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그저 벤치에 앉아

- 포르투 카페 여행 -

by 임선영
@Oporto, Portugal


밤새 열어놓은 창문으로 기분 좋기는 오랜만이다. 분명 감기에 걸려야 하는데 오히려 나아가는 게 이상할 지경. 웬일로 방 안에 사람들이 없어 조용하다. 항상 자고 있는 스텝들도 일찍 나가버려서 오랜만에 짐 정리를 했다. 그리고 다 쓴 일기장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새로운 노트를 꺼냈다.


날씨가 좋아진 기념으로 포르투에서 첫날 갔었던 식당에 갔더니 오늘도 프란세지냐 먹을 거냐며 주인아저씨가 안경을 고쳐 쓰고 나를 기억해주었다. 바쁜 점심시간에도 '도부리가두'라고 발음하는 나에게 '오'브리가두'라며 나의 발음과 억양을 고쳐주는 아저씨. 역시 그가 추천해주는 음식은 이번에도 뭔지 모르지만 맛있다.


근처 가게에서 엽서 몇 장을 사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그림을 그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미대생인데도 손그림에 익숙지 않아서 그나마 손으로 할 수 있는 바느질. 엽서에 바느질을 했다.


벤치에 앉아서 한 장을 끝내고 카페에 들어가 편지를 썼다. 마음을 쓰고 실로 연결하다가 이내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혼자 끄적이는 시간도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갑자기 몸이 따뜻해지는 순간. 그렇게 커피 세 모금을 마셨는데 벌써 두 시간이 흘러버렸다.


바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잠시 도루 강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바로 옆자리에 백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앉았다.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지도를 펼치며 어디가 괜찮다던데, 천천히 손짓했다. 그 손짓에 할아버지는 기침을 두어 번 했고 할머니는 웃어버렸다. 할아버지가 하품을 하려는 듯 '아아-', 할머니가 '-암'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살짝 기대었고 할머니는 지도를 접어 넣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 흔한 사진도 찍지 않았고, 그저 벤치에 앉아 서로 기대어 앉아있었다. 한참 동안.


가벼운 발걸음. 상벤투 역까지 걸어가는 거리 곳곳에서 벽에 부딪혀 생긴 울림이 깔끔하다. 지나가는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골목 배경음악. 리코더는 정말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힘껏 쳐주고 싶었던 저녁.

방에 돌아와 빨래를 끝내고 나니 열한시가 되었다. 내일 아침부터 우체국에 들려 한국으로 엽서를 보낼 생각하니 입꼬리가 두근거린다. 누워있는데도 입이 몰래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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