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작은 테이블과 작은 의자

- 바르셀로나 고딕지구 여행 -

by 임선영
@Barcelona, Spain


앉아있으면 주문을 받으러 오는 것도 잠시 기다리면 조식이 나오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리 급하지 않은 아침. 내내 머무르면서 하나씩 다 먹어보니 크루아상 햄앤치즈가 제일 맛있고 자몽 주스보다 오렌지 주스가 훨씬 맛있다. 커피는 딱 적당량을 따라주며 요거트는 내 타입이 아니지만 아주 가끔 떠먹으면 맛있다. 딱 2스푼.


시체스를 가려다가 날씨가 흐려지는 바람에 간단히 고딕지구를 산책하기로 했다. 소재와 컬러에 따라 폭넓게 고르는 재미로 3장에 3유로인 tezenis 속옷을 충동적으로 샀다. 레깅스도 저렴한 가격이라 이미 한국에서 챙겨왔지만 하나 골라 담았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컬러풀한 속옷을 샀더니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맞은편 고딕지구 중심에 있는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뾰족한 첨탑은 끝없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주변에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티켓 줄에 합류했고 나도 모르게 7유로를 꺼내어 티켓을 샀다. 운 좋게도 사람이 별로 없었고 미사 시간에 겹치지 않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 기대와 생각 없이 들어가서인지 들어가자마자 분위기에 압도되어 손이 떨려왔다. 가운데에 앉아 가만히 천장에 위치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았다.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무서워졌다. 사진 찍으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코 훌쩍이는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그것보다 주체할 수 없는 죗값으로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저씨처럼 하진 못했지만 스스럼없이 흘려보냈고 때아닌 부끄러움에 한참을 방황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극찬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심심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하고 밖으로 나와서 터덜터덜, 좁은 골목을 지나 또 다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맛있는 빵집도 있고 주저 없이 들어간 아늑한 타파스 집도 있는 좁은 골목길.


Meson del Cafe 1909. 관광객들은 기웃거리다가 이내 스쳐지나 갔지만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스며들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1909년을 의심할 수 없는 튼튼한 작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과 작은 의자, 혼자서 운영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그는 서두르지 않았고 일하는 내내 기억을 더듬어가려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거지 접시는 한쪽 구석에 쌓아두고 치우지 않았지만 먹다가 식어버린 타파스를 데워주는 자상함을 보여주었다. 입맛에 맞는지 물어보았고 같이 먹으면 좋은 음식을 그릇에 조금 더 담아주기도 했다. 일하는 그의 모습만 봐도 계속 웃음이 나는 곳. 물론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하기까지 머릿속이 알고 있는 차분함보다 더 차분히, 그를 멀찍이 구경하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맥주에 샹그리아까지 마셔야했지만.


빨개진 얼굴을 가라앉힐 겸 아이스크림을 물고 걷다 보니 바르셀로네타가 나왔다. 바람이 불어서 살짝 추운 날씨라 숙소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야경을 따라 해변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있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 겸 레스토랑 너머로 엄청난 바람에 성난 파도. 이 날씨에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으슬으슬했다.


바르셀로나 동물원을 지나 CIUTADELLA VILA OLIMPICA 역까지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둑어둑해졌지만 아주 기분 좋은 바르셀로나의 가을밤.

그리고 아주 조금은 영어보다 눈에 익숙해진 스페인어가 늘어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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