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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Feb 27. 2024

인투 더 와일드® 여행을 사랑해서 행복을 살해했다.

■ 인생은 시간낭비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https// : Prologe → "당신의 시간을 줘봐. 여행 속에 허덕이게 해 줄게". com


평화로운 일요일. 나는 집에 있지만 오늘도 여전히 밀린 업무를 하고 있다. 

회사는 매번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일은 끝이 없다. 그래서 업무는 밀린다. 학생이었을 때 숙제를 뒤로 미루면 혼나면 되는 일이지만 미생에 나오는 대사처럼  "최선은 학교 다닐 때나 대우받는 거고, 직장은 결과만 대접받는 곳이다."  사회인에게 업무를 뒤로 미루면 사회에서 밀려나는 경쟁구조다. 인재는 언제든 대체가능하기 때문이다.  밀려나면 낭떠러지다. 날개 없이 태어난 나는 바닥에 처박힐 일이다. 무엇보다 대충 해서는 그런대로 밖에 살수 밖에 없다. 나도 좋은 차,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세네카는 가난하다는 것은,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런 의미라면 나도 한 번쯤은 가난해보고 싶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제일 잘 되기를 빈다. 그래서 현실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현실을 놓치고 살아가야 미래를 잡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하는 것만이 오늘을 버터낼 유일한 방법이 된다. 


점심을 먹고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너무 부드럽고 달콤한 잠이었다. 죽는 건 두렵지만 이대로 사라진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하루의 정적을 깨트리는 소리. 핸드폰 진동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나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찰나의 행복을 놓칠 자신이 도저히 없다. 난 그냥 등을 돌리고 현실을 모른 체하기로 하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동은 멈출지 모른다. 끝내 같이 자고 있던 침대가 일어났다. 녀석은 혼자 일어났다는 게 억울했는지 나를 흔들어 침대끝자락으로 몰아세운다.  비몽사몽 한 채로 전화기를 집어 들어 확인해 보니 녀석이었다. 나는 반가움 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이불속에 집어넣은 체  전화를 넘겨버렸다. 자고 일어나 보니 녀석이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이 보낸 것은 영화 포스터였다.


인생, 친구가 있으세요? 그럼 됐습니다. 

내 곁에.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카피라이터, 정철- 


정착하려 했는데 여행을 선물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녀석이 보낸 포스터에는 나를 꼭 빼닮은 사람이 버스 지붕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새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거야? 제일 멀리 가 본 게 어디야? 뒷동산이지? 그러지 말고 당신의 시간을 줘봐. 여행 속에 허덕이게 해 줄게. 

"나를 쏙 빼 닭은 여행을 보면 자유 <탈출구>가 보일까, 영화를 틀었다." 



https// :  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연을 더 사랑한다. 

               난 지금 걷고 있다. 야생 속으로... com


"그는 누구인가?!"  

원래의 이름으로 부른다면,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 

올바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알렌산더 슈퍼 트램프. 



그는 유형보다 무형을 사랑한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항상 모험을 즐기는데 쓰였다. 심지어 4살 때는 집에서 6블록이나 떨어진 곳에서 헤매다 이웃의 부엌에서, 의자 위에서, 사탕함에서 발견되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축하 식사자리에서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졸업을 축하한다. 선물로 새 차를 사주마. 그는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구나... 부모님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제가 새 차가 왜 필요하죠? 제가 고급차를 원한다고 생각하세요? 새 차는 필요도 없을뿐더러 제가 원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는 대학을 무사히 마치고 좋은 회사를 찾아다니는 대신 톨스토이나, 잭 런던, 소로 같은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외롭지만 극단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찾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말한다. 가고 싶은 곳에 맘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유쾌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법의 굴레와 넌더리 나는 책임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다. "정말 무결한 자유" 길은 항상 서쪽으로 나있다. 


6월 말경. 대학에서 부모님께 오빠의 마지막 성적표를 보내왔다.

거의 모두가 A였다. 남아공 인공 차별 정책, 아프리카의 현대 정치와 식량 위기, A의 향현은 계속됐다.


7월 말이 돼도 오빠한테서 소식이 없자. 부모님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전화를 소유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부모님은 오빠를 놀래줄 요량으로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5월 말. 관리인에 말에 따르면 크리스 <오빠>가 방을 비운 건 그때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세놓음”이라는 표지만 있었고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9월 초, 부모님은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버려진 차 하나가 크리스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크리스가 돌아오려고 한다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가 고생하고 있다는 증거 역시 없었다

경찰이 생각하기에는 크리스가 스스로 선택해서 떠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


그의 성격대로 크리스는 탈출 역시 극단적으로 이뤄냈다. 그를 자신 답지 못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말이다. 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에게 자식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학 졸업이라는 지루한 4년을 참았고 의무를 끝 마쳤을 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받았으니까. 무엇보다 나답지 못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대학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아이디어의 세계. 안전 불감증, 부모, 물질 과잉의 세계에서 벗어나야만 했을 것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이 아니라 온전히 혼자되었을 때 어둠 속 빛에 그을리는 그림자를 통해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았을 테니까. 그리하여 그에게 여행과 탈출은 다르지 않았고 떠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가 하고 있는 말은 꼭 해야만 했던 말이다. 그리고 난 믿는다. 그가 하고 있는 일 역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그는 그의 이야기를 썼다. 그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도 그일 것이다. 


