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바느질로 마무리한 엽서

- 리스본 성벽 여행 -

by 임선영
@Lisboa, Portugal


리스본에서 하루 더 머무르기로 결정한 아침 여덟시, 갑자기 눈이 떠졌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가 커피를 내렸다. 조식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남은 요거트를 먹으며 앉아있는데, 어제 같은 방에서 하루 종일 인상 쓰며 책을 읽던 그래서 무섭다고 생각했었던 그가 책을 들고 들어왔다. 짧은 인사가 오갔고 어색함에 마치 호스텔 스텝인 듯 자연스럽게 스피커를 켰다. 책을 읽다가 그는 내가 여러 가지를 물었고, 일을 그만뒀다는 말에 한숨을 내쉬더니 깊이 동의하며 그는 스트레스도 많고 피곤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일 계속 할거야?'
라는 내 물음에.
'you know...'
잠시 멈추던 그는.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건 좋지만 돈을 버는 걸 떠나서 나는 내 안에 있는 소리에 집중해서 지내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어려워. 하지만 곧 그렇게 지낼거야.'


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야. 난 아무 생각 없이 떠나왔지만 그 어떤 것도 잘 모르겠어.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쉽지 않아.'


그는 책에 손을 올려놓더니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무엇이든 노력하는 건 괜찮아, Try!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전부 각자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얼마나 꺼낼 수 있느냐는 각자에게 달려있어.'


모든 걸 내려놓고 퇴직금만 가지고 돌아갈 시간도 모른 채 떠나와버린 곳에서 낯선 외국인과 삶에 대한 고민, 나라를 넘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고맙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리스본에서의 온전한 마지막 날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날이 흐려서 미뤄뒀던 리스본에 있는 언덕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상 조르제 성에 다시 가기로 했다. 그때에는 동네 골목으로 올라가서 쉽게 금방 올라갔던 것 같은데, 오늘은 바깥 길로 걸어서인지 꽤 힘들었다. 트램을 타거나 툭툭을 이용하거나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 틈에 꿋꿋하게 걸어서 도착.


서로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 취하는 사람들 틈에 껴서 리스본을 위에서 바라보다가 돌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엽서를 꺼냈다. 그 사람을 생각해서 편지를 쓰고, 배달하는 사람을 위해 고맙다는 짧은 글귀를 남기고,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우표를 붙이고, 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특별한 엽서가 되기를 바라며 바느질로 마무리한 엽서. 종이 한 장이 먼 곳에서 돌아 한국에 닿기까지. 부디 잘 도착하기를.


포르투갈 깃발이 펄럭이는 성. 성벽을 따라 계단을 올라서면 탁 트인 전망 아래를 내려다봐도, 주변에 있는 색색의 집들을 둘러봐도, 저 멀리 뻗어있는 강을 봐도, 맑은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봐도 좋다. 다 좋다.


하루 종일 머무르며 앉아있어도 좋을 그곳이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비행기가 날아간 구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을 보며 온몸이 타들어갈 듯 앉아있었다. 느릿느릿 걸어내려가 광장에서 저녁을 먹고 호스텔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0. 짧은 순간들이 소중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