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햇살과 자연과 하나 되는 고요함

- 아르달레스 언덕 여행 -

by 임선영
@Ardales, Spain


아르달레스. 론다에서 말라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가던 중, 순간적인 풍경에 반해 핸드폰을 꺼내서 현재 위치를 캡처하고 말라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직원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왜 가려는 거냐고 묻는 직원.

'그냥. 오면서 봤는데 무지 마음에 들어서. 꼭 가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말라가를 뒤로하고 빨래도 미뤄두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단지 창밖으로 봤던 풍경 하나만 보고. 아르달레스에서 며칠 머무르고 싶었지만 아주 작은 마을이라 호스텔이 없고 호텔 하나만 있었기에 말라가 호스텔을 하루 더 연장하고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호스텔 직원이 알려준 버스 시간표에 의하면 론다-말라가, 말라가-론다 행 버스가 대부분 아르달레스를 지나쳐간다. 1시 버스인데 여유롭게 12시 59분쯤 버스 기사에게 표를 구매하고 출발.


한 시간쯤 달려 정류장이 아닌 아르달레스 마을 앞 도로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엄청난 바람. 그 바람에 펄럭이는 셔츠처럼 자꾸만 입꼬리가 펄럭여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을 지도
1. Ayuntamiento 시청
4. Iglesia 교회
8. Colegio Publico 초등학교


마침 초등학생들 하교 시간이었는지 우르르 쏟아지는 아이들과 함께 걸어 올라갔다. 여행객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한 명씩 주위를 맴돌면서 아닌 척 힐끔힐끔 눈을 굴려가며 쳐다본다. 먼저 '올라!' 하고 웃으며 인사하면 수줍게 웃으며 도망가거나 손을 크게 흔들어주는 아이들. 높은 언덕이 익숙한지 친구들끼리 잘도 뛰어올라간다.


아이들을 따라가다가 가정집 사이에 무심한 듯 열린 가게가 보여서 무작정 들어가보니 빵집이었다. 올라가는 동안 먹을 빵을 하나 사자 선물이라며 빵을 하나 더 챙겨주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가 빵이 다 그맛이지 생각했는데 진짜 고소하고 맛있었다. 다른 길로 내려오느라 못 산 게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쉬울 정도.


오밀조밀 모여있는 새하얀 집들과 알록달록 꾸며진 곳에서 시선을 올려다보면 교회 십자가가 둥실둥실 보이고 걷다가 힘들어서 뒤를 돌아 걸으면 골목길 사이로 저 멀리 산꼭대기까지 다 보여서 오르는 동안 힘들었던 정신이 맑아진다.


드디어 교회 앞, 높은 곳에서 뜨거운 햇빛을 반사하는 하얀 벽 때문에 눈이 부시다. 교회가 제일 높은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더 높은 곳에 돌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까지 오르고 싶었다.


사람들이 드문 곳이기도 하고 드높은 곳이라 주변에 들리는 모든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타닥타닥 소리가 나서 언덕을 내려다보면 올리브 나무를 힘껏 내리치며 열매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끼익 끼익 흔들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면 귀엽게도 말을 이끄는 사람 형태의 풍향풍속계가 보인다. 그리고 바람에 맞춰 있는 힘껏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가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이곳이 얼마나 바람 많이 부는 곳인지 새삼 또 깨닫는다.


언덕 꼭대기 그 어딘가에 섰다. 그곳에는 스스로 이길 수 없는 바람과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자연과 하나 되는 고요함만이 존재했다.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마저 남은 자수를 완성하고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추워져 내려왔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슬슬 내려온 마을 외곽. 다음 차가 올 때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서 맥주와 함께 타파스 여러 개를 먹고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마치 이곳밖에 없다는 듯 쏟아지는 햇빛에 참 기분이 좋았다. 마을이 평화롭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열심히 뛰어놀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으며 신문을 사러 왔고, 학생들은 서로 떠들며 지나가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자동차가 지나간다. 가만히 보이는 모습 그대로 쳐다보고 있으니 시간이 참 빠르다.


구멍가게에서 알려준 시간보다 이십분이 지나고서야 말라가로 향하는 버스가 왔지만 기다리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저녁, 론다 호스텔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언니가 보내온 사진. 내가 아르달레스에 있을 때 그녀는 아르달레스와 가까운 왕의 오솔길이라고 불리는 Caminito del Rey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이곳을 추천했다. 쉽게 갈 수 없지만 꼭 가봐야 한다며, 인터넷에 찾아보니 '왕의 오솔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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