새장 안에 갇힌 당신처럼, 난 그런 걸 싫어해요. 나에게 준 돈으로 방랑하는 건 너무 쉬워요

돈 한 푼 없는 지금 생활이 훨씬 흥미로워요. 난 내 인생을 앞으로 올 시간을 위해서 살기로 했어요

자유와, 아름다움, 이런 것이 너무 좋아서 버릴 수가 없어요


알래스카에 갈 거예요. 난 바깥세상의 모든 길이 될 거예요. 저 바깥세상이요

나 스스로요 시계도, 지도도, 도끼 뭐 이런 거 아무것도 없이요 단지 저 바깥세상이요

큰 산 하늘 뭐 이런 거만 있는 저 바깥세상... 야생이요


거기 가면 뭘 할 건데? 그냥 사는 거죠 그냥 있는 거죠

특별한 그 시간, 그 공간 속에서요. 만약 내가 돌아오면 여행에 관한 책을 쓸 거예요. 


그는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로드 바이런의 말로 대변한다.  


길 없는 숲에는 기쁨이 있다. 외로운 바닷가에는 황홀함이 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 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

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연을 더 사랑한다. 난 지금 걷고 있다 야생 속으로... – 로드 바이런 -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가 야생으로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이다. 그것은 탈출과 여행의 기묘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그의 여행 속에는 아주 달콤한 것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 설렘이 부풀린 풍선처럼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행을 머금은 채 미소 짓는 탈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실에서 탈출은 없고 오늘도 떠나지 못할 때, 떠나고 싶어도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정말이지 영화밖에 없다. 영화는 현실을 침묵시키고 경험이라는 달콤함을 선서한다.


https// : 여행과 탈출의 기묘한 동거의 시작. com


"젊은이, 도대체 뭐로부터 그리 도망치는 거야? "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그는 도망치려고 여행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의 여행을 탈출과 한 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은 탈출을 머금은 채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의 극치였다. 그는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었다.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광스럽게 떠난 것이다. 그는 야생을 사랑해서 여행이 되기로 했다. 



인생의 절벽아래로 뛰어내린데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 번지점프를 하다.-



https// : 직장은 생활을 보장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com


그 이야기는 거짓으로 잘 포장된 추악한 진실이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누구나 넌더리 나는 굴레와 책임 그리고 고독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자유와 소속감은 인간이 가지는 공존의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관계는 퇴보하고 4차 산업이 늘어갈수록 청년들의 사회 단절은 엿가락처럼 너무 쉽게 끊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근하는 길에 뉴스를 보다 참혹한 슬픔을 목격했다. "고독사. 하면 과거에는 노인들의 이야기였지만 현재에는 청년들의 고독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외로움이 가득 널브러진 그들의 방에서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 마음 뒤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마음이었다. "날아가는 마음 억지로 당겨와. 억지로 산다. " 드라마 아저씨의 나오는 대사처럼 사회생활이 더해질수록 죄책감만이 늘어가는 나의 일상이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시대의 친구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 하상욱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고된 하루가 떠났다. 힘든 내일을 남긴 채"라는 게시물의 하트의 숫자는 오늘도 늘어만 간다. 


어느 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언저리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부터였을까? 하루에 몇 번이고 울려 되는 이명 소리에 정신이 조금씩 갉아 먹혀가는 것만 같다. 나이를  들어서 지켜야 할 건,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라고 하는데 직장 생활의 연차가 늘어가면서 미래로 나아가기보다 청춘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어쩌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주하기 싫어. 차라리 외면했던 진실들이 이제야 수면 위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나를 모른 체 살아서였을까? 점점 더 나라는 존재가 인지가 되지 않는다. 현재에 저당 잡힌 채 나를 소비할수록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두려워진다. 무엇보다 삶이 무서워지는 건 혼자 있기보다 둘이 있는 게 더 괴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목적을 상실한 시스템의 고아가 돼버렸다. 그래서 지속되는 일상에서는 아지랑이처럼 불안함이 피어오르고 반대편에 아무도 없는 시소에 올라탄 무게는 한쪽으로만 쏠려있다. 


언제부터, 삶을 버리고 안정을 바삐 따라가는 일상이 된 걸까?

언제까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칠흑 같은 질문에 묻혀 살아야 하는 걸까?

오늘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반복하며 살아야 할까? 


나의 일상에는 한 순간의 포근함도 전율도 없다. 

정직하게 불안은 하루하루 쌓여만 가고 억눌린 감정은 끝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래. 직장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순 없지만 불행하지 않게 해 준다. 

그렇다. 직장은 생활을 보장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https// : 여행이 생각보다 비싸더라, 이번생에 못 사면 어쩌지? com


오늘은 겨우 짬을 내어 퇴근 후 친구랑 술자리를 만들었다. “여행이 생각보다 비싸더라, 이번생에 못 사면 어쩌지?” 녀석에게 행복한 아이처럼 투정을 부려 본다. 이것저것 따지면 아무것도 못해. 여행 전문가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했는데 “첫 번째로 일단 무작정 티켓을 끓어라.” 오늘 저지르고 나면 내일의 내가 알아서 수습한다는 거야.


