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그게 제일 심플하다고

- 리스본 강가 여행 -

by 임선영
@Lisboa, Portugal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돌려 말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말만, 해야 하는 말만, 중요한 말만 해도 된다고 했다. 그게 제일 심플하다고.


그래서 그는 알 수 없는 언어가 가득한 내 일기장을 보며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읽어달라고 했다.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도 낯간지럽지만, 소리 내어 읽어달라는 말은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하니까.


나는 내가 제일 우울하다고 느꼈던 하루의 일기를 소리 내어 읽었다. 우울하지 않게. 그랬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계획하지 않았는데 맑았다가 갑자기 쏟아져내리는 비처럼 그리고 또 아무 탈 없이 맑게 열린 하늘처럼 계획하지 않은 삶을 탈 없이 지내는 것이 정말 힘든 일임을 깨달았다.


강가에 앉았다. 꼭 원하는 곳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가야만 내가 거기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이 강 옆에 앉아 글을 쓰며 기타 소리와 파도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소리를 듣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식상한 말이지만 모든 게 그렇듯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의외의 곳에서 의외로 괜찮은 것을 만나는 즐거움은 상당하니까. 이건 완벽히 계획한 일도 아니었는데, 앉아있는 지금이 정말 완벽하리만큼 마음에 든다.

모든 게 완벽할 필요도 없고 모든 걸 놓아서도 안됨을 여행 한 달쯤 되는 이 시기에 깨닫는다. 자꾸만 그게 삶인 것 같고, 내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온 마음가짐이 잉크를 통해 온몸에 스며들어온다. 어쩌면 계획이 없는 여행은 그래서 더 매력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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