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여행 시작 -
@Tokyo, Japan
입하
통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보려고 결단을 내렸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번 옳고 그름이 굴러다니지만 한 번쯤은 나를 과감한 곳에 던져놓고 싶었다. 안정적인 곳에서 날름날름 달아 보이는 것들을 취하며 길을 잃고 허우적대면서도 마냥 안정적인 것들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역겨웠다. 모든 걸 씻어내려 줄 깔끔하고 청량한 무언가를 쏟아 넣고 싶었다.
시작은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또 다른 시선으로의 이동이었다. 항상 떠날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아무 계획 없이 이렇게 떠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결정은 내리기 어려웠지만 결과는 간단했고 인사는 힘들었지만 대화는 쉬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돈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 얼마큼 머무를지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도쿄에서 열리는 아트북 페어를 보기 위해 도쿄행 비행기 티켓과 스페인에서 지인들을 만날 약속을 위해 도쿄에서 스페인까지 가는 티켓까지만 예매했다. 출국 일주일 전에 몸을 한가득 뒤덮는 평범하지만 한눈에 보이는 보라색 여행 배낭을 구매했고, 도쿄와 바르셀로나에서 머무를 며칠의 호스텔을 잡아두고 떠났다.
마음을 정리할 틈 없이 이별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매순간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꼭 이런 변화가 있을 때만 느껴지는 늘 곁에서 힘을 주던 소중한 사람들. 아쉬움은 언제나 남기 마련이지만 그 마음은 언제나 견디기 힘들다. 그들이 나를 찾는 것보다 어쩌면 내가 살아감에 그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여전히 홀로서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어서 더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토닥였다. 확연히 달랐고 생각했던 것보다 불확실하지 않은 더 확고한 삶 앞에서.
새벽 비행기라 4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시린 눈을 참고 첫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 화요일인데도 공항에는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 시작도 전에 주저앉아버릴만큼 잔뜩 피곤하고 복잡한 마음에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뒷좌석 창가에 앉아 빠르게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창밖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내내 잠을 자서인지 눈을 떴을 때에 개운해졌다. 순식간에 나를 도쿄로 옮겨놓은 비행기에서 내려 긴 여행에 함께할 9kg 가방을 업고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는 잠시 서서 머뭇거렸다.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정신을 깨우고 아주 괜찮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게이세이 메인 라인 우에노 행 급행열차를 탔다. 꽤 많은 역을 지나쳐가는 동안 순간적으로 내려보고싶은 곳들이 있었다. 오래전 간이역 풍경으로 가득한 오오사쿠라 역과 사쿠라 역을 지나면 펼쳐지는 평지와 일렬로 늘어선 나무, 그리고 나무를 넘어 살짝 보이는 인바누누마 호수가 펼쳐지는 구간.
곳곳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풍경을 보면서 한참을 더 달려 아오토 역에 닿아 다른 열차로 갈아타는 순간에도 잠시 서서 머뭇거렸다. 깊이 주저하기도 전에 들어온 열차를 타고 아사쿠사를 거쳐 구라마에 역 도착했다. 오른쪽 골목으로 걷다가 마주한 다리 앞에서 어디로 가야되나 고민하며 둘러보는데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4시부터 체크인이라 간단한 설명을 듣고 1층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와이파이가 너무 잘 터지는 바람에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 일주일 머무르는 페이를 지불하고 지인들에게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근처 밥집을 물어보고 카메라만 들고 산책을 나섰다.
신호등을 건너지 않고 이어지는 다리를 지나 크게 한바퀴를 돌고 숙소로 되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와 잠이 들었다. 밤 열한시, 1층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이 둥둥거리고 밖에서 떠드는 웅얼웅얼 말소리를 소음이라고 느껴야되나 고민스러운 내부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몇 걸음 앞에서 마주친 사이 계단과 이어지는 차가운 강바람에 낯선 기분은 극에 달했다. 나는 지금 여행을 시작했는데 서울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모든 마음을 가져와 버린 기분.
밤 열두시에도 1층에 있는 사람들은 북적였고 아직 손에 쥔 맥주가 남아있었지만 이상한 기분을 떨쳐놓고 싶어서 다시 침대에 뒤집어 누웠다. 잠깐이나마 하루에도 몇 번씩 감았던 눈 때문인지 마음가짐 때문인건지 쉬이 잠이 오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