녀석의 기특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에 저당 잡혔다는 이유로 핑계라는 돌을 하나를 + 더 했고 그렇게 올려진 벽돌은 난공불락의 안시성처럼 거대해져 버렸다. 뇌는 본능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을 거부하기 마련이다. 뇌에게 가장 첫 번째 보내는 신호는 안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다. 그래서 개구리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구리는 물을 아주 천천히 데우면 끓는 물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결국 서서히 죽게 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고통이 늘어 갈수록 불안이 익숙해진다. 빌어먹을... 점점 더 그 속에서만 안정감과 안락함 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그곳이 나의 집이 되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해봐. 난 살아있다. 화이부실 < 華而不實 > : 꽃은 화려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문턱은 넘어서면 어지러워. 내게 편한 나의 경계선이어서. 심장만 어지럽혀 치워 둔 쓸모없는 감정은 먼지 덮여. 여길 벗어나면 죽음. 익숙한 슬픔보다 낯선 행복이 더 싫어서, 걸음 버린 나... 헌신발이 될까만 겁이 나. 세상, 세월, 사람 날 꺾어 신어서. 잊고 있어. 문 앞에 수북이 쌓인 신문과 고지서처럼 나와 상관없는 세상의 생각, 요구들 내 앞에 늘어놓지 마. This is my home. Leave me alone. 여기만은 들어오지 마. 이젠 눈물 없이도 운다. 그저 숨 쉬듯이 또 운다.


내게 행복할 자격 있을까? 난 왜 얕은 상처 속에도 깊이 빠져있을까? 사는 건 누구에게나 화살 세례지만 나만 왜 마음에 달라붙은 과녁이 클까? 감정이 극과 극 달리고, 걸음 느린 난 뒤떨어져 숨 막히고 내 맘을 못 쥐어. 세상을 놓쳐. 몇 걸음 위 행복인데 스스로 한 단씩 계단을 높여. 누구에겐 두려운 일 하지만 내겐 웃음보다 자연스러운 일. 사람이 운다는 것은 참을수록 길게 내뱉게만 되는 그저 그런 숨 같은 일. Let me breathe. 슬픔이 내 집이잖아. 머물래 난, 제자리에. 잠시 행복 속으로 외출해도 반듯이 귀가할 마음인 걸 이젠 알기에. 집이 되어버린 슬픔을 한 걸음 벗어나려 해도 문턱에서 운다. 나도 모르게 운다.  -집, 타블로 -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습관이다. “의지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습관 덩어리다.”라는 말이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 드라이든은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현대 일상의 Climax는 둘 중 하나다. "사느라 바빴던가. 죽느라 바빴던가."



https// :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건, 떠나지 못해서였다. com


떠나고 싶은 나  :  분명히,  떠나고 싶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럼 떠나야지 뭐 하고 있는 건데...?!


떠날 수 없는 나 :  내가 떠나고 싶다고 했지, 떠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안 했잖아!!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떠나지 못한 건 떠나지 못해서 인데....


떠나고 싶은 나  :  결국, 네가 말하자 하는 건 시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 일생에 완벽한 시기는 절대 오지 않아. 


또 다른 내일이 되어도. 떠나지 못하는 나와 떠나고 싶은 내가 싸우는 광경을 목격할 것이다. 

그래. “하겠다” 와 “하고 있다”는 완전히 다른 말이었고 "가는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빌어먹을... 역시 말로는 힘이 부족하다. 역시나 방어기제는 주장할 때 보다 변명할 때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통로는 늘 열려 있었지만 삶을 유지한다는 핑계로 통로를 막으려 그리 애쓰며 살아가고 있구나. 오늘을 숨 막히게 견뎌내느라 지금을 느끼지도 못하고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난 그리도 고통 속으로 나를 밀어내려고 그리 애쓰며 살았나 보다.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지나가니까. 하지만 절망은 끝이 없다. 내가 없으니까.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시간이 한꺼번에 몰려 폭풍우가 되어온다. 모든 감정에서 나를 날카롭게 찌르는 감정들.  후회. 미련. 자책. 원망. 시기. 피할 곳은 없다. 서서히 공허함 그 이상을 너머 알 수 없는 것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버린다.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파도에  정처 없이 떠밀려 다니다 이내 죽는다. 나는 보았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오늘의 의무 속에 파묻힌 체 시들어 가는 것을 말이야. 난 살만큼 살아왔고 살 수 있을 만큼만 살았다. 난 후회할 만큼 후회했고 주저할 수 있을 때마다 주저했다. 매번 후회와 미련이라는 놈에게 발목을 잡혔다. 허상과 환상에 범벅된 미래 때문에 오늘마다 불안감을 놓지 못하고 경직된 삶을 살았다. 일기장에 쓰라고 한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이름표도 없이 나를 버리고 오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대변하고 과거는 불안이었고 불안이 곧 나였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현재를 눈 가리고 동시에 놓치면서 살았던 이유가.... 


떠날 수 있는 조건은 나 하나고,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인데, 언제부턴가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내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게 됐다. 나를 모르는 나를 데리고 어떻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없어서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이 느껴진다."는 고집스러운 알리바이는 민망할 정도로 되풀이된다. 오늘을 죽이는 걸로 삶을 유지하는 짓은 상자 속에 갇힌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상황과 무엇이 다를까?


