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참 오밀조밀 작은 곳

- 그라나다 언덕길 여행 -

by 임선영
@Granada, Spain


늦게 잠을 잔 것도 아닌데 눈을 뜨고 보니 아침 열시 반이다. 커튼 때문에 방이 어두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잤나 보다.


창문을 열고 혼자 머물렀던 방에 밝은 햇살을 들여보냈다. 이젠 제법 가을 냄새가 떨어지는 그라나다의 거리가 곧 익숙해질 것 같았다.


지도 없이 걷는 일요일 오후, 마치 터키 뒷골목 같은 성당 주변 골목 사이에 이슬람 시장이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한적하다. 동남아에서 팔 듯한 물건들을 한가득 팔아서 의아했는데 아랍의 흔적이라니. 아랍 물건이라기보다 동남아 물건인 게 확실하다. 아마 시장에서 진정한 아랍의 느낄 수 있는 건 단지 1유로에 아랍어로 이름을 적어준 종이뿐일지도 모르겠다.


지도를 얻기 위해 인포메이션을 찾았다. 누에바 광장을 지나 교회 옆에 위치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받아들고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투어 아르바이트생이 카메라를 보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을 알려주겠다고 다가왔다. 지도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리며 차분히 설명하던 그는 알바이신 지역을 넘어가면 사크로몬테라는 곳에 집시들이 산다고 알려주고, 본인에게 나이트 어드밴처 투어를 신청하면 사크로몬테부터 알함브라 궁전 언덕까지 3시간 정도를 걸으며 여행할 수 있다고 본격 영업을 시작했다. 일단 하나부터 열까지 그라나다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준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투어는 내일까지 생각해보겠다는 형식적인 말을 덧붙였다.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하게도 투어는 관심도 없었다.


대신 그가 친절히 안내해준 길을 따라 걸었다. 하천 같은 물길을 따라 걸으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가을을 담아 노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알함브라 궁전을 볼 수 있다는 그의 추천은 두말할 것 없이 옳았다.

길이 끝나고 갈림길에 섰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올라갈 것인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표지판에 나와있지 않은 언덕을 따라 올라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언덕길로 발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아기자기한 길 옆으로 점점 하얀 마을로 변해가는 동네. 담벼락을 타고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려서 발걸음을 멈춰섰다. 레스토랑임을 확인하고 점심이나 먹을까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간 공간에는 작은 테이블이 몇 놓여있었고 딱 한자리를 제외하고 전부 사람들이 차있었다.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던 건 나 혼자뿐이었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동요되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힘을 충전하고 또다시 언덕길에 올라 그라나다를 내려다보았다. 가끔 한국이 생각나는 하늘. 참 작은 곳에 오밀조밀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슬슬 발이 뜨거워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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