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Spir e Dition X Mar 11. 2024

[e] 당신이라면, 기다릴 수 있어요.®

■ 위로는 어떤 의미일가? 그곳에는 답은 없다. 과정만이 남는다.

 

삼담사 : 그 생각을 안 하려고 무척 애쓰시는 것 같아요


찰  리 : 아뇨. 아뇨.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싫어요


상담사 : 하지만 도움을 원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생각에 대해 대화할 준비가 됐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당신이 그런 생각을 잘 받아들이도록 돕는 거예요

            매주 여기 오는 건 소용이 없어요 자신의 삶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하겠다면 말이에요

            전, 기다릴 수 있어요. 찰리. 

                                                                                                       「 영화. 레인 오버 미.」



https// :  "이해"라는 어설픈 모래성이 허물어질 때,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집을 재발견한다. com


9살 아버지가 튀김용 냄비를 사셨는데, 미국 쇼핑 채널에서 보셨대요. 

하루는 그 안에 제 손을 넣었어요. 뭔가를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 넷플릭스, 빌어먹을 세상 따위. 」


우선. 사건이 생긴다. 그리고 절망이 일어난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시작한 동굴 생활은 어언. 4년이 지났다. 

Whiteout.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 그는 스스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슬프고 행복한 빛이 싫었다. 함께 했던 행복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낯설다. 눈에 맞지도 않는 렌즈처럼 이질적인 감정은 차마 견딜 수 없다. 역시나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감정은 끝내 환영받지 못한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윤동주, 병원」 


돌이킬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살아있던 시간을 모두 허비하고 낭비하는 하루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그는 굶지 않는다. 아침. 점심. 저녁. 비정하게 피 토하는 후회를 씹어 삼키고 목구녕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자책을 억지로 넘기면서까지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꼬박꼬박 때운다. 그의 감정은 마치 조커 같다. 「내가 계획이라는 걸 할 사람으로 보여? 난 차를 쫓아가는 개랑 같아 쫓아가는 이유는 없어. 그저 본능대로 행동하는 거지. 조커. 영화. 다크나이트 」


그는 오늘도 페인트 칠을 하고 부엌을 뜯어고친다. 그것은 현실에서 숨 쉬는 시간보다 과거 속에 울컥 대는 시간을 뛰어넘는 일이다. 그렇게 슬픔이 차오른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에게 눈물은 사치다. 눈물을 흘리는 건. 그저 물을 낭비하는 것뿐이니까. 그렇게 그는 매일 과거를 구걸하면서 한없이 불쌍해진다. 그 순간 세상에서 자신이 가자 불행한 사람이라 느끼는 것이다. 그런 일상은 처박힌 시궁창에 어울릴 듯 천박스럽지만 그것이 그에게 가장 큰 불행이자 가장 큰 행운이었다.

 

"에밀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몇 번이나 봤어요? 아직. 11번 밖에 못 봤어요." 어느 작품은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는 온전히 과거의 슬픔의 작품이었다. 그는 그 작품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느낌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서 그래야 할거 같았다.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불더미 속에 버려두고 혼자만 살아남을 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게 할 때만이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껴지니까. 그래서, 그는 매일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 부엌을 뜯어고친다. 그리하여. 그의 일상은 절망보다 낭만적이다. 


그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들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을 그리워할 있었지만, 자신을 위로할 수는 없었다." 


손을 내민다는 것. 기다려 준다는 것. 

위로는 너를 위한 말일까? 나를 향한 말일까? 모른다. 그것은 타인의 몫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건네는 위로는 어떤 의미일가? 그곳에는 답은 없다. 과정만이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한 기다림만이 남는다. 


위로는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할 수, 해야 만 하는 건.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주는 것.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는 것.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이라 믿는다. 




https// : 그가 말했다. com


평소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내색을 부단히 도 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힘들일이 있건, 슬플 일이있건, "힘들다" 말하지 않고 "슬프다" 말하지 않는다. 그날도 억지로 참는 모습에 화가 나 소리쳤다. "쓸데없이, 왜 그렇게 참고 살아? 힘든 거 나에게 말하면 안 돼? 우리 친구잖아! "


"그가 말했다" 


미안해.... 데, 내가 "힘들다" 말하면 그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하잖아. 하루에도 수백 번 억지로 참고 있는 나에게 미안해서 차마 못하겠어. 이렇게, 무너지지 않고 버텨주고 있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못하겠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침묵은 이내 떠나가지 않았다. 

나는 겨우, 힘 겹 게 입을 벌려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아무 내색 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때때로, 아무 말 하지 않고. 때로는,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저 기다렸다. 팔이 저려온다. 팔이 빠질 거 같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던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어 보기로 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어둠 속 끝자락 터널의 끝이 보인다. 그 끝에 상처받은 마음이 고개를 숙인 채 덩그러니 홀로 있었다. 내가 기다린 시간은 마라톤 42.195미터를 기어서 결승전을 통과는 사람에게서 피어오르는 미소만큼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그것은 마음의 문을 여는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였다.  


난 깨달았다. 여태껏, 위로라는 의미에 정말로 무지한 상태로 살아왔다는 걸.  

이해라는 어설픈 모래성이 허물어질 때,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집을 재발견한다. 

그렇다. 모모의 말처럼.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e] 결혼이란 게, 아이를 키우며 사는 거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