※ 슈뢰딩거의 고양이  :  고양이가 상자 속에 갇혀 잇다. 상자엔 방사성 해고가 독가스 통이 연결되어 잇다. 그 핵과 독가스가 붕괴할 확률은 50%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상태를 "고양이가 반쯤 살았고, 반은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즉. 고양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사실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 장 폴 사르트르-



https// : E/A ND_ 과거가 끝났다.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com


아침 뉴스입니다.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교통사고 현장에 또 다른 차량이 미끄러지는 2차 사고가 나면서 차가 전복되어 3명이 크게 다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민종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간신히 정신 차려 보니 눈에 보이는 건 천장뿐이다. 죽음의 문 앞에서 잡았던 문고리의 촉감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다.  방금 전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삶이 찰나에 바스러지는 장면이었던 거 같은데... 간호사가 다가와 말한다.  환자분 약이 투여되셨으니 잠이 오실 거예요. 5. 4. 3. 2. 1. 


FUCK! FUCK! FUCK!!! "이번 생은 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가 절벽 끝에 서 있게 된 걸까?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천천히 현재를 돌아 평생을 외면하고 모른 체 지나쳤던 과거 앞에 섰다. “그곳엔 내가 없었다.” 뿌옇게 형태가 떠 있었지만 그건, 곧 사라질 연기에 불과했다. 제기랄!!! 그랬다. 난 여태껏 유령으로 살았던 것이다.


턱밑에서 오래전 익숙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한 번이라도 살아있던 적이 있기는 하냐?!  XX. 없어. 어쩌라고!!!!!!! 억울한 마음이 역겨워서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이내 쉰 소리가 날 때쯤 주저앉아 버렸다. 마지막 그 한마디를 하려는 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을 연신 때리며 입을 벌려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장이 번개처럼 나를 때렸다. 그렇게 난 그 찰나 죽었다가 살아났다. 죽음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체감하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관점이 뒤집어진다. Open Your Eyes. 감았던 눈을 떴다. 


절벽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는 텅 비어 보였고 발아래는 더 이상 디딜 틈이 없었다. 발끝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한 떨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내 수평선 너머 무언가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파도가 나를 완전히 덮쳐버렸다.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떠밀려 눈을 뜬 곳은 또다시 절벽이었다.


“무서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두려움을 내뱉고 있었다. 그 순간 귓가에 누군가 속삭인다. 너 이대로 떨어지면 죽을지도 몰라. 그대로 해야겠어?!  두려움. 그게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잖아. 모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더 이상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아. 심장에서 느껴지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최대한 뒤로 물러섰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디딤 발에 모든 것을 걸고 힘껏 몸을 내던졌다. 몸뚱이는 중력의 법칙에 의해 꼬꾸라 치며 떨어지기 시작했고 매 순간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과 살아있다는 전율이 교차 반복되었다. 어느새, 땅바닥이 눈에 선명해지는 순간까지 이르렀다. 그 순간 공포감이 나를 완전히 잠식시켰다.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난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번쩍 눈이 떠졌다.


눈을 뜨면서 처음으로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까”

병원에서 눈을 뜨자마자 내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회사였다. 

나는 상관에게 말했다. "그만두겠습니다."   


E/A ND _ 과거가 끝났다.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와라. 그들이 답했다. 우린 두려워요.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와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기욤 아폴리네르-



https// : "정착하려 했는데, 여행을 선물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com


젊은이, 도대체 뭐로부터 그리 도망치는 거야? 저도 같은 질문을 드릴 수 있어요. 전 이미 대답도 알고 있고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뜻이에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지금 당장 야생으로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새로운 경험) 떠나야 한다. 그곳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행복한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 임수정은 말했다. 자기 원하는 뭔가가 있으면 그거는 짧게라도 스스로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것을 원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걸 좋아하고 저걸 싫어하는구나. 이것을 할 때 행복하고 저것을 하면 불행하네. 이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데  저 사람과 있으면 외로움 느끼는구나. 모두 경험을 통해서만 이유를 확인할 있다는 뜻이다. 


즉. 새로운 경험이 "나"라는 사람의 기호와 성향을 알려주고 그것이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에 기준점이 된다. 인간은 선택의 시기에 가장 뚜렷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모두가 통일된 선택을 할 때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사람을 보면 기준점이 뚜렷한 사람이구나.라고 이해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를 온전히 흔드는 것, 사소한 감정이지만 나를 잠깐이라도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경험해 봐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는 선배는 신입생들에게 말한다. 내가 말해줄 것은 하나뿐이야. 소크라 테스의 제자가 돼라. 매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너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대학생활에 술. 클럽. 연애에 미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편식하는 경험으로 배를 불리지 마. 대학 생활은 가장 많은 경험의 선택지가 있고 정당하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야.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매일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 타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어 보는 것.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경험들을 갈망하고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 팔레트로 비유하자면 내가 어떤 색깔을 사용할 때  가장 나답게 느껴지고 가장 빛날 수 있는지 아는 경험을 하는 것. 


그렇게 한다면 대학 생활이 끝날 때, 너희들의 손에 쥐어지는 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빛나는 졸업장이 아닐지라도 북극성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 새겨진 나침반을 쥘 수 있게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한  달성의 삶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는 과정에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기억해. 만약 인생에서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꽉 잡아. 

