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맞아주는 밝은 밤

- 도쿄에서 바르셀로나 여행 -

by 임선영
@Barcelona, Spain


공항으로 가는 새벽 버스 안, 진정 스페인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공항 속에서 여전히 떠나는 사람은 많지만 헤어짐은 아쉽다.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편도 티켓이라 스페인에 도착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서명을 하고 나서야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보통 편도 티켓에 입국 거절된 경우는 없지만 규칙은 규칙이기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7kg였던 기내 반입 규정은 10kg 가까운 내 짐들을 멈추게 했고, 조심스레 1kg도 채 안되는 노트북을 3kg 정도의 무거운 노트북이라고 얘기하며 뻔뻔하게 웃었더니 덩달아 웃으며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이런저런 일로 조금은 오래 걸려서 받은 러시아 항공 바르셀로나행 티켓. 엄청 기다란 청년들 속에서 아주 작은 땅꼬마가 드디어 악명 높은 러시아 항공을 탔다. 12시에 게이트를 닫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역시 듣던 대로였고, 12시가 다 되어서야 문을 열어주었다. 다음 비행까지 여유로운 나에게 연착쯤이야.


그때까지도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모스크바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 채 도쿄에서 오전 12시 출발해서 바르셀로나에 밤 11시 도착한다는 숫자 때문이었다. 말없이 돌아가는 시차를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숫자를 믿어버려서 길고 긴 비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몇 번의 잠을 자고 눈을 뜨고 안대를 내려 주변에 들려오는 정적을 굴리고 나서야 7시간 정도의 시차를 느끼게 되었다.


시간을 체념한 채 멍하게 창밖으로 바라본 길고 얇은 강과 온갖 산맥으로 뒤덮여있는 지형은 진정 내가 언젠가 한 번은 가볼 수 있는 곳인지, 어디쯤인 건지, 당장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면 나는 어디에 서 있게 될 것인지 항상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하늘 위에 떠오르면 두근거림도 잠시 이런저런 생각들로 곧 피곤하지만 그나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괜찮아서, 담요와 쿠션, 안대, 'Wake me up for' 센스 있는 스티커까지 있어서 괜찮다.


도쿄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10시간 비행에 2시간 반 정도 쉬고 나서 다시 모스크바에서 바르셀로나까지 5시간 비행. 10시간 동안 제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지만 중국인보다 더 시끄러운 러시아 발리볼 선수들 속에서 와인을 마시고 잠들다가 일어나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더니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있는 비행기는 런던으로 가고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는 바르셀로나로 간다. 잠시 잠깐 내가 허우적대며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대기 줄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이스크림에 차렸던 정신이 의자에 앉는 순간 다시 흐트러졌다.


11시 도착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30분 정도 빨리 도착해서 생각보다 일찍 바르셀로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밤 도착한 바르셀로나 공항에서는 내가 타고 있던 비행기를 제외하고라도 한 대가 더 도착한 듯했는데 입국 심사관이 단 두 명뿐, 다행히 나는 앞자리라 빠르게 나와서 입국 도장 쾅쾅 받고 공항버스를 타러 나왔는데 줄이 엄청났다. 버스 안에서도 현금으로 티켓을 살 수 있는지 모르고 괜히 티켓사는 기계에 줄 서서 20분 정도 기다렸고 버스를 30분 정도 더 기다려서 결국은 11시 50분쯤 탈출했다.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한 버스 안에서 잘 도착했다며 연락을 남기고 조금 쉬었더니 금방 마지막 정류장인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해버렸다.


실은 늦은 시간이라 공항 노숙을 감행하려 했지만 장시간 비행에 지쳐서 일단은 카탈루냐 광장에 가서 호스텔까지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마주친 거리는 이제 저녁이 오려는 듯 밝았다. 가로등도 밝고 달도 밝고 심지어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도 밝아서 그냥 걸어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걸어야 했지만 생각보다 더웠지만 나를 맞아주는 밝은 밤 빛이 좋았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카탈루냐 광장에서 호스텔까지 20분 정도 걸렸고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체크인 완료. 드디어 바르셀로나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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