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 메트로 여행 -
@Oporto, Portugal
이상한 꿈을 꾸고 깨어보니 새벽 3시. 가만히 날짜를 들여다보았다. 엄마의 음력 생일. 여행을 함께 했다면 좋았을 걸. 비록 내가 지금 당장 케이크를 사들고 '엄마 생일 축하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오랜만에 열심히 화장을 하고 햇빛 좋은 곳에서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아빠랑 여느 날처럼 퇴근 후 간단한 데이트 중이었고 딸내미 얼굴에 손을 크게 흔들었다. 내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서,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나서, 내 아이가 또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나의 엄마는 건강했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무게를 덜어내고 옷을 잔뜩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달달한 초코케이크의 위로가 필요한 싱숭생숭한 마음. 트램 같았던 메트로를 타고 공항에서 포르투 중심으로 들어올 때 마주쳤던, 그곳에 가고 싶었다.
Trindade 역에 도착하니 중심 지점인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공항에서 메트로를 탈 때 받았던 안단테 카드를 기대어두고 사람들이 제일 많이 누르는 버튼을 똑같이 눌러가며 눈치껏 따라 했다. 공항에서 오면서 봤던 곳은 어느 역일까. 지나쳤던 순간에 들어온 장면이라 무작정 가 보기로 했다. 나타나지 않으면 메트로를 타고 바깥 풍경 보며 여행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충전 영수증을 받아두고 직원한테 이정도면 공항 근처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갈 수 있다길래 신나게 교통카드를 찍고 출발했다.
20분 정도 가다가 내려보고 싶었던 곳을 지나치는 바람에 다음 역인 Botica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전광판을 봤더니 4라는 숫자. 타임테이블과 비교하니 4분 후에 메트로가 도착한다는 뜻 같았다. 시간표 상으로는 운행 간격이 길었는데 운이 좋게도 환승할 때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zone에 대한 설명을 뚫어져라 읽어보고 내가 충전한 z4 싱글 티켓이 맥시멈 1시간 15분 내까지 환승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역 Verdes.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트램처럼 바로 땅을 밟았다. 허허벌판에 메트로 역 하나 서 있는 곳이었지만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바람에 곧 쓰러질 듯 휘청이는 나무가 매력적인 곳이다.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14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그 가운데 서있었다.
마을과 가까운 듯 보였지만 인적이 드물었다. 나와 맞은편에 서 있는 두 할아버지가 끝. 그마저도 반대편 메트로가 태우고 가는 바람에 혼자가 되었다.
뒤를 돌아 정류장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섰다. 빛의 그림자처럼 유독 밝은 부분의 풀들이 기울어진 나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 끼치기도 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만큼 그렇게 기울어져 자란 만큼 그대로 버티기를.
다시 한 정거장 떨어진 Crestins 역에 내렸다. 왠지 모르게 갈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지도도 없이 무작정 마을을 둘러보았다. 돌아다니며 슈퍼 한 군데를 발견한 것 말고는 걷는 사람 하나 없이 여유로웠다.
돌길을 따라 옛날의 제주도처럼 낮은 대문을 갖춘 작은 주택이 줄지어 나왔다. 오래된 듯 보이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이 있고, 낮은 대문은 어디나 살짝 열려있었다. 가끔씩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창문 밖으로 신기한 듯 바라보는 동네.
30분 정도 걸었을까, 마을이 끝나고 큰 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큰 길 맞은편에서 드디어 갈대를 만났다. 엄청 커다랗고 기다란 나무 두 그루와 그 주변에서 흩날리던 금빛 갈대.
발이 부어올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는 좋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