네가 노력해야 할 건 말이지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거야. 본질적인 문제는 시간이야. 

자, 네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바로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럴 시간도 많지 않아. 

네가 하고자 하는 건 네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 <영화. 인투 더 와일드 >



https// : 평등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유일한 죽음이다. com


명백한 건,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생에 본질적인 문제는 "time" 시간이다.  인간은 100% 죽는다. 그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유일한 죽음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고 죽음은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한 의사가 말했다. 응급실에 있다 보면 매 순간 죽음을 보게 되는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지 죽음 앞에  공통적인 후회를 합니다. 그것은 했던 일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후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에는 매일 죽음이 일어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인식하기는 쉽지만 체감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암 환자들이나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사람들은 죽음을 체감한다. 그다음 그들은 공통적으로 같은 성향을 보인다. 그것은 속도 <미래>에서 벗어나 방향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https// : 여행 <경험 질문> 없이 사는 삶이 정말 괜찮을까?! com


누군가는 묻습니다. → 왜? 지금인가요? 기다리지 못하고...

대답은 간단합니다. → 세상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그가 보여준 여행은 나에게 답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나는 인생이란,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 <본질적인>을 던짐으로써 존재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숨 쉬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때 숨이 막힐 것 같은 경험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나로서 존재했다면 끝 <죽음>을 마주한다고 해도 후회가 아니라 의미가 남을 것이다.


재벌 아버지는 말했다. 마음을 버려라. 나는 마음이 없다. 함께 자란 형제들과 등에 칼을 꽂으며 살았고 마음을 준 사람이 이익 앞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봤다. 인생에 남는 건 돈, 여자, 먹는 거. 결국 물질이다.  아버지가 내민 충고에 아들은 질문을 건넨다. 인간이라면 의미가 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드라마 상류사회- 


중요한 것은 맞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의 본질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팀 패리스는 말했다. 의문은 "삶의 수준"을 결정하고 질문은 "삶 자체"를 바꾼다.  그래서 중요한 건,  매 순간 자기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관찰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 믿는다. 



https// : "인생은 시간 낭비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아간다면...". com


쏘로(사상가)의 말을 인용해 볼게요

"사랑보다, 돈보다, 신념보다, 명성, 공평함보다는 진실이 중요하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Who Are You?" 


그의 여행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발견한다. 그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성인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가 보여준 여정은 아침의 공기처럼 활기차며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에 결코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했다는 전제하에  돈, 권력, 대부분 사람들이 추구하는 유형적인 것들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그의 개인적인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에 대하여 항상 의문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의문은 항상 선택지에서 사람을 망설이게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은 사람들은 규칙. 전통. 유행을  따른다. 그것이 이미 증명된 것이라 가장 높은 확률로 안정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확률적 보장되는 선택만을 따라간다면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놓치는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나를 잃어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일까? 나이가 더 해질수록 느낌표! 보다 물음표? 가 늘어가고 가장 가깝고 오래 봐왔던 건 나인데 정작 나조차 나를 모르겠다. 그래서 늘어가는 건  늘어가는 건 회의감. 불안함이 더해진 절망감이다. 


물 위를 걸어가 잰을 데려올래?

안 돼요, 물을 무서워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죠.

하지만 언젠가는 극복해야 한다면... 수영해 보죠.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그는 묻는다. 제자리걸음으로 살아가는 쳇바퀴의 삶은 언제 멈출 것인가? 언제까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으로 살아갈 것인가? 매일 아침 주인공이 아니라 타인의 엑스트라 24번으로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언제까지 망설일 것인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당신은 무엇을 갖고 있는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그런 대상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지구별 여행자- 


그의 삶에는 뿌리가 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있는 야생으로 걷고 있다. 특별한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을 때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때  뚜렷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장은 불가능한 완벽에 도전하는 과정이 아니다.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며 그것이 우리를 완벽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 근본의 정신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스스로가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시간 낭비예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아간다면..."

 < Jessie J_ who you are 공연 중에서.... >



https// : 평소에는 하지 않지만, 지금 안 하면 평생 할 수 없는 여행 <경험>이었다. com


젊은이, 도대체 뭐로부터 그리 도망치는 거야? 

저도 같은 질문을 드릴 수 있어요. 전 이미 대답도 알고 있고요....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저 작업장이 있는 외로운 집에서 나와서 길 위로 올라가세요. 진짜로요. 론, 오래 사실 거예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뜻이에요." <인투 더 와일드 >


전화가 울린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걸린 것이다. 하지만 받는 이는 없다. 자동 응답기의 음성만이 그의 부재를 알릴 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실에 없어요. 과거에서 죽었거든요. 


Open Your Eyes  X RE  →  알람 소리가 자고 있던 현실을 어김없이 흔들어 댄다. 감을 눈을 떴다. 다시 처참한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그는 서서히 희미해지는 꿈의 기억을 잡으려 애쓴다. 과거에 누군가 유령으로 살았었고 꿈에서는 한 사람이 죽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모르던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죽기에는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죽음을 돌아보면  때때로 그가 저지른 과거가 보인다.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익숙한 그가 보인다. 절벽에서 겁먹은 채로 덜덜덜 공포의 소음 속에 묻혔던 날들이 보인다. 허상을 쫓아가느라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가 보인다. 자신이 유령으로 살았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그가 보인다. 


