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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Feb 29. 2024

[e] 청춘 현장에 목격된 건 피해자뿐이었다.®

■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누구나 손길이 필요하다.


https// : 지난날. 내가 증오로서 여겼던 모든 것들에 참회한다. com


젊음을 불태우기보다 시간을 죽이는 게 더 쉬운 법이라고 했던가, 나는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이었다. 그러다 손가락이 멈춘 곳은 또래의 친구들이 취업을 하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는 나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맹세하는데 이 다큐는 내가 영화. 식스센스의 결말을 목격했을 때 느껴졌던 소름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나는 하나를 그저 하나라고 여겨왔을까?! 그랬다. 아이들은 어른을 올려다본다. 올려다보는 시야에서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이름은 숭고함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나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또래들이 선생님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 여태껏 보이지 않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서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 보이는 법이다.


그렇게 감았던 눈을 뜨고 바라본 풍경은 마치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새벽부터 일어나 산에 올라 오르는 순간순간마다 느껴지는 고됨을 견디어 내고 끝내 나의 시선 끝자락에 정상이 보여서 들뜬 희망을 품고 정상에 발을 딘은 순간. 내가 오른 코스에서는 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내가 무엇을 위해 새벽부터 이 고생을 했나?라고 느껴지는 충격과 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서 선생님이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선택지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라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선생님이라는 숭고한 이름이 아닌 선생님이라는 안정된 직업이었다.


난 절대로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렸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타인의 선택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오만이다. 나에게 충격으로 느껴졌던 건, 내가 여태껏 색안경을 쓰고 하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는 것과 학교에 본질적 문제는 관료적인 시스템 속에서는 선생님들의 의무나 책임이 무력해지나 불구가 돼버리기 마련이고 출근을 하는 순간 오늘의 임무 또는 TO DO LIST에 지나지 않는 수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해자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잘못된 환경에 속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온전히 무지를 인식할 때 느껴지는 충격이었다. 그들에게 선생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좋은 직업이라 제시할 수 있지만 만족하는 삶이라고 충족시킬 수 없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받기보다는 그저 지식을 전달하려는 선생님을 마주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의 피해자는 어린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른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춘 현장에 관람자는 넘쳐났지만 목격 건 피해자뿐이었다.


그제야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그들도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나의 과거는 악몽이 되었다. 그저 시커먼 Sunglasses를 통해 무수한 색깔을 지닌 것들을 보려 했다니. 내 생에 어찌 이보다 부끄러운 순간일 수 있겠는가?! 지난날. 내가 증오로서 여겼던 모든 것들에 참회한다. 나의 등 뒤에 있어서 보지 못했다는 핑계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볼 때, 그제야, 사실은 내 곁에 가장 가까이 머물렀던 진실을 깨닫는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누구나 손길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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