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늘어나는 노오란 밭

- 마에바시 기차 여행 -

by 임선영
@Maebashi, Japan


도쿄에서 9일째 되는 날 아침, 그동안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체크아웃 날 그리고 사촌 오빠가 있는 마에바시로 가는 날. 여행에 항상 함께하는 닥터마틴을 신고 새로 산 양말을 신고 도쿄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도쿄 근처에 거주하는 사촌 오빠 덕분에 도쿄에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하루 정도는 근교로 떠날 수 있는데, 이번에는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고 3시간 정도 떨어진 군마 현 마에바시였다.


우에노 역에서 익스프레스를 타고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교통비가 5천 엔이 넘어가므로 시간이 많은 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하철을 이용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는 길을 청춘열차를 타고 갈 것인지 중앙선을 타고 갈 것인지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으려나.

우에노 역에서 가는 방법을 물어보고 지하철 노선도를 얻어서 출발했는데 2분 차이로 마에바시까지 한 번에 가는 건 못 타고 타카사키에서 내려서 환승하는 지하철을 탔다.


타카사키 역에서 내려서 바로 뒤를 돌아 료모 라인으로 환승, 분명 지하철일 텐데 겉모습은 기차 같고 내부는 지하철과 기차를 합쳐놓은 것 같다. 마주 보는 좌석과 가운데 놓여있던 작은 받침대, 그리고 위로 열 수 있는 큰 창문이 정말 좋았다. 료모 라인을 타고 마에바시까지 가는 동안 수없이 지나치는 시골 풍경. 점점 낮아지는 건물들과 점점 늘어나는 노오란 밭을 보며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세찬 바람을 맞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상쾌!


그렇게 세 시간 십분 정도 걸려서 마에바시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에 맞춰 딱 마중 나와주신 사촌 오빠와 큰엄마. 오랜만에 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했다.


적당히 시골 분위기와 도시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마에바시 군청 꼭대기에 올라서 마에바시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건물 중간층에 있는 마에바시와 근처 동네를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초등학교와 고속도로 지명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둔 입체적인 지도 위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발을 디뎌봤다.


한국에서도 동네마다 이런 지도가 있다면 직접 지도 위를 걸어 다니며 내가 어디에 사는지 동네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교육적 자료가 될 수 있을 텐데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한국이었다면 그 좋은 것들을 만들어두고도 아마 못 들어가게 별도의 라인을 설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에게도 모든 것을 공개하는 쿨한 군청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아카기 산으로 향했다.


시골 풍경을 지나고 나면 아카기 산을 알리는 빨간 초입구가 나온다. 일본 사람들에게도 휴식처로 알려진 아카기 산은 꼭대기에 칼데라호에 온천도 있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마침 연휴 마지막 날이라 다행히 우리만 올라가는 차였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에 사촌 오빠가 추천해준 우동집에 들렀다. 면발을 손수 뽑기 때문에 보통 우동에 비해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진짜 맛있었다. 세트로 구성된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올 수 있는 대단한 우동집. 그곳에서부터 정상까지 1시간 정도를 더 올라가야 한다길래 배만 채우고서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내려왔다.


사촌 오빠가 교수로 자리 잡은 대학 안에도 들어가 보고 마에바시 역 바로 뒤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짧지만 속성 코스로 마에바시를 둘러보고 집에 들어가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인턴을 시작하며 나눴던 3년 전 이야기는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온 지금과 달라졌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조금 더 일찍, 하루 더 먼저 찾아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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