고통은 쉽다. 반드시 지나가니까. 그래서 현실은 되려 절망을 선서한다. 그리고 정중한 인사를 건넨다.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과거는 현실과 친구다. 절망에서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절망은 참혹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을 거라 생각한 자에게 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시켜 준다. 그리고 충고를 건넨다. 받아들여라. 그리고 절실히 느껴라. 견디고 나아간다면 빛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누군가 죽었다. 죽음은 안개를 걷어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 타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면 언젠가 행복에 다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온통 물음표라는 무게를 지고 살아낸 시간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


그는 멈춰 섰다. 길 위에 온전히 홀로 됨을 느낀다. 그제야 과거를 똑바로 응시하게 된다. 의문이 아닌 질문을 던진다. 모든 대답은 내 안에 있다. 가슴 깊숙이 일렁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희미해지는 삶에 질렸다. 의문을 달고 살아가는 것도 지겹다. 그 무엇보다 떠밀려 가며 자신을 잃어가는 삶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윤동주, 병원 -


타인을 따라가는 선택은 후회를 남기지만 스스로 선택한 선택은 기호 취향을 드러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면 선택의 경계가 그어진다. 그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나는 오늘부로 규칙을 따르는 노예가  아니라  기준을 만들어 가는 주인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지 못하는 나는 내가 아니다. 그는 더 이상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당신을 방해하는 규칙이 있다면 감히 규칙을 없애라.


모든 불안은 무지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불안의 실체가 명확해지니 두려움에 떠는 시간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방향을 틀어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의 등 뒤에서 바라본 풍경에서 여태껏 보지 못한 그 무엇이 보인다. 그것은 위로 <危路 : 위태로운 길>가 아니라 행진 <行進, 나아가는 걸음>이었다. 


과거와 미래는 손에 닿을 수 없다. 약간은 “숫자”가 아니며 “곧”은 시간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뿐이다. 


완전히 거짓말이에요. 어떤 아이도 꿈꾸는 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할 권리를 갖고 있어요. 

 " You wanna do it "  그래도 하고 싶니? 

그럼 해보렴. 얘야. 내겐 시도할 권리가 있어.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 배우, James McAvoy- 



https// : 그는 여행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행복 <관계>을 살해했다.. com


강해져야 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곳도 갈 수 없어. 

돈, 권력, 이런 건 다 허상이야. 모든 건 여기 있어. 여기 있어야 해 


크리스는 자신이나 그 주변을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평가했다. 

그로 인해 삶이 가혹하리만치 외로울 수 있었는데


그때  친구가 돼준 건 톨스토이, 잭 런던, 소로의 책 등장인물들이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그는 여행을 사랑한 나머지 관계 <행복>를 살해했다. 

그런데 그의 관계 <행복>은 이미 <과거> 죽었던 시체였다. 어린 시절 가정 <관계>이 주는 불쾌감은 역겨웠고 학창 시절이 끝나고 사회로 펼쳐진 미래는 답답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스테이크가 주는 쾌감도 크지만 썩은 고기가 주는 역겨움이 더 강렬하다. 


한 청년이 여행 <경험>을 떠났다. 그것은 가정이라는 굴레의 도피였고 억압된 현실 탈출이었으며 자신을 찾지 못하고, 나만의 길을 찾지 못하면 1차원적 길로 줄 세워져  따르는 좀비적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적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때때로 눈물겨운 행복을 느끼지만 곧 방향을 잃어버리고 고독에 갇혀 사망한다. 그는 마지막 숨을 들이켜기 전에 생각했다. 만약 내가 미소 지었다면, 당신의 품으로 달려갔더라면, 당신은 보았을까요? 지금 보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는 답을 얻었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의 시체는 검시인에게 인계되고 그의 여행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여행을 하나씩 해부하면서 검시인은 의문을 가진다. 이토록 가치 있는 여행이 어쩌다 불행한 여행이 되었을까? 원인을 찾기 위한 해부는 계속 진행되고 검시인은 메스를 내려놓음으로써 해부의 종료를 알린다. 그리고 왼쪽에 귀퉁이에 놓여 있던 결과 보고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죽음의 결정적 사인은 인간관계의 극단적 격리에 있다.  



https// : 여행의 마지막 항구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com


부모님은 어디 계셔? 어디선가 거짓된 삶을 살고 계시죠.

인생의 즐거움이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생각하면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난 살 만큼 살았다. 그리고 행복한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찾은 듯하다. 

그것은 완전히 격리되어 사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는 것.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 

