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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Mar 09. 2024

[e] 소방관은 그를 구하려 빛이 아닌 어둠을 쐈다.®

■ 그의 슬픔을 정의 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없었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게, 아내가 보스턴의 공항에 있을 때였어.

아내가. 그때 나한테 말하더라고.


주방을 리모델링 하자고. 딸애들고 다 찬성했다면서.

난 바빠서 그냥 달려 나가면서 아무렇게나 끊었어.


그게 아내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거였지.
난 주방 이야기는 질색이었거든.  「 영화. 레인오버 미 」




https// : 때때로, 상처는 딱지가 질때까지 모른체 해야할 때도 있다. com


시작하기 전에 알두어야 할 것은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아주 단체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명은 하나가 아니다. 때때로 그것은 "누구에게나"로 통용되기도 한다. 그를 찾아오는 건, 집주인. 회계사 슈거맨.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청소부 뿐이었다. 그가 머물러 있는 곳은 집이 아닌 동굴이다. 그는 도피처에 살았다. 마치.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존재하지만 끝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곳. 미로 속에 갇힌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오늘은 마치 어제와 같다. 어제는 절망과 슴플의 경계에서 치유가 통하지 않는 곳. 찰나의 행복을 마주하는 오아시스이면서 끝없는 절망을 반복하는 무간도이기도 하다. 


외부 상처는 눈에 선명하다. 하지만 내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상처가 생기면 다 열어서 제대로 봐야 안다. 그래야 덧나지 않는다." 맞는 말이지만 모든 사람한테 그렇게 말 할 수는 없다. 마음을 다쳤다는 건 비유가 아니다.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진짜 외상을 입은 거다. 문제는 본인도 그걸 잘 모른다는 거. 피가 안나니까. 드라마, 너는 나의 봄」 그랬다. 그의 슬픔을 정의 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없었다. 


비틀비틀 넘어질 듯이 슬픔과 절망을 걸음삼아 페인트 가게에 들른다. 수백번 부엌을 뜯어 고치면서 자책을 덧칠하고 슬픔을 덧칠하고 때때로 슬픔을 머금고 그대로 내평겨 둔다. 눈물은 메마른지 오래. 상실감으로 하루를 낭비하는 일상. 드럼을 치고, "완다와 거상" 게임을 하고 멜 브룩스의 영화를 보며 아주 조금 부서진 미소를 지어보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그녀를 마주한다. 그리고 곧 떠나간다. 빌어먹을. 셰퍼드를 봐도 그 망할 푸들이 보인다. 서서히 기억이 말라버릴때쯤엔 그는 그자리에 홀로 시들어 죽는다. "살아있는게 나라서 미안해." 현실이 과거로 변하는 순간은 끝이 없다. 그는 혼자 남겨졌다는 권리로 일상의 특권을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기 지평선 너머 일상의 끝자락에서 슬픔이 절규하고 있다. 불타게 노을지는 풍경. 과거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교감하는 시기. 악마는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빌어먹을 감정으로 찾아오고 사랑의 신 에로스는 그에게 두가지 화살을 동시에 쏜다. 사랑을 느끼게 하는 금화살. 그리고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납화살. "자신이 알던 유일한 사랑이 절규가 된다."는 것을  맛보는 것이다. 슬픔이 선명해지고 절망이 또렷해진다. 빌어먹을. 끔찍하게도 완벽한 순간이다. 그는 매일 이런 기분으로 산다. 


어언. 4년이 흘렀다. 과거는 너무 빨리 현실을 따라 잡는다. 그의 하루는 서서히 부패한다. 그 과정은 심히 잔잔하다. 냄새가 느껴지는게 아니라 뼛속 깊이 타오르는 끔직한 냄새가 스며든다. 냄새로 허기를 채우는 그의 일상에 조금의 포만감도 없다. 그는 오늘도 과거를 붙잡기 위해 현재를 기꺼이 버린다. 기꺼이 오늘을 팔아 과거를 되산다. 과거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현재의 절벽에서 수백번 자신을 내던진다. 현재의 바닥에는 새빨간 슬픔만이 드러난다. 


인간은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자신을 버리고 스스로 다른 역할을 자처한다. 파이트 클럽에서 잭이 테일러 더든을 만들어 낸것처럼. 그는 자신을 죽이는 적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구하는 동료의 역할을 스스로게 부여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부터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에게 과거는 죽었지만 유령처럼 떠돈다. 뒤돌아 봐야 할 것들이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늘은 킬러라는 역할을 맡았다. 과거를 살해하는 것도 현재를 죽어내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해낸다. 무엇보다 과거를 살리려 애쓰는 그의 마음에는 일절의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행복과 위로는 과대평가 되었다. 그것은 때때로 진실이 아니다. 빛이 아니라 어둠을 통해서만 위안을 느끼게 되는 지경이 이르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 세상의 시간은 모두 같은 계절로 수반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계절에서 삶이 지속된다. 누군가의 계절은 새로운 현재가 아니라 반복되는 과거다. 그의 하루는 흘러간 오늘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설명이다. 


그가 기댈 장소는 늘 어둠속이었다. 그는 매일 스스로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 행복을 도려낸다. 그리고 오늘도 "완다와 거상"게임을 하고 부엌에 가서 페인트 칠을 하고 다시 부엌을 뜯어 고친다. 아직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기에, 그것이 자신을 죽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기 때문에. 서서히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곳에 일상은 없다. 생존만 있을뿐. 그 순간 갈채를 참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렇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서 어둠만이 그를 몇번이고 구해주었다. 그는 어둠에게 오늘을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모른체 하는것이 치유가 아니라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한 남자가 불타는 과거에 갇혔다. 그는 기꺼이 소방관의 역할을 자처한다.  

소방관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빛이 아닌 어둠을 뿌리며 들어가 그를 구해 내었다. 




Q. 늘 다가오고 있지만 절대로 오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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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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