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스본 골목 여행 -
@Lisboa, Portugal
우체국에 들려 우표를 샀다. 포르투에서 산 것과 다르게 포르투갈 바다가 그려진 우표. 이미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는 엽서에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보낼 엽서에 붙여야겠다.
마음에 드는 우표를 사들고 신난 마음에 아우구스타 거리를 걸으며 끝도 없는 계단을 걷다가 갈라지는 거리 가운데 있는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역시. 어제 광장에서 괜히 비싸게 먹었던 점심과 다르게 느긋한 점심.
느릿느릿 바이후 알투 언덕을 올랐다. 리스본의 빨간 지붕에서 저 멀리 알파마 지구에 있는 상 조르제 성까지 고개가 올라가자 이내 반으로 갈라진 하늘이 보였다.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흐린 왼쪽 하늘과 맑은 오른쪽 하늘. 먹구름이 밀려나려나 다가오려나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우산을 챙겨 나왔으니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 같은 골목으로 깊게.
사람이 살지 않는 골목인가 싶어 십분 정도 두리번거리며 서있으니 한 할머니가 걸어오며 웃어주고는 파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몇몇 사람들은 살고 있나 보다. 곳곳에 폐허도 있었지만 사람이 사는 동네이므로 조금 더 조용히 차분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아주 작은 아치형 다리를 통과해서 네 갈래의 골목길을 만났다. 내가 내려왔던 길, 내려온 길과 이어지는 눈앞에 보이는 길, 옆으로 계단을 따라 손잡이가 있는 길, 또 다른 옆으로 뻗어있는 길.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다가 손잡이에 걸터앉았다.
손잡이는 잠시 쉬는 나에게 의자가 되었고 걸어 올라가는 할머니에게 버팀목이 되었고 지나가는 관광객에게는 사진 찍을 좋은 배경이 되었다. 앉아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햇빛이 반짝하다가 거리 사이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반짝 뿌리는 비에 젖을까 꺼내놓은 물건들을 주섬주섬 안으로 챙기던 할아버지. 골동품 가게인 줄 알고 들어가도 되느냐 물었는데 알고 보니 온전히 그만의 공간이었다. 뜻밖의 초대.
작업 기계들이 있어서 동네 철물점 같기도 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공간이지만 할아버지는 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작업대에서 종이를 뒤적이셨다.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아서겠지만 타인인 나에게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라 가방을 한참 뒤적여서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만한 금속 물건을 찾았다. 두 손을 접었다 힘껏 펼치면서 선물의 뜻을 표했더니 그제야 '오브리가두' 하며 밝게 웃으신다.
'Obrigado! Tchau!'
걸어내려가는 길에 또다시 우산을 쓰고 걸어야 할 정도의 비가 쏟아지는 데도 이상하게 하늘은 깨끗했다.
아무도 없는 오후 다섯시 호스텔. 잠시 커피를 마실까 해서 머신에 커피 가루를 넣고 물을 끓였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그제야 나긋하게 홀로 울리던 음악소리가 들린다. 비가 오는 지금과 어울리는 울림. 그새 커피 머신은 크르릉 커피를 내렸고 소파에 누워있으니 나른하게 졸리다.
비가 어느 정도 그쳐서 저녁이나 먹을까 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홀로 쓰던 10인실 방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던 그녀는 경유하는 와중에 짐을 잃어버려서 짐이 올 때까지 리스본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둘 다 기력 없이 침대에 발라당 기대어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앉아있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영어를 두고 이스라엘 언어인 헤브라이어와 한국어를 번역하며 서로의 언어에 대해 신기해하기도 하고, 한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다. 마음에 공간을 두고 그 공간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채우면 괜찮을 것 같은데. 다들 그게 어렵나 봐. 서로가 옳다고 싸워. 그녀는 내게 아무렴 어떠냐는 말을 종종 덧붙였다. 어쨌든 whatever.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으면 되는 거야. 아무렴 어때. 당장 내일의 계획이 없어도 짐을 잃어버렸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