휴식, 자연, 책, 음악, 이웃에 대한 사랑. 이런 게 내 생각엔 행복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는 너 자신과 아이들이 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인간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욕망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에 치우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와 소속을 교차적으로 갈망한다. 사람들이 여행 <경험>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현실 <지긋한 굴레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거나 자유를 갈망하는 욕망이지만  결국, 너에게로 <사람>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감정을 공유할 때 삶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여행 <경험>의 끝은 항상 관계 <사람>로 마침표를 찍는다.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 교수는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던 날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곧 사그라들었고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왜? 그 당시 공부를 하기 위해 혼자 외국에 있었고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는 그 순간을 가장 큰 기쁨을 느낀 순간이 아니라 크나큰 슬픔을 느낀 순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절대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함께 <공유>할 때 온전한 행복은 느낀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육아의 과정이 시작되면서 엄마는 생에 처음으로 느끼는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인간은 같은 행동이 반복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엄마들은 한 번쯤 작게 든 크게 든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엄마의 문제나 잘못이 아니다. 한 생명을 키우는 과정에 따르는 결과일 뿐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주말에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내어준다. 엄마는 소녀가 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반가움에 자주 미소를 짓고 평온한 시간에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 기류가 느껴진다. 문득문득 집에서 연락이 없었는지 핸드폰을 보게 되고 점점 핸드폰 바탕화면에 아이를 바라보게 되고 결국,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조금 더 일찍 집으로 향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떠나고 싶은 자유라는 욕망을  여행이라고 본다면 여행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함이고 여행의 마지막 항구는 언제나 사람이다. 



https// : 여행 <경험>을 모르고 자신을 알아가는 게 가능해요? com


바다는 거친 바람만 일뿐이다. 그리고 이따금 강하다는 것을 느낄 기회다. 

나는 바다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게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강해지는 것보다는 강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한 번이라도 자신을 측정하고 한 번이라도 인간의 지위에 대해 알아보고 암흑, 고요함에 직면하는 것.

손과 머리로 직접 부딪히는 것이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그가 보여준 여행은 가치 있는 여행이었지만 행복 <관계>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극단적 여행에는 관계로부터의 떠남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관계 <함께 : 공유할 수 없는 대상>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삶의 나침반을 찾았고 행복의 방향을 찾는 데 성공했음에도 돌아오는 집을 잃어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여행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에 동감한다. 하지만 결과론 관점에는 오류가 있다. 결과의 초점은 과정을 퇴색시키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과는 빨간색이라 정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그의 여행에서 극단적 관계만 드러낸다면 그가 보여준 여행 <경험, 태도>는 일차원적 과정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과정 <경험> 이 성공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것은 다양한 여행 <경험> 일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하는 학생의 이야기는  그 이유를 우호적으로 보여준다. 


저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영어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영어 시험에서 처음 들어본 "grammatically"라는 단어가 나온 겁니다. 심지어 지문이 아니라 문제에 말이죠. 저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왜 몰랐냐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거든요. 시험이 끝나자마자 친구에게 뜻을 물어봤어요. 그러자 친구가 이상한 눈 빛으로 너 이거 몰라?  "grammatically = 문법적으로"잖아. 그리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학원에서 배우지 않나? 네. 저는 학원을 다니지 않습니다. 제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유는 공부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학원을 안 다니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학원을 안 다녀서 남는 시간에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로 인문학 공부도 하고요. 제가 비행기 덕후예요. 그래서 항공 분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합니다. 얼마 전 비행의 시대라는 책도 읽었고 사고 영상이나 착륙 영상 그런 것도 찾아보는 편이에요. 이쯤 보시면은 야, 이놈은 정말 놀기만 하는 놈이구나 하시겠는데요. 이러고도 초등학교 때까지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첫 시험부터 이렇게 망치다니 그야말로 멘붕이었죠. 왜 배우지 않은 게 시험에 나온 거지? 학교 시험은 학교 수업을 얼마나 집중해서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저희 반 친구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결국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게 나온 학교에서 나온다면 왜 학교를 다니는 거지? 이럴 거면 차라리 학원 수업만 들어도 되지 않을까? 예전에 들었던 뉴스가 생각났습니다. 공교육 정성화 법은 선행 학습을 금지하는 법으로 틀어져 있는 공교육을 정상화하자! 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중학생인 제가 봐도 지금의 학교는 비정상인 것 같습니다. 제 친구도 실제로 선행학습 다 하거든요. 심지어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모두 끝내고 다시 복습하고 있는 친구도 있어요. 미리 학원에서 다 배웠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떠들던 잠을 자든 아무 상관이 없죠 


지금 학교의 위치는 학원에 밀려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 친구들은 마치 아이돌처럼 학원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부모님 차로 이 학원 학원 옮겨집니다. 열한 시 10시 그렇게 밤늦게까지 옮겨지고 심한 친구는 열두 시가 넘어서까지 학원에 있는 친구도 있어요. 친구에게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하지 않나.


제가 생각으로는 열네 살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항공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항공기 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축구를 하며 놀기도 해야죠. 친구들은 제게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중학생이 쓸데 있는 일만 하나요?! 열네 살은 쓸데없는 일을 해야 할 나이 아닌가요?!


저는 쓸데없는 시간이 모여야 튼튼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영어 시험 성적을 받고 학원을 가볼까? 잠시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면,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문제가 학원에서 배운 거라고 불안해서 학원에 다닌다면 결국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야 하는 이 상황이 절대 바뀌지 않을 거잖아요.


