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모든 경우의 수

- 말레이시아 태국 국경 여행 -

by 임선영
@Padang Besar, Malaysia


땀 흘려 페리 선착장까지 걸어갔는데 그곳이 아니라 다시 걸었고, 겨우겨우 기차역까지 갔더니 하루에 한 대 뿐인 방콕행 기차가 매진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니 일단 버터워스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까지 올라가면 그곳에 기차든 버스든 태국 핫야이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을 거라고 직원이 알려준다. 이로써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



버터워스Butterworth 에서 파당베사르Padang Besar 말레이시아-태국 국경까지 지하철 같은 기차로 2시간 이동(11.40링깃). 파당베사르에서 기차 내리자마자 제복입은 누군가에게 질문하면 알아서 말레이시아 출국, 태국 입국 심사 도장. 파당베사르Padang Besar에서 태국 핫야이hatyai까지 기차로 1시간 이동(10링깃, 링깃 사용가능). 핫야이에서 방콕행 2등급 기차 탑승 835밧.



비록 한가지 방법만을 바라보며 미리 준비하는 것이 마음 편하고 몸도 편했겠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길에서 오는 뜻밖의 순간들이 주는 매력에 빠져 오히려 무언가를 준비하는 자세가 어색하다. 최악의 상황은 핫야이에서 방콕까지가는 기차편도 매진돼서 버스를 타고가야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무더움 속에 도움이 존재했다. 계속해서 묻고 물어서 말레이시아 국경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핫야이까지 가는 기차를 시간에 맞춰 탈 수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방콕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6년전 기억을 더듬어 분명히 핫야이에서부터는 방콕으로 가는 기차가 많을 거라는 것을 알고있긴 했지만 딱 적당한 시간에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방콕행 기차를 타기위해 주어진 넉넉한 시간 덕분에 6년만에 다시 한 번 핫야이를 둘러볼 여유가 주어졌고 남은 링깃을 바트로 환전하고 푸짐한 점심도 먹을 수 있었다. 길은 언제나 열려있고 상황은 최악의 상황을 포함한 모든 해결 가능성을 전제에 두고 돌아간다. 1등급이라고 꼭 좋은 게 아니듯이, 에어컨 바람을 참을 수 없이 싫어하는 나에게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2등급 침대 기차가 딱 좋다. 유리창 없는 식당칸에서 온몸을 들썩이며 콜라를 마시는 그마저도.



1등급도 아닌 2등급 혹은 3등급 방콕행 기차가 뭐 그리 좋으냐고 묻는다면 6년 전에도, 지금에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기차 칸 사이 통로에 서 있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기댈 곳이라고는 손잡이 하나뿐인 것에 온몸을 의지하며 버티고 섰을 때에야 만날 수 있는 내 몸을 휘감아 솟구치는 바람. 그 바람이 그렇게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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