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여행
@Ubud, Bali, Indonesia
방이 더워서 선풍기를 켜두고 잠들었는데 새벽에 몸이 으슬으슬해서 눈을 떴다. 살짝 몽롱한 정신만 깨어있는 상태, 밖은 오토바이를 타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세히 귀 기울여 보니 온 동네 닭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하이톤으로 울고 있었다. 닭 울음소리와 출근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겹쳐 환호성을 만들어낸 것. 확실히 잠이 덜 깼다.
큰 창문으로 슬슬 아침해가 들어왔고 1층 주인집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소리가 올라온다.
잠을 완벽히 깨고 문을 열어 테라스에 앉았다. 간밤에 남겨놓은 맥주 병뚜껑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커피와 티백과 보온병. 덕분에 상쾌하고도 차분하게 차를 즐겼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조식도 손수 가져다주신 아주머니.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이라면서 핫케이크와 비슷하다고 한 음식과 여러 가지 과일이 먹기 좋게 담긴 접시.
아침 햇살 즐기다가 햇빛이 뜨거워질 때쯤 방 문을 통해 간밤에 정신없이 드러눕기만 했던 방이 보인다. 그동안 고생했던 나의 짐들이 누워있는 작은 싱글 침대와 사방이 큰 창문으로 둘러싸인 더블 침대.
씻고 나와도 끈적이는 몸을 이끌고 숙소 밖으로 나섰다. 조용한 골목을 나오면 나름 번화가. 수많은 택시 기사들과 투어 서비스의 호객행위가 계속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 된다. 본격 우붓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홈스테이는 한 집 건너 한 집 일정도로 많고 그에 따른 작은 사원들도 많다.
아침 시간이면 흔한 거리의 풍경. 짜낭으로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그들의 종교. 아침이 지나고 나면 수없이 바쳐진 짜낭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거리는 지저분해지지만 아침마다 그들이 짜낭을 들고 있는 표정을 보면 이 또한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종교를 무조건 배척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교나 기타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 더욱 삶을 이롭게 할지도. 종교와 믿음과 관계없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어느 것이든 거룩하며 본받을 만하다.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또 하나의 풍경. 기계 농경생활이 일상화된 지금의 한국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직접 손으로 모든 걸 해내고 있는 사람들. 찌는 듯한 더위였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하며 노동요가 아닌 노동 수다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더위와 습함으로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어디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는 걸로는 부족하고 샤워가 시급할 만큼.
더위를 피해 집에 가는 길, 우붓 마켓에서 흥정하며 물건들을 샀다. 눈치 없이 무턱대고 흥정하는 예의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 1개를 사는 거라면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 하는 거지만 개수가 많아지면 그들도 많이 깎아줄 의향이 있으니 알아서 계산기를 들이밀며 원하는 가격을 누르라고 한다. 그때부터 서로에게 즐거운 대화가 시작되므로. 그래서 똑같은 물건들을 여러 개 사서 선물로 나눠주면 되는 것.
신나게 봉지를 흔들며 숙소로 돌아왔는데 샤워는 커녕 선풍기조차도 돌아가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홈스테이들 대부분 전기에 문제가 있어서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명 화가 나야하는 상황인데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수영장에 빠졌다. 더위도 끝났고 샤워도 대충 끝났다. 벤치에 누워 나른하게 졸다 보니 물기가 말라버렸고, 이제 물을 쓸 수 있다는 말에 방에 들어가 말끔하게 씻고 침대에 벌러덩 엎어졌다. 살짝 선풍기를 틀어두고 누워있으니 한량이다.
낮잠 자고 배를 채우러 나섰다. 직접 바로 눈 앞에서 코코넛을 잘라 음료를 만들어주고 아이스크림도 판매하는 가게에서 코코넛 하나 사들고 걷다가 발견한 카페. 일 년 내내 덥다 보니 이곳에서는 노천카페가 대부분 다 이렇다. 마음에 들어 들어갔는데 메뉴판에서 발견한 한글. 누가 썼느냐고 물었더니 카페 주인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책장에 가득한 한국 여행 책. 그중에 한 권을 꺼내 들고 의자에 걸터앉아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책을 읽었다.
'행복하다는 특정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가 아닙니다. 바로 눈 앞에서 행동으로 펼쳐지는 동사입니다.'
'똑같은 시간을 주었는데, 너는 무얼 그리 심각하게 살았으냐?'
'우리는 시련 속에서만 진정한 자신의 강도를 실험당한다'
아마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이 될 것 같은 발리 우붓에서 상황에 딱 맞는 문구들을 발견했다. 시련 속에서만 진정한 자신의 강도를 실험당한다. 돌이켜보면 홀로 계획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분명 자유가 존재하지만 시련 또한 존재하고 그 모든 걸 홀로 이겨나가야 한다. 무거운 짐을 들거나 어딘지 모르는 길을 끝없이 걷거나 때로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호주를 지나 발리에 오기까지가 그랬으므로. 그로 인해 조금씩 더 부풀어가는 스스로를 느끼면 된 거다. 해가 내려가자 여행하기 딱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