정말 변해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학교 아닐까요? 그래야. 하나의 정당화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가까운 미래엔 얼른 교육이 정상화돼서 저처럼 원하는 여가 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중학생이 더 중학생 나와질 수 있도록 말이죠. 감사합니다.  - 명견만리,  학원에 안 다니면 비정상인가요? 김성규 학생-  



https// : 그가 떠난 여행을 사랑했고 그가 허덕인 슬픔도 사랑했다 com


새장 안에 갇힌 당신처럼, 난 그런 걸 싫어해요. 나에게 준 돈으로 방랑하는 건 너무 쉬워요

돈 한 푼 없는 지금 생활이 훨씬 흥미로워요. 난 내 인생을 앞으로 올 시간을 위해서 살기로 했어요

자유와, 아름다움, 이런 것이 너무 좋아서 버릴 수가 없어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현대사회에서 필수품인 전화도 없이 사회와 소비문화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길은 곧 그의 집이었고 자연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여행자는 몹쓸 문명에 물들지 않고 황량한 자연 속에서 그는 홀로 대지 위를 거닐며 살았다. 거짓을 죽이려는 전쟁과 정신적인 혁명의 긴 터널을 지나서야 온전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는 여행의 풍요로운 완성이었을 것이다.  


그의 별자리는 게 자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달을 매우 가깝게 느꼈을 테고, 매일밤마다 북극성을 바라보며 하늘에 떠 있는 별보다 가슴에 열정의 빛을 스스로 비추며 자신만의 나침반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여행은 그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으로 존재할 때 행복에 눈물짓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여행에는 단 한 가지가 빠져있었다. 나눌 수 없는 행복에는 외로움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2년간의 방랑에 종지부를 찍을 가장 위대한 탐험의 끝이 났다.


그가 보여준 여행은 나에게 눈물이 새어 나오는 짝 사랑이다. 처음 보는 여행은 심각하게 아름답고 슬퍼서 현실을 놓아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내 그가 느낀 모든 감정은 피할 수 없는 소나기처럼 내린다. 나는 자주 웃고 설레었고 때때로 그가 황홀감을 느낄 때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가 내뱉는 감정은 내 화풀이만큼이나 불쾌한 감정이었던지 때때로 통쾌했고 그가 울먹이며 서서히 맺히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안쓰러워 모니터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는지 모른다. 


여행을 떠난 건 그였지만 행복하고 슬픈 건 나였다.  그가 떠난 여행을 사랑했고 그가 허덕인 슬픔도 사랑했다. 여행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아름답고 슬픈 진실. 행복에 허덕이고 슬픔에 잠기는 고독. 여행의 황홀함과 애달픔의 소리.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여행. 행복이 슬픔에 잠기는 소리. 그것이 여기에 있었다. 또다시  이처럼 아름답고 슬픈 여행을 볼 수 있을까?


모두가 “크리스토퍼“라고 말해도 나에게는 ”알렉산더 슈퍼 트램프“ 내가 알던 유일한 자신이 되는 여행. 여행을 삶으로 표현한 사람. 떠나는 이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물리적 자본을 모두 포기했던 청춘.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떠났던 여행. 현실을 녹이고 끝내 봄이 되었던 계절. 여행이 뭐라 설명하지 않겠다. 거울로 그를 비출 것이고 그의 여행을 결과로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여행의 끝에 묻힌 사람. 그는 끝내 여행이 되었다. 그는 여행 속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녀석이 영화가 어땠냐고 물었다. 크리스는 그의 이야기를 썼다. 그걸 말해주는 사람도 크리스 일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녀석의 물음에 그의 말로 대신한 것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


그에게 빛 졌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날 그가 그리울 것이고, 여행에 기대고 싶으면 영화 <그에게로>로 찾아갈 것이며, 여행이 고플 때면 이 영화를 꺼내 먹을 것이다. 그리고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날마다 그가 그리울 것이다.


그가 보여준 여행은 신도 지우도 못할 것이고 100억을 줘도 그가 보여준 여행이랑 바꾸지 못한다.



https// : 여행의 황홀함과 애달픈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것이 여기에 있다. com


전 돈이 필요 없어요. 

돈은 사람을 너무 신중하게 만드니까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 중에서... >


그의 여행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여행은 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경험과 질문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고급스러운 표현처럼 그의 여행은 "현재에게 질문을 던지는 미래"라고 생각하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과 미래가 그것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나는 누구로 살았던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 건가?

당신은 얼마나, 어디까지 떠나보았는가?

당신은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누구랑 떠나기 위함이며 , 누구에게 돌아오기 위함인가?

우리는 왜 가장 소중한 여행 <경험 질문>을 놓치고 사는 것인가?

단 한 번도 나를 찾기 위한 여행 <경험  질문>을 떠나지 못했던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일생. 단 한 번뿐인,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에게 주어진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수선한 책상이 어수선한 정신을 의미한다면, 텅 빈 책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알버트 아인슈타인 - 


창문 너머로 보는 건 여행을 봤다는 것이지 그를 안다는 것이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 절대 여행을 만날 수 없다. 여행은 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건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인생이 반이 비었든지 반이나 차있던지 여행은 잔을 쏟아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시원함을 느낄 것 같은가? 아쉬움을 느낄 것 같은가? 하나의 경험밖에 하지 못한 사람은 나라는 사람의 절반도 모르는 것이다. 


" 이 세상의 실로 아름다운 것을 목도하는 순간 사람은 노예가 되길 멈춘다."


그것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하지 않지만 지금 안 하면 평생 할 수 없는 여행이다. 공포와 두려움은 환상일 뿐이고 인생은 시간 낭비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라면.... 지긋지긋한 과거와 작별한 시간이 왔다. 세상이 훨씬 다정하게 느껴진다. 


"여행은 어디에나 있지만, 떠나는 사람만이 전율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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