무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


변호사이지만 변호사의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률과 법률의 해석문제 등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당사자와 사건에 관한 법률상담을 하고, 재판에 출석하는 일련의 송무 변호사가 하는 일들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입사하여 자문 등의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변호사가 됩니다. 

사내변호사의 경우도 재판 출석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회사 또는 기관 내부의 법률 자문 업무를 주로 담당합니다. 


어느 분야이든 일의 어느 부분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송무변호사의 업무강도 및 스트레스가 

결코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재판에 출석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제출 날짜가 정해진 법률 서면을 작성하는 일, 

잦은 야근과 갑자기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 의뢰인과의 법률상담 등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여러 일들을

제한된 시간 내에 해내려고 하다보니 업무스트레스가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송무변호사로서의 즐거움


저는 다행히도 송무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위에 나열하였던 업무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송무변호사로서의 업무가 저에게는

그다지 큰 스트레스로 느껴지지는 않고

이 일을 하면서만 느낄 수 있는 여러 즐거움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송무변호사로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업무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1. 정리하는 즐거움


소송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법률적인 문제를 가진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법률상담을 통해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일입니다. 


이 때 의뢰인과 몇 시간 동안의 긴 상담을 하기도 하는데

상담을 하면서 사건 내용을 파악하고 소장작성을 준비합니다. 


처음 사무실에 방문한 의뢰인의 경우

어떤 사건이 어렴풋이 법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법률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업무이기도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법령, 책, 인터넷, 판례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법률사무실을 찾아온 의뢰인은 겪은 일을 상세히 이야기 하고,

저는 이 사건을 결국 법률적인 사건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법률적으로 의미가 없는 사소한 문제들을 제외하고 

필요한 구성요건들을 강조하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재구성을 끝낼 때는 

마치 어지러운 방을 정돈한 느낌이 드는데

이 때 스스로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2. 상호작용의 즐거움


재판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의뢰인과 상담을 한 후 법률서면을 준비합니다(소장)

그리고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에서 변론기일(재판기일)을 지정합니다. 

약 한 달후에 지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판에 참석하면, 재판장(판사)은 변호사가 제출한 법률서면을 보고

앞으로의 입증방법에 대해 질문합니다. 

변호사는 이미 상담을 하고 소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두었기 때문에

이 점에 관하여 진술하고(말하고) 

위 과정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 후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을 선고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장을 제출하는 쪽을 원고라고 하는데, 

원고가 소장을 제출하면, 소장을 받는 다른 당사자(피고)는 소장내용을 보고

이 내용에 반박을 하고 반박 내용을 확인한 원고가 다시 피고의 주장에 반박하는

일련의 공방을 하게 됩니다. 


제가 준비한 소장과 변론 계획에 대한 재판부(법원)과 상대방(피고)가

주는 일종의 피드백인데, 이런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흥미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낸 서류를 보고 내 주장에 모순이나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또 다른 서류와 재판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즐거움은 팀웍이 중요시되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충분히 느껴볼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저는 동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의도하지 않은' 업무공조를 하게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 그 내용이 궁금하고 즐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3. 공부하는 즐거움


변호사시험을 칠 때에는(저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등 많은 법률을 일시에 공부하지만, 

변호사가 모든 법을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법을 '잘'아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배운 지식을 이용하여 

법률적인 문제와 구체적인 법령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일을 하고 사건들을 맡을 때에도

기본법들을 통해 배운 지식을 이용하여 변호사도 구체적인 법령을 따로 공부하고 적용하면서 

사건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새로운 법령도 결국은 기본법과 체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공부를 조금만 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문제가 되는 조문의 경우 조문의 입법취지 및 관련 판례 등을 리서치하여 

자세히 공부하면서 소송을 준비합니다. 


이 때 필수적으로 새로운 사건에 맞는 새로운 법률, 법령이 있다면 공부해야하고

판례도 새로 찾아봐야 합니다. 

관련 사건의 판례를 모두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측에게 유리한 내용을 주장하기 위해

논문 등 모든 문헌을 샅샅이 찾아보기도 합니다.


바쁠때에는 이렇게 반드시 공부해야하는 이 일에

큰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항상 공부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4. 성과의 즐거움


학교를 졸업하면서 시험을 칠 일이 별로 없고, 

일반적으로 업무를 하면서 명확한 피드백 혹은 평가를 받는 일이 적습니다. 

그러나 변호사의 업무는 항상 '법원의 판결'로서 증명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을 했던 사건이라도 

결국 패소하게 되면 그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기도 하고, 

1심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여

2심에서 승소를 하게되면 무엇보다도 기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일은 늘 '판결'이라는 성과를 받게 되는데

이 점이 괴롭기도 하지만 성과는 한편으로 피드백이기도 하기 때문에

진행했던 사건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그 사건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 유사한 사건을 맡으면 어떻게 해야겠다고 

스스로 연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과가 늘 좋지만은 않더라도 명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피드백을 바탕으로 업무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피드백을 마냥 괴로움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5.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


송무변호사로서의 업무시간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출퇴근 시간과 업무내용 등에 있어서 자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건을 맡게 되면 전체적인 진행과정은 로펌에서 다른 변호사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결정하지만, 

그 외의 세부적인 사항은 모두 담당변호사가 결정하고

재판도 담당변호사가 출석합니다. 


그래서인지 업무에 있어서 큰 간섭을 받지 않고, 

맡은 사건을 승소할 수 있도록 잘 처리 하면 되기 때문에 

업무 시간 등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할 일이 많으면 야근을 하고

할 일이 없으면 다른 일을 하면서 쉬기도 합니다. 

야근을 하는 날이 월등히 많기는 하지만, 

내 시간을 내 스스로 조절해서 쓸 수 있다는 작은 만족감이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찾은 즐거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회사생활에서 누구나 공감할만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저와 같은 업무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래서 하고 있는 일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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