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파도가 박수치는 등대

- 포르투 등대 여행 -

by 임선영
@Oporto, Portugal


푸른빛이 방안을 가득 채운 새벽, 나는 웅크리고 있었고 알 수 없는 기분에 잔뜩 머리를 굴려가며 푸른빛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지금 나는 매 순간 결정해야 했다.


한국에서부터 아껴왔고 여행 때도 챙겨왔던 마스킹 테이프를 잃어버렸다. 우표를 붙일 수 있는 도구가 없어져서 풀을 사러 나섰다. 겨우 화방에서 풀을 찾았는데 한국에서 분명 300원 주고 살 수 있는 크기가 1.10유로였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표도 붙여야 하고 계속 정리해야 하니까 1.10유로쯤이야라는 마음으로 샀다. 그리고 그 길로 쭉 올라가 라즈베리, 스트로베리, 바나나, 오렌지가 섞인 스무디를 사들고 좋아하는 공원에 앉아서 온 몸에 퍼지는 상큼함을 즐기며 쉬었다.


포르투에 머무는 동안 종종 들렸던 편집샵 주인에게 들었던 등대를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봐도 한참 걸어야 할 것 같았지만 오늘은 내리막길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트램길 조차 마음에 든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이곳은 정말 부자 동네인 건가. 그동안 포르투 구시가지에서 봐오던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여유 있는 사람들까지.


잠시 쉬어가는 기분으로 걸터앉았다. 쉬엄쉬엄 지나가는 크루즈에 손도 흔들어주고, 등 돌리면 지나가는 트램에도 손 흔들어주고, 곳곳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들 구경도 했다.


앞을 보며 걸으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걸으며 가까이 봤던 풍경이 멀어지면 어떻게 보일까 싶어서. 크루즈를 타고 멀리서 봤던 것과 다르게 여유롭고 곳곳에 구경거리가 많은 길.


끝날 것 같던 해안선 코너를 돌면 해안가 한적한 동네와 또다시 펼쳐진 끝없는 길 그 끝에 1번 트램 정류장이 있다. 길을 건너면 공원.


공원을 지나면 드디어 등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정말 신기하게도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앉아있던 비둘기들. 반대편에 있는 방파제에서는 낚시하고 등대가 있는 이곳에서는 할아버지들이 태닝 중이다.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파도가 박수치는 등대에 드디어 도착했다. 직접 걸어와서 만났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냥 또 걸터앉았다. 바로 발 밑에서 잔뜩 성난 파도가 휘몰아친다. 잡아먹히면 그대로 휩쓸려갈 것 같아서 무섭지만 바로 발끝에서 보고 있으니 짜릿하다. 사실 등대는 말 그대로 랜드마크였지만, 이 짜릿함을 느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한참 동안 앉아서 슬슬 내려가려는 해를 만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어제처럼 500번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에 마침 그 정류장을 지나치는 다른 번호의 버스를 만났다. 202번 버스. 모르는 버스를 타보기로 결정한 건 탁월했다. 왼쪽 창가에 앉아 한 블럭 넘어갈 때마다 보이는 바다와 하루 이틀 포르투에 머무르는 것 만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색다른 포르투의 모습들을 스쳐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두고 나온 밤, 지금까지 본 포르투의 하늘 중에서 제일 예쁜 하늘을 만났다. 아이폰으로는 담기지 않는 아마 카메라여도 담기지 않을 예쁜 하늘. 포르투를 떠나기 전 날 밤 만난 제일 예쁜 구름, 하늘, 석양은 카메라가 아닌 눈에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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