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무작정 발길 닿는 곳

- 호주 브리즈번 여행 -

by 임선영
@Brisbane, Australia


비 오는 오후, 덥지 않은 날씨 덕에 어디를 걸어가 볼까 고민하게 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우산도 없이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다가 무작정 발길 닿는 곳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회사 점심시간과 겹쳐서 인지 거리 곳곳에 잔뜩 차려입고 핸드폰과 지갑을 든 채 걸어 다니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문득 야근을 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야근을 즐기며 일했던,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잔뜩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짜며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을 때. 물론 몸이 힘들다고 느꼈을 때에는 야근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아이디어를 내야 할 때는 약간 정신이 몽롱해야 잘 풀려서 일부러 야근을 자처할 때도 있었다.


이런저런 약 3년이라는 시간을 스쳐보내며 걷는 동안 어느새 스토리브릿지가 옆에 보이고 포티튜드 밸리 지역을 걷고 있었다. 큰길에 들어선 매장은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골목마다 고개를 삐죽이며 들여다본 곳은 신선하다. 가끔 쓰레기 더미가 가득하기도 하고 그래피티가 가득해서 섬뜩하기도 하지만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물건들이 흥미로운 골목.


베이커리 길. 포티튜드 밸리 지역에서도 골목길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듯 새로운 공간인 듯하다. 그중에서 베이커리 골목에는 편집샵, 카페, 바, 전시공간, 빈티지 레코드샵, 꽃집 등이 오밀조밀 자리 잡고 있었다.


빈티지 레코드 샵에서 LP를 구경하다가 혹시 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성스레 닦아주며 조심스레 틀어주었다. 전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 없어서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만 소중한 분이니 주인이 추천해준 싱글 LP 하나를 데려왔다.


그리고 맞은편에 위치한 전시공간. 다음에 전시를 한다면 이런 방식이고 싶었는데 마침 딱 오픈 중이라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원하면 어플라이 해보라고 하길래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다음 전시 어때?라고 제안이 들어왔지만 아쉽게도 곧 호주를 떠나야 하기에, 아쉽다. 브리즈번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호주에서도 전시를 열 수 있는 기회였는데.


골목에 위치한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다른 길을 걸었다. 뭐하는 곳이지 싶은, 순간 멈칫하고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몇 초가 걸린 공간. 처음에는 중고 가구 판매 창고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술집이다. 4시부터 오픈이라 아직 간판이 밖에 나와있지 않았던 터라 더욱 궁금했던 곳. 다음에는 오픈 시간에 맞춰 올게 라고 말하고 또 걷기.


고급 상점들이 즐비한 제임스 스트리트를 지나 뉴팜 지역까지 잔뜩 흐려지는 하늘을 보며 다리를 움켜쥐고는 시티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시티로 돌아오니 이상하게 하늘이 맑아진다. 연말이 다가옴을 알리는 거리 곳곳 장식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슈퍼마리오 분장한 사람들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호주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캥거루 인형을 구경하며 잠시 쉬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0. 다 소중하고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