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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Mar 02. 2024

[e] 그녀가 말했다.®

■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혼자라고만 생각하지 마.


누구에게나 한 번씩 세상을 견디고 버티다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겨울바다처럼 차디찬 파도가 자신을 덮쳐오는 힘든 시기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그래. 어김없이 그날이 나에게 찾아왔다 아침알람 울림의 시작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이 힘에 부치게 힘들게 느껴져 지는 것도 모자라 일분 일 초마다 끝없는 무력감과 공허함이 나를 덮쳐왔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밥을 먹는 순간에도 밥을 먹는다는 느낌보다 그냥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꾸역꾸역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었다. 그 힘겨운 순간들이 어느새 어둠이 하루를 뒤덮고 나서야 겨우 하루의 끝자락에서 서 있을 수 있었다. 


점심때 그녀와의 통화에서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그녀가 우리 집 앞으로 무작정 오겠다고 했다. 난 괜찮다고 했지만 여전히 난 그녀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횡단보도 반대편에 서서 해맑은 미소를 나에게 건네고 있었다. 그날은 그녀의 해맑은 미소조차 받아주지 못하고 난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난 그냥 오늘 하루를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해졌을 뿐이라 생각했다. 그녀도 힘든 하루를 보냈을 텐데, 나를 위해 애써 한 걸음에 달려와준 그녀의 고마움도 잊은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녀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점심때 수화기 너머 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모든 걸 말해준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를 따스하고 포근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다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혼자라고만 생각하지 마." 


그녀의 그 말에 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아니 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다. 항상 그녀에게 내가 힘이 돼주겠다고 말했던 그 말을 지키고 싶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에게 위로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녀 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남자여야만 한다. 그러니 절대 그녀 앞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래서 난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눈물을 애써 삼키며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 괜찮아. 너야말로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내가 너한테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었네. 미안해."


"그녀가 말했다" 내 앞에서 약한 모습 보여도 괜찮아. 내 앞에서 울어도 괜찮아. 네가 힘겨울 때, 내가 힘겨울 때조차도 난 우리가 "함께"였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 철없는 아이처럼 그녀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녀는 나를 따스히 안아주었고, 그제야 따스하고 포근한 그녀 품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도 억지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 고단하고 눈물 나게 비정한 세상이 나를 아무리 힘겹게 하더라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나를 힘겹게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그녀와 함께라면 난 행복하다고... 


ps... 문득... 드라마 아일랜드의 한 대사가 생각이 난다. 너한테 사랑은 영원히 함께 행복할 사람인가 보다. 나한테 사랑은 함께 불행해도 좋을 사람. 영원할 거란 믿음보다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 그 사람과 함께라면 불행까지도 행복해져 버리는 사람 -드라마 아일랜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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