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오버더레인보우

- 라고스 호스텔 여행 -

by 임선영
@Lagos, Portugal


한국인이 전혀 없을 것 같았던 라고스 호스텔에서 의외로 한국인을 만났다. 스물한 살 이라던 그녀는 여느 청춘과 다름없이 휴학 후 유럽 여행을 택했다. 한국에서부터 모든 걸 예약하고 여행을 시작하느라 앞으로의 일정을 변경할 수 없는 그녀는 나의 여행을 부러워했지만 그러면서도 일정 부분 예정치 않은 일에 두려워하는 듯했다.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방이 다 차버려서 당장 다른 숙소를 찾아야 하는 나를 보고. 이런 부분이 그녀가 걱정하는 '예고 없이 벌어지는 변수' 중 하나겠지. 하지만 여행이 길어지다 보면 크게 개의치 않고 다른 곳을 찾게 된다.


나를 그곳에 데려가기 위해 사람들이 가득 찼나 보다 생각하며. 이제는 금방 짐을 챙길 만큼 가방이 무겁지도 않는다. 지금껏 여행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얘기하며 언젠가는 꼭 계획 없는 여행을 추천했으나 아직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라 완벽히 이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마 때가 되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겠지.


작업을 하는 도중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거세게 내리던 비는 일단 곧 그쳤지만 하늘은 언제 뿌릴지 모르는 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또 비가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작업을 끝내고 짐을 챙겨 나왔다. 호스텔 근처 문 위 숫자들을 보고 있는데 가까이서 한 여자가 손을 흔든다. 그리고 나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뛸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가방. 내일은 나 혼자 호스텔 전체를 쓸 수 있다며 원한다면 예약한 방보다 더 넓은 방으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얻은 4인실,이지만 혼자 독차지. 심지어 세탁기는 단돈 2유로. 오랜만에 손빨래에서 벗어났다. 친절했던 그녀의 설명 덕분에 기분이 한층 좋아져서 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을 겸 밖으로 나왔다.

광장 바로 앞에 있는 우체국에 한국으로 엽서를 보내러 가는 길, 비가 온 한차례 더 쏟아진 뒤 비가 그치자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빗방울이 나뭇잎을 스쳐 떨어지는 동안, 금방 비를 맞고 젖어버린 후드를 뒤집어쓰고도 오버더레인보우를 참 맑게 부르던 사람.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가만히 서서 몸을 흥얼거리는 사람은 나와 그뿐인 듯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그를 뒤로하고 걸어가면서도 입에서 오버더레인보우가 맴돌았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비가 다시 올 듯 말 듯 파도가 빠르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내가 라고스에 온 첫날 지도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던 나를 봤었다며 또 만나서 반갑다고 커피를 사주겠다는 것. 사실인지 의문이었지만.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다지 말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작은 가게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얻어 마셨다. 처음 보는 나에게 커피까지 사주며 과도한 궁금증을 풀어놓는 걸 보니 미심쩍은 마음에 곧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비가 쏟아졌다. 급한 대로 바닥을 보이는 커피 잔을 들고 카페 안에 들어갔다. 아저씨는 와인 한 잔을 더 시켰고 나는 괜히 머쓱해 카페에 있는 강아지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가봐야겠다고 일어섰다.
괜히 쓸데없는 시간을 빼앗긴 것만 같아서 기분이 그저 그랬는데 호스텔 주인이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 아침에 간단히 먹을 크래커와 잼을 준비해놨다며 마음껏 먹으라고 말했다.
'조식이 포함 안된 가격이지?'

'응, 조식은 따로 없고 간단한 커피와 허니가 있어.'

라고 말했지만 나의 질문이 신경 쓰였던 모양. 아무래도 순수한 마음으로 건넨 호의가 편하다. 나를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 그곳에 사람들이 가득 찼나 보다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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