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여행 -
@Ubud, Bali, Indonesia
아침 일찍 가볍게 카메라만 들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알아보러 다녔다. 발품 팔면 나오겠지 싶었는데 고작 몇 대 만으로 우붓 전체를 관리하고 있는 이곳의 상황이라 already full, sorry라는 말을 듣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곳곳에 많은 투어 회사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당일 예약쯤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미뤄둔 일이었는데. 공항 가는 버스를 빠르게 포기하고, 공항 근처로 갈 곳이 없나 눈으로 훑던 중 사누르라는 곳을 발견했다. 꾸따나 공항으로 가는 버스와 동일한 가격인 사누르로 일정을 변경하고 60,000루피아에 예약금 10,000루피아를 걸어두고 숙소 앞 픽업을 예약 완료했다.
그리고 우붓 마켓 마지막 즐기기. 어젯밤 깊은 생각 때문인지 이번에는 흥정의 방법을 바꿔보았다. 무작정 그들이 부르는 값으로 다 주는 것도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적당한 선에서 흥정을 시작한다. 팽팽한 핑퐁 게임을 오가며 낮은 가격에 낙찰한 후, 기분 좋은 마음으로 계산하고 나서 상대방이 언급했던 최종 가격에 맞춰 this is for you라고 말하며 나머지를 건네주는 것. 당황하는 표정도 잠시 그것의 가치와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돈에 대한 욕심보다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눈빛으로 바뀐다. 훨씬 기분 좋은, 그리고 상대에게도 돈 보다 소중한 마음. thank you를 넘어서 have a nice day라는 말이 진심으로 나온다. 작지만 그 돈은 나에게도 꼭 필요하며 아껴야 했던 소중한 돈이지만 그들의 억척같은 눈빛을 흔들리는 동공으로 바꿨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겠지 싶다.
가벼운 걸음으로 숙소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홈스테이 주인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언젠가 우붓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어느새 늘어나버린 가방이 무겁고 더웠지만 차분히 버스를 기다렸다. 열두 시 반이 픽업 시간이었지만 분명 우붓 마을 한 바퀴를 다 돌며 사람들을 태우려면 시간이 더 걸릴 테니. 그리고 정확하게 약속시간보다 이십 분이 더 지나서야 버스가 도착했다. 저렴한 가격이라 돌아다니며 봤던 창문 없는 우르르 구겨앉아야하는 버스인 줄 알았는데 나름 에어컨도 아주 살짝 나오는 개인 자리가 확보된 봉고차.
한참을 달려 도착한 사누르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비치가 나온다며 가방과 나를 버려두고 아저씨는 떠나버렸다. 휑한 기분으로 걷다 보니 바다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들이 말했던 그리고 상상했던 비치와 너무나 달랐다. 나름 여행 마무리니까 바닷가 선베드에 누워 발리의 맑은 바다를 즐기다가 해질 무렵 슬슬 공항으로 넘어가고 싶었는데, 바다는커녕 진정 발리가 신혼여행지인가 싶다.
구름이 선사하는 풍경을 감상하려고 해도 도무지 짐도 무겁고 마음에도 안 들고 이곳은 어디인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고 오히려 우붓보다도 낙후된 듯 보인다. 끊임없이 불러대는 주인들을 상대할 힘도 없이 잔뜩 무거운 짐에 뜨거운 더위에 이미 땀으로 범벅된 지 오래였지만 이상하게 그러면서도 계속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데나 주저앉아 무겁다고 아무도 없는 곳에 화를 내거나 덥다며 바다로 뛰어들거나 그까짓꺼 마사지 한 번 받으러 들어간 김에 쉴 수도 있고 아무에게나 공항으로 좀 데려다 달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걸었다.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꽉 쥐고 가방의 무게에 쓰러지지 않도록 발가락에 온 힘을 주고.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왜 때문에 걷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무언가가 그 힘든 시간 속에 걷게 했다. 쓰러질 것 같았지만 쓰러지지 않았고 화가 날 것 같았지만 화가 나지 않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어깨는 점점 아파왔지만 이상하게 무게가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공항 가는 셔틀버스를 찾으러 도로에 나섰지만 죄다 택시들만 경적을 울려댈 뿐 아무도 없었다. 그때 스콜이 쏟아질 기미가 보였고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난 도대체 왜 쉽게 가지 않는 걸까. 땀에 찌들어 걸음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바다를 즐기기는커녕 최악의 상황일 정도로 마음이 지쳐버렸다.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내다 보니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직 비행기 시간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는데도 더위와 무게에 괜히 조급해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근처 카페에서 딸기 셰이크를 시켰다. 가방과 조급함을 내려놓자 그제야 '여행 마지막을 멋있게 만족할 만큼 장식하자'라는 속마음이 보였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에 들지 않아 소중한 것들을 스쳐 보내고 있었고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 만큼 커다란 무게로 다가왔었던 것이다. 내려놓고 보니 오히려 이 상황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끝이 고생이라서. 만약 화려하게 즐기고 돌아갔더라면 이 끝에서 무엇을 남겨갈 수 있었을까.
감싸고 있던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봤다. 스콜이 당장 쏟아질 것 같았지만 반대편 하늘은 끝없이 맑기만 하다. 다시 가방을 재정비하고 밖으로 나와 걸었다. 한결 모든 게 가볍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셔틀버스 한 대가 거짓말처럼 나를 불러 세웠다.
역시 배낭여행의 묘미는 이런 거지. 나를 향해 손짓하는 아저씨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 보냈다. 창문이 없는 차에 올라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번개가 쳤다. 열린 문을 통해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저씨를 향해 땀을 식혀주어서 고맙다고, 적절한 때에 날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한 웃음을 가득 지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다. 끝까지 한결같고 고생하고 울컥하고 견뎌내고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어서. 그리고 여행 마무리에 찍은 사진이 이 모습이라. 아저씨는 나를 위해 적절히 즐길 수 있도록 조절하며 공항에 데려다주었고 서로를 위해 인사하며 악수를 오래 나눴다. 비록 아저씨는 내가 왜 그토록 오래 손을 잡고 있는지 몰랐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