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Spir e Dition X Mar 06. 2024

[e] 불행은 노크 없이 문을 쳐부수고 쳐들어 온다.®

■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찰리: 그건 왜 물어봐? 

앨런: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하려고. 지금은 혼자잖아. 


찰리: 뭐?! 

앨런: 그때 그 사건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찰리: 나한텐 가족이 없어! <Film, 레인 오버 미>




https// :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com


우린 살아가면서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우연이든 고의든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쇼핑을 나선 여자가 외투를 깜빡해 다시 들어갔어. 그때 전화가 울렸고 그녀는 약 2분간 통화를 했다. 같은 시각에 데이지는 공연 리허설 중이었지. 여자는 전화를 끊고 택시를 타려고 밖으로 나왔다. 금방 손님을 내려준 택시 기사는 커피를 사들고 카페에 들렀고 데이지는 계속 연습 중이었어. 손님을 내려주고 커피를 산 그 택시 기사는 앞선 택시를 높였던 그 쇼핑객을 태웠다. 길을 건너던 남자는 평소보다 5분 늦게 출근하는 길이었어.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회사에서 늦은 남자가 길을 건널 때 데이지는 연습을 끝내고 샤워 중이었어. 데이지가 샤워할 때 그 쇼핑객은 부티크에 있었는데 미리 주문한 물건이 포장 안 돼있었어. 전날 애인과 헤어진 점원이 깜빡했지. 여자는 택시를 다시 탔는데 트럭이 길을 막았어. 그때 데이지는 옷을 입고 있었지. 트럭이 비켜줘서 택시가 다시 움직였고, 옷을 다 갈아입은 데이지는 신발 끈이 끊어진 친구를 기다렸어. 택시가 신호에 걸려 서있는 동안 데이지와 친구는 극장 뒷문을 나왔지. 그 택시 기사는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았고. 데이지를 치었다.


단 한 가지만 달랐더라면. 신발 끈이 안 끊어졌거나 트럭이 길을 막지 않았거나 부티크 점원이 실연 안 당해 물건을 포장해 놨거나 그 남자가 알람을 맞췄거나 택시 기사가 커피를 안 사거나 쇼핑객이 코트를 안 잊고 앞 택시를 탔나 면 데이지와 택시는 길을 건너고 택시는 그냥 지나갔겠지. 하지만 삶은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누구도 통제 못하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


빌어먹을. 인생은 통제할 수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행복은 천천히 쌓여서 만들어지지만 모든 불행은 "똑똑" 노크도 없이 문을 쳐부수고 쳐들어 온다. 어이없는 이 상황을 처참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말한다. "뭐야? 그 표정은... 몰랐어?! 사는 게 고통이야."  


앨런은 이제 괜찮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찰리에게 과거를 물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9.11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어찌 괜찮을 수 있겠는가? 하나는 하나가 아니다. 고통은 통증을 느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신호이기도 하다.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무언가 잘못되었으니 그것을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연스레 그 상황을 피하기 마련이다 


찰리에게는 여전히 과거는 슬픔에 익사하는 고통이며 절망보다 끝이 없는 상실감이다. 그래서, 찰리는 과거를 지워버린다. 현실에서 과거를 지우면서 부정을 잠식시킨다. 그렇게 과거는 길고 긴 겨울잠에 들었다. 이것은 현실적 회피가 아니다.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생명 보호다. 응급실에서 가족의 사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절을 한다. 뇌는 충격적인 상황에 이르면 그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끊어 버린다. 그렇다. 그는 어둠 속에서 희망을 인내하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는 명백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낙타 그림이 뭔지 알아?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묶어두지 근데 아침에 끈을 풀어.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난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지. <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


사람은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마치 가을비에 젖은 낙엽처럼 떨어지지 않는 기억. 문신처럼 새겨져 잊히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흉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잃은 게 아니다.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매 순간 모든 사람이 그녀처럼 보인다. 사진보다 선명하게 말이다. 심지어 셰퍼드를 봐도 푸들이 보인다. 젠장. 그는 절절히 행복했기에 처참히 절망스럽다. 과거는 무뎌지기는커녕 또렷해진다. 고통 속에서 벗어나려 음악에 몸을 내던지는 짓거리를 해봐도 떨어지는 매 순간마다 찰나가 지나면 다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그의 감정의 목을 조른다.  


메워지지 않는 상실감. 파도에 끊도 없이 부서지는 슬픔. 깊은 동굴 속 사방에서 울려대는 상처의 비명소리. 홀로 남겨진 것. 그리고 절절히 내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가슴에 처박힌 체 파고드는 상처. 빼내면 죽어버리는 상처. 혹한의 겨울에 차마 걷어내기 힘겨운 이불의 무게만큼의 좌절감. 심연 끝자락에서 공간에서 무의미한 죽음에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익사. 고된 시간 바위 무게를 견디고 현실로 끌어올리면, 다시 돌아오는 절망감. 그렇다. "그는. 매일 그런 기분으로 산 것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 자신조차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는 순간을 빈번히 마주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과거 색맹의 눈으로 타인을 밋밋하게 본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의미들을 놓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이란 온전히 주관적인 경험이라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슬픔도 분노도 주인이 될 수 없는, 텅 빈 진공관 같은, 숨 쉴 공기도 없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많이 걱정했다. 네가 괜찮아서 다행이다. 슬퍼해도 되고 화를 내도 된다. 이 모든 일에 너의 잘못은 없다. 조금만 버티면 모든 건 지나간다. 내가 곁에 있어 주겠다.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내가 가진 말 중에는 이 얼굴을 위로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안다. <드라마, 너는 나의 봄 >



작가의 이전글 [e] 1% 가능성만 있다면 99% 믿음을 품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