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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Mar 08. 2024

[e]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씩 야위어져 간다.®

■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남자의 Monologue

 



https// : 단막극.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씩 야위어져 간다」. com




커튼이 열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한 남자가 무대 핀 조명 가운데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출을 맡은 임유경이라고 합니다. 먼저 오늘 이 자리까지 시간을 들여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단막극. "그녀의 뒷모습은 조금씩 야위어져 간다."는 제목으로 봐서는 남녀의 이별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본질적 주제는 남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보실 때 이별에 초점이 아니라 남성의 독백에 초점을 맞춰 보신다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네고 퇴장한다. 




커튼 뒤에 고개를 내밀고 있던 막내 스태프가 서둘러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서 말한다.   

자. 이제. 단막극.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씩 야위어져 간다." 곧 시작합니다. 

핸드폰 무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저기 지금 들어오시는 분 재빨리 착석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진짜. 시작합니다.  




제1막


모든 시작은 끝이기도 해.


시작은. 끝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래시계는 뒤집혔다. 또 다른 시간이다. 결국... 이별이 찾아왔다.





제2막


이별의 끝자락에서 바짓가랑이를 놓지 못하는 손.


가지 말라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며.... 애원하는 간절한 부탁의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뒷모습은 조금씩 야위어져 간다.





제3막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작되는 남자의 Monologue


네가 떠난 자리에 나 홀로 너를 사랑할 시간이 주어졌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이별은 "내가 저지른 사랑의 부패의 끝. 을 드러낸다." 그래, 익숙함에 속은 것이 아니라 흉측한 욕심을 그 속에 숨기려 했던 거겠지. 


지나간 사랑이 남기는 대가는 상실감이다. 상실감은 결과 값이다. 그것은 극도의 고통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전달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지 못해 모래를 전부 다 들이킬 만큼 간절한 후회가 저려오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의 이름은 “미련”이었다. 사랑은 시간을 가게 하고, 시간은 사랑을 가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그렇다고, "우리가 같은 시간에 헤어지는 건 아니었다."


.


..


...


.... 


.....  "그제서야 너를 알게 되고, 이렇게도 나를 알게 된다." 




막이 내리고 사랑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별만이 덩그러니 남겨진다.

고요가 내리 깔리고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이내 침묵한다.




닫혔던 막이 열리고 남녀 배우는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한발 뒤늦게 등장하는 연출자. 

자. 여러분 재밌게 보셨나요?!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네. 거기 빨간 코트 입으신 어여쁜 분이요. 


Q. 여쭤 보고 싶은 게 있는데, 결국 남자는 사랑을 항상 한발 늦게 깨닫는다는 건가요?!


A.  이야기 맥락상으로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릅니다. 여성 분들은 이해가 안 되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남자아이는 어릴 적부터 머리. 즉. 이성적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 경험적으로 습득하는 환경에서 자랍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성숙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그 말이 나온 이유는 남녀의 다른 특성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여성분들은 무언가를 하기 전에 그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성적으로 먼저 판단이 되지만 그와 달리 남자들은 먼저 경험을 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습득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이 "공감능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성들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아이는 그런 환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 처한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이 부분은 남성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이해할 수 없음을 존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분들은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느끼실 수 없는 문제니 까요.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성별 자체로 다른 것이 아니라 DNA 자체가 다르게 태어납니다. 여자아이는 청각적으로 뛰어나고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남자아이는 시각적 감각과 신체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죠.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실험을 했는데,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면 여자 아이는 엄마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괜찮아." 그럼 엄마는 말하죠. "엄마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딸." 그때 남자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세우고 엄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내가 엄마가 넘어트린 자전거 세워 두었어요. 저 잘했죠." 엄마는 그런 아들을 보고 속상함을 느끼죠. 엄마의 표정을 보고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거 같이 느껴집니다. 근데 남자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니까요. 아들은 그저 억울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상황이 바뀌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엄마와 이미 몇 번 가봤던 길을 찾는 상황이었다면 남자아이들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그 장소를 찾아냅니다. 왜?! 시각적으로 여자아이들보다 뛰어나니까요.  


그리하여, 이 짧은 단막극을 통해서나마 남성분들에게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 이성이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상황이 아니라 자신을 본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분에게는 아버지. 남동생. 이성친구. 남자친구를 포함해 남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는 관점에서 조금만 벗어나 왜? 저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걸까?라는 기준으로 보신다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감히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다면 남성이 감정적으로 조금 부족하지만 다른 부분으로는 조금 뛰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성분들이 남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먼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먼저 한 발자국 다가가 쓰다듬어 주신다면 남자는 그런 여성분들에게 열 발자국 먼저 다가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 신뢰를 가지니까요. 다 아시겠지만 남자에게 의리 「신뢰」란 목숨과도 같은 겁니다.    


저는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죠. 사랑은 사람에 포함되어 있구요. 결국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관계로 끝맺음을 찍습니다. 마지막으로 괜찮으시다면,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 모두가 로맹가리라고 해도 나에게는 에밀 아자르.가 쓴 "자기앞의 생"에 나오는 문장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부디, 살아가는 동안 사랑에게서, 사람에게서 더 많은 포근함과 따스함을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이 먼 곳까지 발걸음을 해주신 관객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 단막극. "그녀의 뒷모습은 조금씩 야위어져 간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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