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로즈우드 여행 -
@Rosewood, Australia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버스가 아닌 트레인을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두근거림과 항상 지나가던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이 있었다는 새로움으로 인해 아침부터 브리즈번의 햇빛처럼 기분이 짱짱하다. 물론 교통카드를 9번 이상 찍어놔서 드디어 무료로 무한정 탈 수 있게 됐다는 설렘도 한몫했다.
기차를 타기 전 스치듯 마주친 역무원이 슬쩍 웃어주는 바람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고, 트레인이 철컹철컹 흔들림과 동시에 입꼬리도 덜컹거리며 중력을 거스르고 올라갔다.
모든 게 느리게 지나가며 도착한 로마스트리트 역. 갈아타기까지 30분 정도 남은 시간에 역 안 카페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든 여행이든 Always a good idea!
흔들리는 트레인을 타고 살짝 졸다가 코린다Corinda 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직 로즈우드까지는 한참 멀었기에 그대로 앉아있었는데 역무원이 다가오더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레드뱅크Redbank 역까지 레일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어봤을 법도 한데 레일 버스라는 말에 갑자기 신이 나서 이유도 모른 채 어디든 알아서 잘 데려다주겠지 싶어서 그저 내렸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건너뛰어서 레드뱅크 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단순히 공사 중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계획되지 않던 일은 늘 신난다.
브리즈번을 지나 꽤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할 때쯤 입스위치Ipswich 역에 도착했다. 입스위치 역에서 로즈우드 역까지 가는 트레인은 30분 후에야 출발하고 배차간격은 1시간가량.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고 무료 환승도 되겠다, 무작정 입스위치 역 밖으로 나갔다.
광장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 시골보다는 조금 더 큰 규모. 내심 식당이나 하다못해 카페라도 문을 열었기를 바랐는데 역시나 일요일이라 상점들은 다 문을 닫아서 산책만 하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 트레인을 기다렸다.
입스위치에서 로즈우드까지 가는 구간에 펼쳐지는 끝없는 시골 풍경. 몇 곳의 간이역을 지나 드디어 로즈우드Rosewood다.
로즈우드 역시 작고 낮은 간이역. 주변은 조용하고 5분 정도 떨어진 근처에 있는 집들은 지금껏 내가 호주를 생각했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구조의 모습이다. 한적한 모습.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지도에서 보았던 Lockyer Valley의 중심, 게톤 gatton까지 가보려고 트레인 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아무리 봐도 더 이상 연결된 트레인이 없다. 간이역이라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지도를 보며 표지판을 보며 방황하다가 역 바로 앞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을 보였다. 단순히 지역 내 버스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시간표를 확인하니 게톤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일요일인 오늘은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대 씩 밖에 없는 상황. 게톤까지 가는 건 빠르게 포기하고 다시 입스위치로 돌아가는 트레인을 기다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를 즐기며. 아무도 없는 역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르는 트레인을 기다리며 챙겨 온 군것질거리를 꺼내 먹는 오후. 이제는 크게 중요한 일이 없어진, 마냥 여행이다.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멀리서 트레인이 나를 보고 경적을 울렸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시간에 맞춰 온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더 태우고 나서야 다시 입스위치를 향해 트레인은 출발한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워서 바깥 풍경만 보고 무작정 몸을 던졌다. 카라빈karrabin 역. 대자연 한가운데 뚝 떨어진 기분이다. 사람도 없고 집도 몇 채 없는 곳.
차가 지나간 흔적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뜨거운 태양과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흙.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마주치는 것도 잠시,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맞고 고개가 떨어진다. 내가 왜 걷고 있는 건지 의문조차 마비시켜버린 햇빛.
그리고 마주한 드넓은 평원. 풀을 뜯으며 한가로이 즐기고 있던 동물들을 발견하고는 신기해서 조심스레 카메라를 추켜올리며 다가서는 내가 수상했던지 한 마리가 쳐다보고는 일제히 모두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궁금증을 넘어선 당황한 듯한 눈빛이 느껴진다. 다 같이 도망가버리고 나 홀로 남은 자연 앞.
잠시 평화로운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항상 사건을 일으키고 우연에 기대며 무질서를 즐긴다는 점에서 여행과 초현실주의는 동질성을 지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낭비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