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 동네 여행 -
@Oporto, Portugal
밤새 비가 내렸는지 나무에 걸터앉아있던 빗방울들이 내려오다가 돌 사이에 고여있던 물에 부딪혀 튕겨 올랐다. 작은 소리가 돌길 위에서 흩어졌다. 새벽처럼 흐린 하늘에 하염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나무가 펄럭이는 지금이 이상하게 좋다.
어제 산 기분 전환 뜨개질 귀걸이를 귀에 걸고 공원으로 걸었다. 비에 젖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벤치에는 앉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인데도 일요일이어서인지 문을 연 곳을 찾기 힘들었다. 그중에 바람이 불어 문이 펄럭이는 식당을 발견했다. 바깥공기와 사뭇 다른 식당 안은 따뜻했다. 테이블마다 각 한 병씩 작은 와인을 두고 마시며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국적이고도 시골집 같은 이 안에서 낯선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참 따뜻하며 점잖다.
거리를 돌아보니 날씨가 살짝 개었다. 잠시 심호흡할 겸 교회에 들어갔다. 사진을 찍고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무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뒷모습을 보여주던 할머니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서인지 무릎을 꿇는 곳에 발을 올려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나도 따라 발을 올려보았다. 무릎이 포개져서 팔을 올리기가 편했다. 몸을 기울여 무릎 위에 팔을 올려놓고 보니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자세가 되었고 그 상태로 앞을 보기 시작했다. 눈은 장식 하나하나를 훑어내려갔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는 자꾸만 다른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쉬이 설명되지 않았다.
해가 질 때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이 살짝 비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대성당으로 달려갔다. 금방 해가 질 것 만 같아서 달려갔다.
이대로 난 괜찮은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앞으로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정확지 않은,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괜찮은 걸까. 말 그대로 도피인 것 만 같아서 하염없이 슬퍼졌다.
왜, 무엇을 위해서 여기 있을까. 떠나온 것은 쉬웠는데 떠나와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라는 말은 지금 당장 머릿속에 빠르게 흡수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생각들이 바람에 휩쓸려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텅 비어버린 눈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 사이로 살짝 비친 맑은 하늘이 사라질까 봐 무작정 뛰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날아가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정확하게 난 흔들리고 있었고 끝없이 두려워했다. 아무것도 없는 길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여행 이후의 삶이.
대성당 근처에 있는 골목길 2층 집 할머니는 내가 지나가자 커튼을 닫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고양이는 할머니가 사라진 창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나에게 걸어왔다. 아마 먹을 걸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 했던 것 같은데, 카메라를 꺼내려 가방을 뒤적이니 다가온 것 같다.
다리를 두 바퀴 정도 배회하다가 불쌍한 눈으로 올려다보길래 살며시 굽혀 앉았다. 미안한 마음에 쓰다듬어주니 그릉그릉 하다가 나에게 음식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갑자기 앞 발과 입을 이용해 내 손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래놓고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는 길고양이를 보니 상처 부위가 부풀어 오르고 피가 고였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있었다.
문득 오늘 밤만큼은 한없이 가라앉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정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무 계획 없는 여행을 시작했는데.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모든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졌다.
반짝이는 불빛 끝에 숙소가 있고 오늘 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맥주를 마시는 게 지금 이 순간 제일 중요할 뿐. 돌아가야 하는 일도 돌아가서의 일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머무를 시간이 더 남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